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드니는 우기입니다.
사실 시드니에 살면서 우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파란 하늘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매일 일상인 곳이라고 살아왔는데 올해는 7월 말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거짓말 아니고 거의 매일 비가 내렸습니다. 이 정도면 우기라고 말해도 되지 않나 싶네요.
최근에 둘째 딸이랑 같이 퇴근 후에 같이 한국 영화를 봤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한국 영화 축제' 행사가 있는데 올해 첫날 영화 "청설"이 상영되어서 가서 보게 되었습니다.
reference from 나무위키
영화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듣고 알던 것이라 특별히 개대하 거나 기다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내용도 대충 어떤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특별한 관심은 없었고 사실 둘째 딸이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예약을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직접 영화감독님이 무대에 올라와서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주된 스토리 라인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도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독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과 그 동생을 돌보는 언니를 통해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저에게 보였고 들렸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을을 울렸던 대사가 있었습니다.
동생 - "언니, 언니는 꿈이 뭐야?"
언니 - "나? 네 꿈이 내 꿈이지 “
동생 - "아니, 내 꿈 말고 언니 꿈이 뭐냐고?"
동생 - "맨날 나만 챙기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내 수영 레슨비 내고. 평생 이렇게 살 거야? 난 언니가 실망할까 봐 내 꿈을 포기할 수도 없어. 이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지?"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꿈을 나의 꿈인 것처럼 살아가곤 합니다.
이런 인생의 대부분의 공통점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요. 가족이거나 친한 친구이거나 아니면 친한 동료 등등 다양합니다.
왜 그렇게 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희생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나아지거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특히 가족에 있어서 이런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아이들의 꿈에 의지하고 산다거나, 남편의 꿈이 마치 자신의 꿈인양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도 최근까지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청각 장애인 동생을 챙기는 언니처럼 마음의 병으로 아파하는 둘째 딸을 위해 매일 이것저것 챙기고 모든 우선순위를 그 아이에게 두고 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나의 모든 관심과 시선이 그 아이에게 온 통 쏠리고, 눈을 떠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자는 동안에도 그랬습니다.
당시에 나도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맞는 방향이고 최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논리였을 뿐 착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째 딸도 그리고 나도 둘 다 결국은 견디고 있었을 뿐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가족끼리라도 다른 사람의 꿈을 함부로 정하거나 혹은 허락도 없이 그 꿈을 리드해 가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설령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간다 치더라도 결국엔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둘째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이젠 아빠 인생을 살아. 나만 보지 말고...."
그날 딸의 그 말은 내 가슴에 평생 상처로 남아 새겨졌서 지워지지도 않겠지만 어쩌면 그 말을 해준 딸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런 척했지만 딸에게 힘든 나의 모습이 다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자신의 꿈을 향해 같이 걷고 달려가고 자신을 질질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나를 챙기게 되었고 아내와 첫째 딸도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청설의 그 장면에서 내 뺨은 뜨거워졌습니다.
내 꿈은 아내와 행복한 은퇴하기입니다.
그래서 둘 다 지금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10년이나 15년 뒤에 같이 은퇴해서 지금보다는 더 나태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아내의 꿈은 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랑 다른 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화려하고 분주한 삶을 희망하는지도 모르죠. 분명히 아내도 자신만의 꿈이 있다고 믿습니다.
영화를 보고 와서 그날 저녁에 아내에게 꿈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만의 꿈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내 꿈 말고 니 꿈 말이야.
오랜만에 비가 멈추고 주말에 다시 햇살이 나왔습니다.
역시 시드니는 비보다는 파란 하늘이 더 잘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각자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라" 갈라디아서 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