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연재글에서 말씀드렸던 특별하고 긴 연말 휴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획했던 대로 평소보다 조금은 나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2025년 연말과 2026 연초를 보내면서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몇 편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2개의 영화가 제일 제 기억에 남습니다 - Good Bye June 그리고 Everybody's fine.
Refererenced by wikipedia
두 영화 모두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으로 나오는 "Everybody is fine"이라는 영화가 더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어서 오늘은 그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잠깐 영화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주의 : 영화 홍보도 아니고 스포도 아닙니다)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가 된 주인공(로버트 드니로)은 자식들 (2남 2녀)이 모두 집으로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들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못 간다고 해서 크게 실망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대신 자식들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해 아무 예고도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먼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은 아무리 집 앞에 기다려도 연락이 없고 대신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돌아섭니다, 둘째 딸은 큰집에 살고 있지만 뭔가 가족 관계가 어색해 보였고, 둘째 아들은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그저 드러머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막내딸은 자기 집도 아닌데 자신의 집인양 아빠에게 자랑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이에 대한 것을 숨깁니다.
주인공은 자식들이 자신에게 뭔가를 하나씩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기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갑자기 심장마비가 생겨서 응급실에 입원하게 됩니다. 결국 자식들이 다 병원으로 모였으며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다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왜 사실대로 말 못 했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에 대해 사실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첫째 아들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고 첫째 딸이 말하는 순간 아버지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우 슬퍼합니다.
그래도 영화는 결국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남은 자식들은 크리스마스에 다 같이 아버지를 찾아가고 함께 즐거운 파티를 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아버지에게 모든 것들을 사실대로 다 말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주말이면 꼭 영상통화를 하십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사는 게 늘 걱정이라고 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가끔은 내가 먼저 생각나서 할 때도 있지만 거의 아버지가 항상 먼저 하시는 편입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도 얼굴 보고 안 아프고 잘 살고 있는지 묻는 게 거의 대부분의 대화 내용입니다.
그러면 나는 항상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애들도 다 공부하느라 직장 다니느라 바쁘고 잘 지내요...."라는 동일한 대답을 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변화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 편입니다. 어디가 아픈 경우도 진짜 병원에 갈 정도가 아니면 다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당신들에게 걱정을 더 얹어 주고 싶지 않아서가 제일 큰 이유이고 둘째는 그런 것들을 공유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도 어른이니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사실 두 번째 이유를 부모님이 들으시면 많이 서운하실 것이라고 생각되기는 합니다. 부모라는 것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들에게 기댈 곳이 되고 싶어 하시고 여전히 당신들이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가끔은 기대고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당신들을 자식들의 힘듬으로 인해 잠 못 주무시고 근심 걱정하면서 사시는 것을 나 자신이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자식들은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된 자식들은 자신들의 아픔과 고민들을 아버지에게 공유하기 싫었고 대신 "everything is fine"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눈에는 어릴 적 아이들이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미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의 눈에는 여전히 초등학생 어린이처럼 보였습니다.
솔직히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 공유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것만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영화를 보던 첫째 딸이 옆에서 나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는 진짜 다 말하는 것 알지?"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나중에 너도 더 큰 어른이 되면 안 그럴지도 몰라...."
딸아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냐 그래도 나는 다 말할 거야 아빠한테...."
둘째 딸이 아프기 시작한 지도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사이 병원에 몇 번씩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둘째 녀석의 아픔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시련이었습니다. 아내도 나도 그리고 첫째 녀석도.
물론 본인 당사자가 제일 괴롭고 힘들겠지만 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지치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사실대로 부모님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둘째 녀석에 대한 안부를 물으실 때마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네, 잘 지내요 별일 없어요"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처럼 나의 아버지도 이마 눈치채고 알고 있는 것일 줄도 모릅니다.
오히려 나의 마음이 더 아플까 봐 일부러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파란 거짓말이라고 애써 나를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가면 참회의 시간이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용서하고 회복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저의 참회는 늘 같습니다. 둘째 딸에 대한 부족했던 나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나의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둘째 딸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말을 해야 하나라고 말입니다. 나중에 더 서운해하기 전에 말입니다.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부모는 자녀가 완벽하기를 바라기보다 자녀와 연결되어 있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식은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되기를 원하고 멋지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약한 모습도 보이는 것이 신뢰를 쌓아가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생각이 나 자신이 나의 부모님을 볼 때 생각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딸이 나와 어떻게 소통할까 생각해 보니 났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에게 50이 훌쩍 넘은 나는 아직도 초등학생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말이죠.
Winnererremy Bay, Mona Vale NSW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 요한일서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