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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M Aug 26. 2024

그림이 말보다 더 통할 때도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고 나서 첫 기획 회의가 기억난다. 


팀장로부터 첫 번째 미션을 받고 나서 들뜬 기분도 잠시 잘해야겠다는 마음에 거의 2주 동안 기획안을 무척이나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 나름 시장조사, 경쟁사 분석 등등 내용을 꼼꼼히 챙기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해서 팀장과 다른 프로덕트 매니저들에게 자신 있게 이메일을 보냈다. 리뷰를 부탁한다고 그리고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답장하라고.


다음날까지 아무런 답장이 없었는데 그날 오후에 팀장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기쁜 나머지 얼른 이메일을 열어봤는데 내용은 팀원들에게 기획안에 대해 30분 정도 시간으로 설명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냥 편하게 제품 기획의 의도 등등을 설명하면 된다고 하면서 특정 포맷을 말하지는 않았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부담 갖지 말라고 하는 말도 함께 첨부했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이라서 부담스러울까 봐 했던 말이었던 것 같았다). 뭐 예상했던 그대로였고 한국에서도 늘 하던 것이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아참!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 호주 회사(조그마한 스타트업)에서도 팀원들과 종종 미팅을 하곤 했었고 호주 와서 한국 회사와 일 방식에서 다르다고 생각했던 문화중에 하나가 미팅이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모든 미팅에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서 발표하는 것이 필수였지만 호주에서는 말로 설명하고 의논할 수 있는 내용이면 굳이 따로 자료를 안 만들고 편하게 대화하듯이 하곤 했다. 더군다나 스타트업 회사에서는 형식이나 포맷보다는 보다 실질적인 내용이 더 중요시하다 보니 더욱더 회의의 본질에 충실하였다.


팀원들이 다 모인 회의실은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방이었고 그곳에는 컴퓨터를 연결해서 발표 때 사용할 수 있는 대형 모니터와 콘퍼런스 전화기 그리고 반대편에 화이트보드가 있는 전형적인 회의실이었다.


기획서는 어차피 이미 배포된 상태였기 때문에 30분이라는 시간적 제약도 있고 해서 중요 포인트 위주로 설명을 시작했고 20분 만에 끝났다. 팀장이 질문을 해도 좋다고 했지만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결국 미팅은 일찍 끝났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사실 호주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여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거나 하는 것들이 없기에 그날도 다들 내가 하려는 제품 기획에 별로 관심이 없나 보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이메일을 열어 보았는데, 그 전날 미팅에 참석했던 팀원들로부터 엄청난 이메일이 와 있었다. 대부분이 잘했다는 칭찬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자신이 이해한 사항이 맞는지를 다시 컨펌하려는 이메일이었다. 나는 일일이 답장을 다 성실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하나를 보내면 또 다른 질문으로 메일이 오고 어떤 사람들은 메신저를 통해 질문을 마구 던지기도 했다. 속으로 어제는 아무도 안 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투덜거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우연히 복도에서 어제 그 미팅에 참석했던 팀장을 만났고 아침에 메일을 엄청 받았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 팀장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브라이언 (나의 영문이름이다), 때로는 말보다는 그림이 더 통할 때가 있어. 잘 생각해 봐"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자리를 돌아와 생각을 해 봤다. 그림이 더 잘 통한다고? 언제는 프레젠테이션 자료 필요 없다고 하더니 왜 갑자기 그림 이야기를 하는 거지?


며칠 후 다른 프로덕트 메니져가 준비하고 있는 신규 제품 기획 회의에 초대를 받아서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회의와 비슷했다. 신규 제품 기획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다. 그리고 마침 같은 미팅룸에서 진행했었다.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그 프로덕트 매니저는 5분 정도 간단하게 기획 배경과 의도를 말로 설명한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뒤편의 화이트보드 쪽으로 걸어가서 팔을 걷어 부치고 신규 제품에 대한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자신의 제품/서비스뿐만 아니라 그 제품이 다른 제품/서비스와 어떻게 연동이 될지를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났을 때 화이트보드에는 빈 공간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림들로 잔뜩 채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나서 혼자 그 화이트보드를 다시 쳐다보니 각각 하나하나의 그림들이 다 연관되어 보였고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보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개발하려는 신규 제품이 나중에 어떻게 동작 괼 지에 대한 것이 바로 상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말이 필요 없었다. 저절로 "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아........."라고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팀장이 얘기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모든 미팅에서 화이트보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말을 통한 전달은 최소화하고  그림으로 즉 비주얼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그림에 약간의 소질이 있었던 나는 화이트보드를 사용하면서 그 뒤에 팀원들에게 엄청난 피드백을 받았다. 회의가 끝나면 모두가 핸드폰으로 내가 가득 채운 화이트보드를 사진으로 마구마구 찍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나를 '화이트보드 보이(white-board boy)'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세상을 뒤집혀 놓으면서 우리 회사도 전 직원이 다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모든 미팅이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원들 모두 더 이상 예전처럼 화이트보드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비슷한 방향으로 일을 하고 싶었으며 결국 솔루션은 모든 것들을 파워 포인트라는 마이크로 소프트 제품으로 소화해 내는 것이었다. 


화이트보드로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파워 포인트를 이용해서 만들다 보니 시간과 노력이 두세 배로 들었다. 하지만 나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내가 만든 파워 포인트를 통해 팀원들은 다시 예전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에서 컨설팅 회사를 다닐 때 그토록 수없이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제안서를 만들고 했던 그 수많은 노력들이 결국 여기에서 빛을 보게 되는구나 라는 희열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영어 말하기 수준은 호주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와서 여기서 자란 사람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한마디로 늘 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던 핸디캡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꼭 모든 것들을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더라. 때로는 그 수많은 말들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파워 포인트에 그려진 도형과 그림들이 더 빨리 모든 것들이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들을 몸소 깨우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대부분의 우리들은 미국식 영어에 더 익숙하다. 문법은 물론이고 발음과 억양 등등 미국 사람들이 녹음한 테이프를 수없이 들으면서 공부를 했고 나이가 들어서 사설 영어회화 학원에 갔을 때도 선생님들은 대부분 미국 아니면 캐나다 출신 들어있다. 적어도 나와 동년배라면 이것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처음 호주에 와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름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은 아니라도 기본적인 대화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부했었던 내가 호주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억양과 리듬 더군다나 중간중간 사용하는 색다른 단어들로 인해 혼돈의 연속이었다. 한마디로 현타가 왔었고 멘틀이 털털 털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들의 거친 악센트에 적응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늘 소통을 해야 하고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그 소통 기술로 밥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기획안을 만들어도 소통이 안되거나 전달이 안되거나 남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 같은 경우는 IT 서비스 제품을 기획안을 만들다 보니 일단 팀의 다른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 단계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들을 만나서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들의 용어로 설명해야 하고, 마케팅 부서와는 제품을 어떻게 고객에게 어필해서 실제로 판매까지 이루어지게 할 것인지를 의논해야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제품이 출시되고 나면 실제 고객들을 만나서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미팅이 참 많다. 즉 말을 참 많이 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나처럼 태어나면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어릴 적에 일찍 유학을 가서 영어를 공부하지 못한 경우는 당연히 영어가 어렵고 네이티브 수준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업으로 이민을 가서 커리어를 유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다. 다행히 호주와 같이 이민자의 나라 같은 경우는 그나마 모두가 이민자이다 보니 이런 부분들을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이지만 여전히 나의 회사에 있는 임원들이나 시니어 매니저들은 호주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므로 그들과 미팅을 할 때는 여전히 긴장된다. 


우리말에 이가 안되면 잇몸으로라도 라는 말이 있다. 나 같은 경우 말하는 영어의 핸디캡을 화이트보드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려 가면서 설명을 하거나 멋지게 파워 포인트를 만들어서 그 갭을 채웠다. 그것이 사실 나의 서바이벌 키트였으며 운 좋게도 그것들이 참 잘 먹혔다. 


올해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한 지 13년 차를 맞았다. 시간은 참 빠르다. 첫 미팅 후에 당황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것도 한 직장에서 13년 동안 참 많은 제품들을 기획하고 시장에 팔았다. 물론 성공한 제품도 있었지만 실패한 것들도 많았고 시장에 출시도 되기 전에 폐기 처분된 제품도 있었다. 그 모든 제품들은 하나같이 나에게는 자식들과 같았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엄청나게 많은 미팅을 했다. 말은 부족했지만 나는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늘 찾았다. 운 좋게 그 대안이 내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할 수 있었던 그 무엇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버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원포인트 : 15년 전에 한국에서 컨설팅을 할 때 문서를 참 많이 만들었다. 거의 모든 것들을 문서로 소통하던 때였다. 문서는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대신 느리다. 최근 들어 서비스나 제품 기획들은 촌각을 다투는 경우도 제법 많다. 제품/서비스 딜리버리 사이클이 6개월이 넘으면 이미 시장에서 뒤처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따라서 Time to market이 중요시되곤 한다. 이런 트렌드에서는 문서를 붙들고 오래 시간을 끌기보다는 서비스의 핵심 내용을 나눠서 팀원들과 더 빠르고 효율적인 소통을 함으로써 출시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성공의 열쇠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에는 프로덕트 매니저의 스킬 중에서 더욱더 리더십과 소통이 더욱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경우는 문서나 주저리주저리 말을 통해 뭔가를 설명하다 보면 질문도 많아지고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좋은 방향이 안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다 직관적인 소통과 정보 교환이 팀원들과 필요하기 때문에 그림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효율적이다. 최근 들어 제품 기획의 소통 시 말 대신 그림으로 설명하기 좋은 제품 하나를 발견해서 추천한다. 바로 'Figma'라는 제품이다 (참고로 나는 이 제품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 제품은 주로 UI/UX 디자이너들이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프로덕트 매니저가 다른 팀들과 협업용으로 사용하기에 정말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생각이 든다. 마치 예전 아날로그 감성의 그 화이트보드 기능을 그대로 디지털 형식으로 변경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팀에 MZ세대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들어왔는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 Figma라는 툴을 사용해서 소통하고 협업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말보다 더 확실한 소통은 시각적인 임팩트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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