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M Sep 09. 2024

당근과 채찍

프로덕트 매니저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참 외로운 직업이기도 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프로덕트 매니저가 필요해?라고 물을 수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대신 자신의 제품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제품의 방향을 그 비전에 맞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막강한 파워를 가질 수 있다. 제품의 비전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도 짜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도 한다. 비전은 한 줄의 메시지 일 수도 있고 거창한 선언문 같을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 비전만으로도 프로덕트 매니저를 따라 동행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그 비전을 정하는 일이 아마도 프로덕트 매니저가 유일하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플랫폼 회사들은 대부분 회사 차원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구글 -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애플 - "혁신적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너무 심플하면서도 이 말을 들으면 바로 그 회사가 떠올리게 될 정도로 강한 임팩트가 있다.


비슷하게 제품에도 비전이 있다. 그리고 이 비전은 그 제품을 성공으로 가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실패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잊히게 할 수 도 있다. 무엇보다도 프로덕트 매니져가 이 비전을 확신하지 못할 경우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제품 개발부터 론칭하는 과정에 팀원들에게 굉장한 도전을 받게 된다. 반면에 비전에 확신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팀원들이 움직인다. 따라서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비전은 당근이기도 하고 때론 채찍이기도 하다.


맨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로덕트 매니저는 회사 내에서 참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경험을 한다. 제품의 아이디어를 의논하는 단계서부터 최종 론칭을 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팀과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하고 그러므로 인해 리더십도 사실 요구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람들마다 성격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 다르다 보니 하루는 좋았다가 하루는 무너지기도 하기를 반복한다. 더군다나 호주는 이민자의 나라다. 그 말인즉,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한 회사에서 일하는 경유가 너무 흔하다. 영국계 마케터, 인도계 개발자, 중국계 설계자, 브라질계 웹디자이너, 등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지난 10년 넘게 이런 팀원들과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플랫폼과 프러덕트를 설계하고 론칭할 수 있었던 것의 하나의 비밀을 말하면 바로 "당근과 채찍"이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근본적인 베이스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그 제품들의 "비전"이었다.


옛날이야기를 좀 하자면, 주니어 시절 한국에서 일할 때 그때 제품 개발을 하다 보면 늘 이해관계가 부딧치고 해서 프로젝트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면 그때마다 항상 선배들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회식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에는 회식 문화가 없다. 팀 런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일 이야기는 전혀 안 한다. 불문율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처럼 같이 술을 먹으면서 아니면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나를 이해시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일을 일이고 소셜은 소셜이다.




제품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끝나고 나면 프로덕트 매니저의 첫 번째 협업이 "마케팅"이다. 제품의 마케팅은 제품이 다 완성되고 나서 시작되기보다 아주 초기단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제품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판매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짜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제품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프로덕트 매니저는 신규를 론칭할 제품에 대한 비전을 그 사람에게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러면서 이런저런 미팅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그 사람이 하겠지만 프로덕트 매니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계속적으로 이유를 설명하고 부탁해야만 된다. 정당한 당근도 주고 때로는 채찍과 같은 중압감도 느끼게 해 줘야 한다. 


어디 마케팅만 그런가? 제품의 비전, 전략 그리고 큰 로드맵이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Build 하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때부터는 나의 일과는 매일매일 엔지니어들과의 전쟁이다. 그들의 세계는 좀처럼 유연하지가 않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언어가 있고 그들만의 운동장에서 사용되는 도구며 재료들이 다 있다. 대화를 할 때나 설득을 해야 할 때는 그들의 언어로 설명을 해야 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정말이다. 마찬가지로 당근도 주어야 하고 그렇다고 당근만 주면 안 된다. 약간의 부담감도 줘야 한다. 말하자면 밀땅이 필요하다. 그때도 역시 비전을 통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엔지니어들이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들이 영감을 받고 움직이이려면 그 제품 개발을 통해 그들이 얻게 되는 엄청난 "기술적" 경험을 부각해주여야 한다. 


제품이 거의 완성단계에 가까워지면 프로덕트 매니저는 제품을 이제 시장에 팔기 위해서 준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가령 새로운 라면이라고 상상하면 포장지는 뭘로 할 것이며, 가격은 얼마로 하고, 식약청 허가는 되었는지, 판매 경로는 어떻게 되며, 등등 보통 2-3달 정도 미리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경우는 한 달 만에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많다. 이런 모든 것들도 회사 내 다른 팀들과의 협업이 대부분이다.


흔히들 그런 말이 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제품을 시장에 팔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프로세스가 있다. 가장 우선 제품이 법에서 명시되어 있는 요구사항들을 다 지켜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법률 검토가 있다. 회사 내 법률팀이 따로 있고 법대를 나온 법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팀이다. 이들에게 신규 제품에 대한 설명 등등을 위해 미팅을 해야 한다. 대부분 법률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내용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들과 회의를 하는 경우 역시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특이한 점은 법률팀과 회의를 하면 질의응답 시간들이 많은데 그것이 마치 법정에서 피의자 신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다. 회의는 늘 녹음이 되게 되고 모든 답변들은 문서에 상세히 기록된다. 정말 살벌하다. 제품 출시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법률팀에서 결제를 안 해준다고 가정하자. 프로덕트 매니져는 그때부터 속이 타 들어가게 된다. 매일매일 전화해서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 검토를 다시 해 달라고 그것도 빨리.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속도가 있고 프로세스가 있다고 늘 말한다. 같은 회사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이들에게 비전의 당근과 채찍은 늘 안 통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일할 때 직원들에게 "영감"을 많이 주었다는 걸로 많이 회자가 된다. 그가 직원들에게 말했던 것들에 대한 유튜브를 보면 정말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일을 열심히 안 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메시지는 늘 강렬했다.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직선적이었다. 그렇다고 날카롭거나 뾰족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상처를 받게 하는 그런 말들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감동"과 "영감"을 주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하는 말이었다. 그와 미팅을 하고 나면 많은 이들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후에 그를 "visionary"라고 불렀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사용해야 할 당근과 채찍은 바로 "영감"을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이다. 특히 외국에서 러더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에서처럼 "의리"나 "학연"이나 "지연"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일할 수 있게 할 수 없다. 


원포인트 : 좋은 비전이란 (참고로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1. 쉬워야 한다: 프로덕트의 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다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능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정의되어야 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하기보다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새로운 제품의 비전을 정의하고 나면 제일 먼저 가족들(아내와 딸들) 에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곤 했다. 
2. 잦은 변경이 없어야 한다: 비전은 마치 마스터 플랜과도 같다. 그래서 잦은 변경을 하면 득 보다 실이 많다.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고 다시 설명해야 하는 귀찮은 프로세스를 통과해야 한다. 가능한 초기에 설정한 비전을 끝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좋다. 마침 모의고사 시험에서 정답을 체크하면서 다시 고치면 자주 틀렸던 것과 비슷하다. 맨 처음에 정한 것이 맞는 경우가 더 많다.
3. 가능해야 한다: 꿈을 크게 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한 것이면 더 좋다. 그래야만 동기부여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