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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에 집중하자

by BM

1996년 3월. 이때가 나의 커리어가 시작된 때이다. 당시만 해도 대학 졸업생들이 특히 공대를 나온 사람들이 졸업하는 것이 지금처럼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시기는 아니었다. 물론 그때도 면접 경쟁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시장에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았기에 기회가 지금보다는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첫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참 다양했다. 물론 어떤 팀에 배정되고 특정 역할이 정해지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참 많이 했다. 바쁘고 손이 모자라는 팀이 생기면 언제나 나의 팀과 일은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한 가지 기술이나 특정 분야를 오랫동안 일하면서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단점도 있었다. 당시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모두 다 나처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친구는 심지 있게 한 곳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오롯이 한 분야만 계속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 나는 늘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우물만을 파던 친구들을 우리는 당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불렀다. 반대로 나 같은 유형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했다.


두 번째 직장은 컨설팅을 하는 곳이었다. 여기는 첫 직장보다 더 심했다. 모근 일들이 고객중심이었고 고객이 왕이자 갑이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서 그들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고 솔루션을 만들어서 제공하다 보니 나는 더욱 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갔다.


2000년대 초반에 분위기는 제너럴리스트가 대세였다. 당시 회사들은 특정 분야의 특정 기술만을 고집하고 그것만 잘하는 인재들보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호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일했던 분야는 그랬다.


당시에 회사 선배들은 다들 80년대에 대학을 먼저 졸업했던 80학번 세대들로 퇴근 후에 소주를 마시면서 자주 고민했던 것이 바로 스페셜리스트가 더 나은지 아니면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길로 가야 하나를 놓고 참 많은 난상토론이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2008년 한국을 떠나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어느 작은 회사에서 나의 해외 커리어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했던 방식 대로 일을 했다. 이것저것 시키는 것을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일의 종류나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지 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나 판단은 전혀 없었다. 그냥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출근도 남들보다 일찍 하고 퇴근도 맨날 나중에 그리고 근무 시간 중에 잡담이나 휴식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회사의 핵심 플랫폼의 복잡한 설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화된 문서를 만들어서 팀에 공유를 한 적이 있었다. 팀원들은 그동안 빽빽하게 쓴 글자로 기술된 답답한 설계서를 보다가 내가 만든 시각화된 문서를 보고 나서 다들 너무 좋고 편하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줬다. 그 이후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요청을 받았고 그것들을 해 준 이후로 어느덧 회사 내에서 그것이 나의 강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에 그 회사에서 2년을 더 일했는데 더 이상 내가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그 일만 해도 인정받아서 회사 생활이 너무 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호주에서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일하는 스페셜리스트를 원하는구나라고 말이다.


3년 후 지금 현재의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새로운 곳에서 빨리 자리를 잡고 싶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증명했어야 했는데 뭔가 강렬한 한방이 필요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다시 이것저것 평범하고 잡다한 일들이 주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 다들 일찍 퇴근하고 사무실은 정적같이 조용했다. 별다른 약속이 없었던 나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 마무리해야 할 문서작업을 하고 있었다. 꽤나 큰 신규 고객에게 보내야할 문서라서 기일을 꼭 맞춰 달라는 프로젝트 메니져의 요청이 있었기에 약간은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고객이 요청한 것은 우리 회사 전체 플랫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큰 그림과 요약하는 문서였다. 회사 전체 플랫폼을 요약하는 것이다 보니 여러 플랫폼 담당자를 통해서 얻은 조각조각들의 정보를 입수하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걸 어떻게 역어서 요약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보니 퇴근이 늦어졌다. 워드 문서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고 몇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갔다. 도무지 나 조차도 큰 그림이 안보였다.


금요일 오후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비록 일은 진행되지 않았지만 맘껏 자유를 누렸다. 회의실에 있던 화이트보드를 내 자리 바로 옆으로 끌고 와서 흰 여백에 조각조각으로 받은 정보들을 그림으로 일단 그려 보았다.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또 그리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제법 완성되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그걸 문서로 옮기고 그것을 기반으로 상세한 설명이 들어가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등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고 뒤돌아 보니 바로 우리 사업 본부의 최고 보스인 본부장님이 서 계셨다. 잠시 화이트보드를 보더니 설명을 좀 해 달라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대충 설명을 했다. 본부장은 나의 설명을 듣고난 후 웃으면서 다 완성되면 월요일 아침에 자신한테 이메일을 먼저 보내 줄 수 있냐고 부탁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나의 요약본 파워포인트를 본부장이 사업개발팀장에게 공유했고 고객으로부터 아주 긍적적인 피드백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 뒤에 사업본부장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말을 건네면서 조만간 회사 내에 프로덕트 팀을 만들 예정이고 자신이 그 팀의 팀장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관심이 있으면 사내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고 사라졌다. 며칠 고민을 하고 나서 나는 사내 지원을 했다. 며칠 후 프로덕트 팀장이 "조만간 보자"라고 윙크를 지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치시고 지나갔다. 사실 당시 입사한지 6개월이 막 지나가던 시점이라서 팀을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원하는 대로 프로덕트 팀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때 금요일에 화이트보드 앞에서 대화를 나눴던 그 본부장님의 결정으로 최종 판결이 났다고 했다. 결국 그 시각화 그림은 나를 회사 내에 알릴 수 있게 해 주었으며 그것이 준 임팩트는 강했다.



그 뒤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프로모션 되었다. 한국을 떠나 이민와서 먼 길을 돌아 돌아서 결국 내가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는 기분이었다. 롤(role)이 바뀐 만큼 나의 강점도 바뀌었어야 했다. 더 이상 시각화가 경쟁력 있는 강점이 될 수는 없었다. 당시 우리 팀은 새로 만들어진 팀이었고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고 새로운 방식(에자일)으로 플랫폼 개발을 해야 한다고 프로덕트 매니저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자일)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쉽고 간단하고 직관적인 것들을 짧은 시간에 완성한 후 빠른 피드백을 받아서 계속 개선하는 방식" 즉 MVP (Minimum Viable Product) 모델이었다. 2010년대 초반에 호주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제품 개발을 하고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MVP 개발은 팀원들이 하나의 심플한 기능을 단기(2주-3주)에 배포 그리고 수정하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결국 최종 완성품의 품질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Time-to-market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선 팀원들이 모두 민첩해야 하고 우연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팀워크가 절대적으로 좋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리더의 팀원들에 대한 계속적인 동기부여가 중요했다.


새로운 프러덕트 팀을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 대부분은 정통적인 방식에 여전히 익숙했고 그 컴포트 존을 벗어나려고 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에 시작부터 많은 문제들이 있었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사람"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정통적인 방식들을 바꿨다.

- 형식적인 이메일을 없앴다.

- 아침마다 무조건 다 같이 커피 타임을 했다. 누구도 예외없이.

- 일일보고 주간보고 월간 보고 등등 모든 보고 프로세스를 다 없앴다.

- 파워포인트나 워드로 형식적인 문서 작성을 다 없앴다.

- 매니저나 부서장에게 보고는 별도 미팅이 아니라 2주마다 하는 팀미팅으로 대체함.

- 2주마다 무조건 데모를 한다. 안 돌아가도 된다.

- 테스팅은 개발의 일부로 묶었다.

- 신규 릴리즈와 배포는 100% 자동화로 바꿨다.

- 고객의 요청이 개발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을 없앴다.


이것들 말고도 참 많은 것들을 없애고 줄이고 생략했었다. 물론 반대도 있었고 충돌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적응하지 못하는 개발자들의 불평들이 초기에는 많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하고 나서 곧 모든 것들이 진정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부터 개발자들과 친해졌다.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들도 나의 고민이나 계획들에 대해서 반대만 하지는 않았다. 팀 스프릿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팀은 해냈고 증명했다.


그 이후로 나는 여러 플랫폼 개발들을 이런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물론 실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사히 시장에 론칭을 했다. 그들의 대부분이 그린 필드 (Green Field) 프로젝트 (한 번도 시도하지 하지 않은 것을 맨땅에서 시작한다는 의미) 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초반엔 늘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점점 나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으로 쌓였고 어느 순간 나의 새로운 "강점"으로 정의되었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대기업이다. 여전히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조직 속에서 어쩌면 나만 별도의 조직처럼 일을 하고 있다. 작년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나의 보스가 말했다.


당신은 그냥 프로덕트 매니저가 아니다. "스타트업" 프로덕트 매니저라고 생각한다. 우리 팀에서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빨리 플랫폼으로 완성시키는 것을 잘한다. 그것이 쉽게 보일 수 있지만 막상 하려면 어렵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쉽게 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계속 유지해 줬으면 좋겠다.





지난번 글쓰기와 관련된 연재에서도 말했듯이 솔직히 나는 문서를 잘 못쓴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글을 못쓰면 좀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만 평가받지 않는다. 위에 나의 보스가 말했듯이 나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고 그것에 집중할 때 나의 존재감이 인식된다.


올해 첫딸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다.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지 말고 너의 강점을 잘 살리라고 조언해 줬다. 약점에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자신의 강점을 더 극대화하는 것이 더 낫다.


글을 따 쓰고 나서 읽어보니 마치 내 자랑을 한 것 같아서 쑥스럽다. 하지만 혹시 외국에서 취업을 할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자신의 강점을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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