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by BM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늘 가까이 나쁜 친구를 달고 다닙니다. 바로 "미움"이라는 다른 감정입니다. 그 둘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서로 앞서거니를 반복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마치 선과 악이 같이 존재하면서 무엇이 더 앞서가냐에 따라서 다른 일이 벌어지듯이 "사랑"과 "미움"의 이 두 개의 감정으로 인해 인간은 때로는 행복하다가도 가끔은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무엇이 더 앞서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당연히 "사랑"이지요. 그리고 사랑이어야만 합니다. 나의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그리고 내 주위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조차도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것쯤은 누구나가 다 알지만 동시에 이것처럼 지키기 힘든 원칙이 정말 있을까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배우자를 사랑하지만 가끔씩 미워하는 감정이 스믈 스믈 올라오게 되어서 부부 싸움을 하게 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가끔씩 나쁜 일을 하거나 서운하게 하는 행동이나 말돌로 인해 미워하게 됩니다.

친구들과 친하게 잘 지내다가도 나에게 피해를 주거나 모멸감을 주는 경우 미워하는 감정이 몰려옵니다.

직장에서 팀원들이나 동료들이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면 나쁜 감정이 생깁니다.


"미워하는" 감정은 일시적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힘이 셉니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불이 났을 때 소화기를 열어 하얀 분무기를 쏘면 불이 순식간에 꺼지듯이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내 마음속이 활활 불타 오를 경우 사랑이라는 소화기를 통해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워하는 감정이 사랑을 앞서가는 그 순간에 상처받고 아파합니다. 미워하면 시원해야 하고 후련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 몸은 그 순간 더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미워할 경우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힘드니까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다가 다시 미워하는 것은 정말 힘들지만 우리들의 감정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과 미움을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의 감정은 내가 억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둘째 딸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입니다. 내가 낳고 지금까지 키운 자식이기에 사랑이 늘 먼저였고 지금까지도 그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미움"의 감정이 찾아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둘째 딸은 자신이 만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뒤에 그 길을 같이 걸어가는 나와 아내 그리고 첫째 딸(언니)은 늘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충만할 경우는 둘째 딸보다 더 앞서 걸어가면서 혹시 이상한 것들이 있나 미리 살피면서 마치 등불처럼 비쳐 줍니다.


때로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약간 작아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런 날들은 둘째 딸과 나란히 걸어가는 날들입니다. 작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TV 보면서 하루의 일상을 무사히 보내는 날들입니다. 그저 그녀와 같이 보조만 맞춰 주는 날입니다.


그러다가 사랑이 아예 뒤처지고 미움이 앞서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둘째 딸의 뒤에서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뒤에서 험담도 하고 욕도 하고 그리고 약간은 절망감도 섞인 상태로 지친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경우는 확실히 우리의 감정에 생채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결국은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아내와 첫째 딸과 나는 다시 사랑이 앞서 나갈 수 있게 힘을 냅니다. 그러면 또 상처받았던 마음에는 딱지가 생기고, 낫고 밝고 희망이 다시 올라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더 빨리 힘차게 둘째 딸보다 앞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에너지를 줍니다. 사랑의 힘은 역시 대단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랜만에 둘째 딸이 우리와 같이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늘 늦잠을 자던 녀석이 웬일로 일찍 일어나서 가겠다고 하니 기뻤습니다. 예배를 다 같이 마치고 난 후 첫째 딸의 얼굴이 좋지 않아 보여서 따로 불러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동생을 보면 잠시 미워했다가 그러다가 다시 더 사랑해야지라는 마음이 생기게 돼. 언니가 되어서 동생을 미워하는 내가 또 싫고 자꾸 이 두 가지의 감정이 왔다 갔다 해서 힘들 때가 있어. 근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솔직히 아빠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그럴걸.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정상일지 몰라.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그래도 미워하지는 말고 더 사랑하도록 애써보자"


어쩌면 첫째 딸의 그 솔직한 말이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동생을 미워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나에게 직접 말해줘서 더 고마웠고 그런 자신이 싫어서 더 슬프다는 사실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구나라고 위로했습니다.


주일날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즉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느끼더라도 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는 말이었습니다. 둘째 녀석도 나중에 그 말씀이 좋았다고 하더군요.


사랑과 미움의 사이에서 우리는 왔다 갔다 하겠지만 절대로 어느 한쪽에서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미움 편에 있다면 빨리 소화기(사랑)를 끄집어내어서 급한 불(미움)을 끄야 합니다. 불은 더 큰 불을 몰고 오는 법이죠.


사랑은 마법이고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코 지키기 쉬운 것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그래도 견디고 또 견디고 그 소중한 감정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다 보면 언제 가는 마법을 부린다고 합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 기적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Lindfield Avenue, Lindfield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2화지나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