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는 한국과는 달리 Mother's day 그리고 Father's day가 따로따로 있습니다.
2025년 아버지의 날을 맞아, 한 아버지로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또 그 단어가 지닌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가도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순간 마음이 급해지고 당황스럽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라면 두려움까지 밀려옵니다. 하물며 그것이 낮이 아니라 깊은 밤이라면 혼란은 더욱 커집니다.
“아버지”라는 이름도 어쩌면 이와 비슷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낯선 길에 들어서는 것 같은 경험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능력 있는 아버지라도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은 상황 앞에서 당황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입니다. 유경험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의 모습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처럼 서툴고 투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아버지들도 조금씩 더 좋은 어른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예상치 못한 길에 들어선 듯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이상적인 아버지라면 그런 순간에도 평정심과 인내심으로 가족을 지켜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흔들리고 무너지고 상처받으며, 그저 평범하고 나약한 한 남자로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더 많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그 선택의 순간부터 아버지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아버지들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성경 속 야곱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산을 오를 때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갈등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지만, 자식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 역시 흔들렸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결국은 한 사람일 뿐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기쁘면 웃고, 힘들면 화를 내고, 때로는 실수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속 슈퍼맨 같은 아버지들은 현실 속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버지의 날만큼은 그 무거운 모자를 잠시 내려놓고 싶습니다.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지도록 그냥 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오면, 다시 그 모자를 쓰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아빠가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곧은 길만 걸어온 것도 아니란 걸 너희도 잘 알 거야. 하지만 아빠의 모든 걸음은 언제나 너희를 생각하며 내딛는 발걸음이란 걸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아빠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배워가고 있는 건 다 너희 덕분이야. 매일 다시 그 무거운 모자를 쓰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이 길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너희 때문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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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편 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