중앙대 예술대학원을 다니던 작년 가을, 서성란 교수님의 한국문학사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1970년대 대표 작가 중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탐구 시간이었죠.
작가님은 중국인 거리 외에도 유년의 뜰, 불의 강, 불꽃놀이 등 작품 하나하나가 주옥같습니다.
대개 작가가 또는 작가 지망생이 글을 읽을 때, 훌륭한 문장을 만나면 연필이나 붉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치게 됩니다. 오 작가의 글은 문장이 아니라 문단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글이 유려하고 인상적입니다.
강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더 이상 신작을 발표하지 않는 그분이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낼 것인가로 대화가 좁혀졌습니다.
교수님의 물음에 저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작품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죠. 단편 소설의 교본과도 같은, 한국문학의 정점에 서 계신 그분이 혹여 독자들에게 문학 후배들에게 실망을 주면 서로에게 슬픈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노 작가가 수십 년 만에 ‘봄날의 이야기’라는 단편 소설집을 발표했네요. 봄날의 이야기, 보배, 나무 심는 날, 이렇게 단출히 세 작품입니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당일배송으로 받아보았죠. 첫 작품인 봄날의 이야기를 읽으며 숨이 막혔습니다.
글이란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원숙미가 더해졌고 그만큼의 흡인력이 배가되었습니다. 결국 저의 우려는 기우였던 셈이죠.
해설자는 죽음이 삶을 관조하며 느끼는 슬픔, 봄날에 치밀어 오르는 울음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치밀하게 직조된 문장, 자음과 모임을 엮어 만드는 섬세한 디테일, 인간의 내면을 낚아채는 날 선 감수성은 여전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이런 문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 햇빛과 바람과 분분히 날리는 흰 꽃잎의 평화가, 그 안에서 노니는 그들이 다만 무심하고 무심할 뿐인데 나는 자꾸 울음이 치미는 듯 목이 메었다.
- 어머니의 피가 엉겨 나의 근원이 되고 그 자궁 안에 깃들어 온전한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어머니의 몸속 좁고 어두운 산도를 단단히 움츠린 몸으로 빙글빙글 돌아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 어머니가 나의 첫 눈맞춤이고 첫말, 첫걸음을 지켜보고 함께한 처음 세상이라는 것이.
- 그의 애탐, 갈구와 갈망이, 안타까운 헐떡임이 내 안의 가장 깊은 곳, 어둡고 따뜻한 곳으로 온 힘을 다해 들어온다. 뱃속에서 치미는 이상한 기쁨과 슬픔과 구역질을 참으며 나는 아무런 맛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 마른 뼈를 우적우적 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