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커리어를 시작한 나는 내년(2026년)이 되면 꼬박 30년을 채우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지금 다니는 회사를 포함하면 총 5개의 다른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중에서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호주 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 중이다. 제일 오래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90년도 혹은 2000년대에 직장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당시에는 이직을 하려면 최소한 한 직장에서 3년은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선배들이 말하곤 했다. 이력서에 1년이나 2년 만에 이곳저곳을 옮겼다고 하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할수록 주위에서는 회사 생활을 잘했다고 평가하고 더 나아가서 인간관계에 대한 평가에서도 후한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같이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 중에서 몇몇은 처음부터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 개발자로 시작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 보편하게 생각하던 틀을 깨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그 열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직장과 일을 선택하였다. 그러다 보니 평균 1년마다 다른 직장으로 옮겨 다니곤 했다.
당시 그런 친구들은 나처럼 정규직으로 대기업에 취업해서 다니던 사람들보다 급여가 훨씬 높았다. 정규직은 정해진 월급이 따박 따박 들어왔지만 그 친구들은 자신들이 일한 만큼 보수를 받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력에 맞게 매년 계약서를 갱신함으로 인해 수입이 더 늘어났다. 농담으로 그런 친구들과 가끔씩 저녁을 먹으면 그 친구에게 밥사라고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대기업에 정규직은 보수는 조금 낮지만 대신 다른 혜택들이 많았다. 나 같은 경우는 L 전자 기업에 다닐 때 전자 제품을 구입할 때 직원 할인가로 저렴하게 구입했었다. 연말에 성과급도 많지는 않았지만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국에 자신의 comfort zone을 만들어 갔다. 어느덧 그것은 거대한 성(castle)이 되어 버렸다.
긴 시간에 걸쳐 쌓아 올려서 만든 그 성은 나와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성장을 느리게 만드는 역할도 같이 했다. 그 큰 성안에서의 편안함을 떠나 밖으로 나가기가 점점 쉽지 않아 졌다.
지난달 첫째 딸이 다니던 직장에서의 힘든 점들을 말했다. 들어보니 다 이해되는 부분들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커리어를 시작한 보통의 주니어들이 첫 직장에서 겪게 되는 전형적인 불만들이었다.
본업 외에 다른 일들을 해야 하고, 일을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정말 원했던 일인가 헷갈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네임 밸류는 좋아서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는 아직 컴포트 존을 만들 때가 아니다. 너는 더 많이 경험하고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저 회사 이름이 좋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편하고 좋아서 지금의 불편함을 무시하다 보면 더 많은 기회들이 없어 질지 모른다고 충고해 주었다.
첫째 딸은 대학을 다닐 때부터 브랜드 매니저를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차선이었다. 뭐 내가 볼 때 마켓팅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늘 첫째 딸의 회사 생활 이야기를 듣다보면 점점 자신이 원래 하려던 것에 대한 도전보다는 현재의 안정과 편안함을 선택하는 듯한 것이 보였다.
첫째 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많았다. 학교 입시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왜 주저하는지도 잘 안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자존심이 깅한 딸은 실패를 두려워했다. 누구나 실패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취와 성공을 원하지 패배를 즐길 수 있는 강한 심장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딸이 나와 같은 전철을 밟아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해 보라고 했다. 뒤는 내가 백업할 테니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2주 후에 브랜드 매니저 자리에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를 본다고 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2주가 지난 뒤에 오퍼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막상 오퍼를 받고 나니 결정을 해야 하는데 지금 있는 회사에 미련이 생긴다고 했다. 그 순간이 온 것이다. Comfort zone을 박차고 나와야 할 때였다.
긴 생각의 끝에 결국 첫째 딸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첫째 딸은 오퍼를 받은 순간부터 90% 이직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 밀려온 두려움에 흔들렸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건 누구나 다 느끼는 경험이고 감정이다.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만 네가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다음 주부터 첫째 딸은 브랜드 매니저로 새롭게 시작한다. 딸의 성격상 처음부터 완벽하게 뭔가를 하려 함이 분명하다. 벌써부터 생각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점시 쉬는 기간 동안 계속 밀해 줬다. 천천히 거북이처럼 너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30년의 경력 기간 동안 나도 새로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comfort zone을 포기하고 떠나는 걱정과 무엇보다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런 나의 선택으로 인해 솔직히 나의 성장은 남들보다뒤쳐진 것이 사실이다. 안정되고 편안하기는 했지만 나 자신을 보다 큰 사람으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게 되었지만 무척 아쉬웠던 순간들이 제법 많았다.
그랬던 내가 호주로 완전히 이민을 결정했던 것은 솔직히 엄청난 도전이었다. 한국에서 쌓았던 나의 성을 완전히 깨고 나온 것이었다. 결국 나는 벼랑 끝에 가서야 변화를 선택하고 큰 결정을 하게 되었다.
호주에 와서 나는 그동안 겪지 못했던 실패, 절망, 그리고 좌절을 한꺼번에 겪었다. 나의 경력정도면 무조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야구를 하다가 마이너 리그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메이저 리그 오퍼가 없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올해로 벌써 13년이 되었다. 이렇게 한 곳에 오래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결국에 나는 또 여기 호주에서 comfort zone을 쌓아 올려버렸다.
지난 30년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편안함은 성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경험으로 인해 첫째 딸에게는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도전해 보라고 한 것 같다. 아직 24살 아이에게는 comfort zone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첫째 딸이 새로운 곳에서 얼마나 성장을 할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도전을 선택한 그녀가 고마웠고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난번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첫째 딸이랑 해돋이를 같이 봤다. 해가 뜨기 전에 한참을 기렸던 거에 비하면 해가 뜨고 나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해가 밝게 올랐다. 그것을 보고 그녀가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빠, 저 해가 마치 나 같아. 내 인생은 이제 막 떠오르는 중이잖아.
Gerringong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