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는 해바라기처럼 살았다

by BM

갑자기 식탁 위의 꽃병에 꽃아 둔 해바라기 꽃이 너무 이뻐서 꽃말을 찾아보니 그중에서 "기다림"이라는 것이 있네요. 나를 쳐다보는 이 해바라기가 2025년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잠시 묘한 감정 이입이 되었습니다.


오랜 그리고 간절한 기다림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뭔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계속 바라보면서 "제발....."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외쳤던 적이 많았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고 그러다가 지치면 좀 쉬었다가 또 기다리기를 반복하는 시간들로 힘들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희망"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적"을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신기하게도 "희망"이라는 것은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그것은 우리 인간처럼 생명력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숨을 쉬기 시작하면 같이 살아났습니다.


오늘은 2025년 내내 그런 희망을 가슴에 품고 기적을 바라면서 기다렸던 것들을 회상하면서 글을 써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입니다. 어떤 논쟁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둘째 녀석을 기다리다


둘째 녀석이 자신 만의 동굴로 들어 간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년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변화가 있기를 바라면서 기다려왔는데 녀석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 음침한 곳에서 제발 나오기를 바라고 기다렸다.


아예 안 나온 것은 아니다. 마치 일터에서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처럼 가끔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은 있었다. 그러다가도 한동안은 안에서 꿈쩍을 안 하고 나를 속상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 녀석의 동굴 앞에서 마치 짝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집 앞을 서성 거리듯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때론 하루 종일 그 앞에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린 적도 많았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우나 추우나 변함없이 기다렸다.


그 녀석의 그 안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하면 가끔 응답이 온다. 그렇게 뜸하게 오는 응답도 답변이 너무 짧다. 문자를 주고받은 내역을 보면 항상 내가 보낸 글들이 2배 내지는 3배 정도 길지만 그녀의 답변은 늘 단답형이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가고 올해도 그 녀석이 그 어둡고 눅눅한 동굴 속에서 한해를 끝내려나 보다고 실망하면서 다시 내년에도 이 길고 긴 기다림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제는 이 기다림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녀석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가 몇 주 전에 그 녀석이 동굴에서 나왔다. 순간 내 기도에 응답을 하신 건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깥세상의 햇볕에 익숙하지 못한 듯 불편해 하지만 곧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하나의 기다림이 끝났다. 다행이다.



2. 승진을 기다리다


매년 승진을 기다렸다. 직장인의 운명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승진은 그냥 연차만 채우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도 그런 승진 시스템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도 안다. 외국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더욱더 성숙해져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나 같은 이민자는 늘 뭔가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는 것과 원래 본업을 동시에 해야 한다.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약점들을 훌륭히 극복해서 이민자이지만 매년 성장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면서 사실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주어진 것들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것이 지난 10년의 세월이었다.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늘 고마웠다.


작년 (2024)과 올해 (2025)는 이민 와서 나의 커리어 동안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간들이었다. 기억에 남을 해들이었다. 한 번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뭔가를 기대하고 기다린 적이 없었다.


2024년이 끝나고 나서는 솔직히 그냥 운이 좋았다고 치부해 버렸다. 좋은 프로젝트에 좋은 사람들과 일을 했으니 결과가 좋았던 것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올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 같았다. 그런 결과로 더 큰 성취를 이루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다렸다. 아니 기대를 했다는 것이 솔직하다.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요청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물로 그동안의 고생했던 시간들을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두 번째 기다림이 끝났다.

결국 나는 승진을 했다. 몇 단계를 건너뛰는 점프를 했다.



3. 그분의 부르심을 기다리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신론자였다. 부모님이 불교를 믿고 있지만 그건 그분들의 선택이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늘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그러다가 3년 전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 익숙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 여간 불편한 게 많았다.


새로 만난 사람들, 어려운 성경 말씀, 처음 하는 기도, 교회 내 소모임들이 편하기는커녕 오히려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 몇 주 동안 그만둘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그곳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뭔가 다른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설명하기 힘든 그 끌림으로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게 되었고 그 속에서 좋은 에너지와 평안함을 많이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나라는 의심이 많았다. 이민 사회에서 교회를 신앙과 종교보다는 한인 커뮤니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종류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니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주위에서는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으냐 그냥 셰레 받고 봉사도 하고 사람들과 교제도 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쉽게 말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분이 생각하시는 좋은 때가 올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성경을 더욱더 열심히 읽고 이해하려고 했던 2025년이었다. 둘째 녀석을 기다리는 동안 성경을 더 열심히 읽었다. 믿음보다는 어쩌면 나는 성경에서 나오는 기적처럼 그런 것들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끝났다. 12월 25일. 그분은 나를 불렀고 영광스럽게도 그분이 태어나신 그날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올해의 기다림을 통해서 배운 나름대로 "기다림"에 대한 정의를 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은 더 사랑하는 것이고, 더 노력하는 것이고, 그리고 교만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치열했던 2025년이 이제 거의 다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를 보낼 때가 된 듯합니다.

내 기억에 남을 한 해였습니다. 365일의 긴 시간이 지나고도 나는 여전히 여기 있고, 내 곁에 아내가 여전히 있으며, 두 딸들은 (그중에서 한 명은 돌아온 딸 ㅋㅋ) 여전히 나를 좋아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아무도 모릅니다. 해바라기처럼 또 누군가를 또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려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벌써부터 몇 개가 머릿속에 생각납니다.

그래서 휴가 중에도 자꾸만 머릿속이 비워지지 않고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 이 글이 2025년 마지막 글입니다.

브런치 작가 모든 분들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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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 하박국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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