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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은

by BM

최근에 아내가 인스타 그램에서 좋은 글을 봤다고 하면서 나에게 공유해 준 적이 있었다. 참 공감이 되는 글이었다.


"어제 (yesterday)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내일 (tomorrow) 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오늘(today) 은 선물이다."

그러면서 아내는 그냥 오늘 하루만 보고 감사해하고 최선을 살면 된다고 했다. 더 이상도 더이하도 하려고 하지 말고 딱 그것만 매일매일 반복하면서 살면 된다라고 굳이 첨언해서 설명까지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참 좋은 말이고 참 맞는 말이다. 언제 어느 시점에 들어도 다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살아갈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자주 보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에서 70세는 장년이다. 거의 대부분이 90세를 넘긴 분들이라고 했다. 그 나이쯤 되면 이젠 더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말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오래 살고 싶어 하신다고 한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야 말로 지나간 시간들은 과거이고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오늘 하루가 얼마나 감사할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최근 들어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특히 갑자기 화가 나거나 짜증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감정 조절이 잘 안 되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왜 그랬을까?"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내는 그런 내 모습에 불안해했다. 그녀는 내가 갱년기가 왔나라고 생각도 했다. 내 나이가 딱 그 정도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갱년기를 경험한 적도 없으니 이것이 갱년기 증상인지 아닌지 아내도 나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기차는 철로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못한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움직이지 못한다. 약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마음을 빨리 털고 다시 궤도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성급해지고 오히려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 "LET THEM" 이론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관련해서 쓴 책도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갔다고 들었고, 저녁 먹다가 둘째 딸이 나에게 권하기도 했다. 결국 지나가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 신경 쓰고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시간이든 공간이든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이 지나가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고 나니까 약간 좋아졌다. 욕심이었고 자책이었다. 나의 능력 밖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으로 나를 나 스스로가 무너지게 했다. 결국은 남이 아니라 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내려놓고 보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온 그 과정을 칭찬하기로 했다. 결과보다는 지나온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수없이 듣고 또 들으면서 공감하기를 수없이 했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에 놓이니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백세 인생에서 한 점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가수 이적이 리메이크한 "걱정하지 말아요"의 가사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동감이 된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힘든 것은 감당할 수 있다. 힘든 일은 때론 개인의 능력이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나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힘든 일들로 인해 만약 새로움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새로움을 잃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날 동기 부여가 없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니 "동기부여(motivation)"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어떤 이는 옆에 있는 아내가 동기부여이기도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동기부여이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그 어떤 목표가 동기 부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중간중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인생길에서 동기 부여 하나쯤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다시 새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으면 힘든 일이 많아졌을 때 정말 노래 가사처럼 새로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다고 생각된다.


지나간 것은 돌이켜 보면 다 이유가 있었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도 그냥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래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지나간 것들을 너무 많이 혹은 자주 들춰 볼 필요는 없다. 만약 그것들이 동기 부여가 되어서 다시 새로움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면 몇 번이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며칠 동안 나의 짜증으로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해 주고 도와주려고 애쓰는 아내의 모습이 고마웠다. 이래서 부부인가 라는 아주 고전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주일에 목사님이 "OOO 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라고 하시면서 "OOO"에 들어갈 사람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쁨이고 싶다. 나를 보면서 삶에 동기가 생기고 새로움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기차는 늘 앞으로 직진한다. 기차가 우회전을 하거나 좌회전을 하거나 유턴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기차가 뒤로 후진하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우리도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중간에 힘들어서 중간역에서 잠시 쉬는 것은 하더라도 또 새롭게 직진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나온 철길은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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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dfield train station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전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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