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플랫폼 기획과 제작도 결국엔 사람들이 다 같이 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다 같이"의 단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재능들을 공유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단지 그들 중에서 조금 한 발 더 앞서 나아가면서 그들을 똑바른 방향으로 이끌 뿐이다.
호주는 이민자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인 배경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많다. 회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의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상당히 많다. 꿈을 위해 아니면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니면 또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호주로 이주해 와서 살고는 있지만 근본은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호주는 인종 차별에 아주 엄격하고 이것은 일반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도 상당히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직원들 각자가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노력하는 편이다.
솔직히 처음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다민족 다문화의 이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었다. 태어나서 30년이 넘게 줄곧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서 일을 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는 했지만 뭔가 한쪽이 계속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기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각종 소셜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성격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 굳이 외국에 와서까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같은 직장 사람들과 가족 관계 이상으로 서로 얽히고설키고 해서 나빴던 기억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나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반대로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의 문화들까지 알려고 했던 중국인 동료를 보니 일을 할 때 더 서로서로 협력되고 어려운 일들을 더 쉽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나는 인도출신 개발자들과의 미팅이 있는 날이면 그전에 그들의 풍속이나 문화 특히 인도인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크리켓 스포츠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그런 것들을 미팅 시작하기 전 5분 정도 잡담으로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들도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방인이 무척이나 좋았던지 그 뒤로 서먹서먹했던 관계가 더 좋아졌다. 그 뒤로 나는 크리켓 운동에 더 관심을 가졌고 그걸 계기로 나는 그 운동을 즐긴다.
한 번은 프로젝트에서 같이 고생하던 개발자 한 명이 이직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친구와 굉장히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장소는 시드니 골목 안쪽에 있는 어느 바비큐집이었다. 다들 한국식 바비큐가 처음이었고 나는 그날 저녁 모든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고기를 굽고 잘라주고 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날의 큰 반응으로 인해 그 모임은 정기모임이 되어버렸고 그 한국 식당에 단골이 되었다.
그 후에 나는 개발자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거나 아니면 심각한 의논을 해야 만 할 때 그들의 오픈 마인드와 도움으로 인해 어려운 일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일 이후로도 나는 일을 떠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들의 문화, 생각, 가치, 역사 등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월드컵이 열리면 나는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에게 연락해서 각자 자신들의 나라를 응원하자고 하면서 자신들 나라의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월드 뉴스에서 슬픈 사고 소식을 듣게 되면 간단한 채팅창을 통해서 혹시 너희 가족은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했고, 긴 휴가를 받아 고국으로 간다고 하면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또는 그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일일이 좋은 장소들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입사 후 15년 넘게 아직도 나와 항상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우리 팀의 디자이너 (호주 태생)는 늘 내가 주관하는 미팅에 들어오면 저렇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물론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내가 열심히 연습시킨 덕분에 이제는 제법 한국인처럼 말한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기획자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인간적인 유대관계로 기획을 하거나 플랫폼 개발을 리드할 수는 없다. 서로가 동의하고 계획된 것을 바탕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은 실수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참 힘이 된다.
나도 주니어로서 플랫폼 기획을 할 때는 머리도 마음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15년 차 정도 되어 보니 그것만이 꼭 성공된 결과물을 보장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유명한 강사가 그랬다. "번아웃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일을 너무 하고도 아무런 위로나 보상을 받지 않으면 생기는 병이다" 나는 이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가끔씩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일의 결과 대한 말보다는 먼저 그저 "잘했다" "고맙다" 또는 "괜찮아"라는 말로 칭찬과 위로를 하거나 "Are you okay?"라는 말로 물어봐 주거나 그리고 또 혹시 오랜만에 휴가를 가면 눈치 주지 말고 그냥 "휴가 가면 스위치 끄고 푹 쉬고 와"라고 말 한마디를 해 주면서 먼저 그들에게 다가갈 때 진정 리드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사소한 말들과 이해함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첫걸음이다. 그들에 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면 좋겠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다가감은 인종, 문화, 역사를 막론하고 다 같은 정서라는 것을 15년 넘게 호주에서 살면서 알게 되었다.
원포인트: 외국에서 회사 생활하면서 먼저 다가가는 데 필요한 몇 가지 팁을 공유한다.
1. 이름 외우기: 외국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면 아주 좋아한다.
2. 종교 또는 정치적인 이야기는 배재하기: 외국회사에서 일하면서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종교 이야기나 정치적인 이야기. 이것들은 굉장히 민감한 토픽이다. 가능한 그런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고 그런 부분들을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 좋다. 의견을 물어보면 중립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3. 한국 문화 알리기: 한국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식으로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직접 경험을 하게 해 주면서 좋은 관계형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