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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M Aug 05. 2024

문과생도 할 수 있다

글 제목을 짓고 나서 다시 보니 너무 애매모 해 보인다. 사실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바로 이거다.


문과생도 IT 제품 기획을 할 수 있다

이 말을 설명하려면 나의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어서 조금은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도 있지만 그래도 해보려고 한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기억된다. 시골에 있는 아주 작은 학교였지만 작은 컴퓨터실이 있었다. 한 친구를 따라가서 태어나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게 되었다. 애플사에서 만든 맥킨토시 컴퓨터 2대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친구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던 것을 한동안 쳐다보기만 했고 내 눈에 보이던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반드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본격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했고 한동안 컴퓨터는 근처에도 못 갔다. 그저 매일매일 국영수 공부를 하기에도 너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기에 나의 취미 생활이나 공부 외의 그 어떤 것들도 나의 관심거리가 되지를 못했다.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과를 갈지 아니면 문과 쪽으로 공부해서 대학을 갈지를 결정하라고 했다. 


내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해서 당시 나름대로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문과 체질이었다. 수학이랑 과학 과목에서 썩 좋은 성적을 내지도 못했고 무엇보다도 좋아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컴퓨터 관련 직업에 대한 꿈과 더구나 이과를 가면 문과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대학 후 취업 기회가 다양하다는 선생님들의 말들을 듣고 결국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의 선택은 한동안 내 인생을 굉장히 힘들게 했고 마치 나한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사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계획대로 나는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졸업하기 전까지 내내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을 했어야 만 했다. 대부분의 내 대학 동기들은 이미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고 좀 잘 산다는 집 애들은 아예 자기 집에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수학 공부와 같은 논리적인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중에야 알게 되고 나서 얼마나 많이 후회를 하게 됐던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졸업을 하게 되었고 L사 연구소에서 개발자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릴 적 꿈이었던 컴퓨터 관련 일을 정말로 해낸 것이었다. 하지만 개발자로의 나의 삶은 힘듬의 연속이었다. 다른 입사 동기 녀석들은 과제를 술술 해서 선배들한테 칭찬도 받곤 했는데 나는 늘 동기보다 늦었고 무엇보다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배우고 해야 하는 일들이 잦았다. 한마디로 프로그래밍 실력이 뒤쳐졌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프로그래머는 나의 미래가 아니구나. 


실력이 늘지 않으니 재미도 사라지고 그렇다 보니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 못했다. 이직을 결심했던 순간이었다. 이직이 아니라 직종을 바꾸기로 했다. 여전히 IT 기술 기반의 일들을 하고 싶었지만 프로그래머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러던 중 같이 일했던 어느 선배가 IT 컨설팅이라는 일을 소개해주었고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 듣고 바로 이직을 했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로의 이직은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더 이상 프로그래밍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고 다른 경험을 통해 충분히 동기부여를 받았다. 흔히들 일반인들은 컨설팅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 정말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한다고 하면 말이다. 이직한 곳에서의 컨설팅은 말이 컨설팅이지 사실은 프로젝트 관리에 더 가까운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서 끝내고 나면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 계속되는 사이클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들이었지만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보다는 훨씬 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힘들더라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컨설팅 또는 프로젝트 관리자의 직업은 늘 "을"로서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갑"(고객)의 눈치를 항상 보고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갑"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위치였다. 그러다 보니 보통 컨설팅 회사에는 장기 근속자들이 별로 없다.  대부분이 2-3년 이내에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곤 했다. 물론 그 일이 잘 맞아서 오랫동안 일을 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던 차에 국내의 S사와 함께 제품화 (productisation)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기존의 대부분의 컨설팅 프로젝트는 특정 요구 사항에 맞춰서 시스템을 구축해서 상용화하면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이 프로젝트의 경우 고객이 중장기 로드맵을 가지고 시스템을 재판매가 가능한 제품(product)으로 만든 후 그것을 해외의 고객들에게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겠다는 큰 비전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그때가 처음으로 프로덕트 (product)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운이 좋아서 프로젝트 내내 고객과의 호흡이 너무 좋았다. 갑과 을의 상하 관계가 아니라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해 주었고 중간중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문제를 풀어갔다. 결과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대로 완성한 제품을 해외 기업에 성공적으로 판매하는 성과도 달성했다. 이 과정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들은 이후 내가 본격적으로 프로덕트 매니저 (Product Manager)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일을 할 때 굉장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 후에 나는 호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다시 시작했어야 했다. 한국에서 하던 경험과 경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나는 그저 마이너리그의 한낯 평범한 야구 선수였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했어야 했고 그래서 찾은 것이 BA (Business Analyst)라는 직업이었다. 한국에서는 BA가 보통 전문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에서 entry 레벨의 컨설팅 직급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호주에서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BA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조그마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BA로 오퍼를 받아 호주에서 나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운이 좋아서 그 처음 회사의 BA의 역할은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호주에서는 어떻게 product management 하는지를 따로 돈 들이지 않고 바로 옆에서 경험하게 되었고 이것은 나중에 내가 프로덕트 매니저로 전환하게 되는 엄청난 기반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학입시 준비를 하면서 오로지 어릴 적 꿈하나를 위해서 나한테 잘 맞지도 않는 이과로 전향해서 프로그래밍 개발도 해보고 이제는 컴퓨터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어릴 적 꿈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문과 영역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예전 고등학교 그때의 시절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문과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어느덧 낯선 이곳 호주에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제품 기획 일을 한 지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IT 프로덕트 매니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대를 다녀서 컴퓨터 공학을 졸업해야만 하는가? 

내 개인적인 대답은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업은 오히려 문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제법 잘 어울린다고 본다. 물론 제품을 만드는 엔지니어들하고 기술에 대해서 토론을 하려면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개인적으로 필수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만약 아래의 항목 중에서 자신이 3가지 이상은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되면 기본적인 자질은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낀다.

나는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지금 대학에서 문과 쪽 공부를 하고 있지만 프로덕트 매니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응원하고 싶다. 실제로 지금 현재 회사의 몇몇 프로덕트 매니저들의 예전 경력을 보면 실로 놀랍다. 한분은 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고 졸업 후 제품 세일즈를 하다가 본인이 생각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을 기획하고 싶어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전향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원래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학부에서 정신과를 공부했지만 대학원에 경영 정보를 공부한 후 플랫폼에 빠져서 프로덕트 매니저가 된 분도 계신다. 두 사람 다 한 번도 프로그래밍을 해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현재 아주 훌륭한 프로덕트 매니저를 하고 계신다. 


흔히들 프로덕트 매니저를 회사의 CEO 비유한다. CEO가 회사 전반의 전략, 재무, 기술, 등등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듯이 프로덕트 매니저는 하나의 제품을 책임진다. 기술은 그 책임의 범위중에 일부일 뿐이고 그것조차도 그 기술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나도 어쩌다가 공대를 졸업하고 기술 기업에 취직을 해서 프로덕트 매니저를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여전히 문과생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재미있다. 그래서 혹시 저처럼 나눈 문과 체질이라서 프로덕트 매니저가 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꾸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원포인트 : Product Manager라는 이름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어떤 분야에 더 초점을 맞추고 강점을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좀 더 세부적으로 분야가 나눠지게 된다. 이것들은 특히 해외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구직을 하는 경우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의 경력 및 강점에 더 잘 어울리는 포지션으로 구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1. Technical Product Manager: 프로덕트 매니저 중에서도 특히 기술적인 이해가 요구되는 포지션이다. 따라서 technical skills을 많이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엔지니어 경력으로 시작했던 분들 중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전향을 하는 경우 이 포지션으로 많이 지원하게 된다.
2.  Strategic Product Manager: 제품의 단기, 중기 그리고 장기 전인 비전이나 전략 수립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포지션이다. 따라서 경영학을 공부했거나 컨설팅에서 일을 했던 분들이 이 포지션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3. Product Marketing Manager: 제품의 밸류를 이해하고 이를 홍보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포지션이다. 세일즈와 상시 같은 활동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4. Product Owner: 흔히들 약자로 PO라고 부른다. 이것은 Job title이라기보다는 역할을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몇몇 회사들은 Product Manager(PM)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PO와 PM은 다르다. PO는 비즈니스 즉 사업부서에 더 가까운 역할이다. 따라서 제품의 growth 말하자면 매출과 이익의 재무적인 요소에 더 집중해서 일을 하는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
5. Portfolio Product Manager: 한 가지 종류의 제품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품들을 그룹으로 관리하는 한 단계 높은 기획자를 말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프로덕트 매니저를 3-4년 정도 한 후 경험이 쌓이고 좀 더 리더십이 있으면 이 타이틀로 승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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