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모두의 배후입니다

김소연, <주동자>

by 난란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여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김소연, <주동자>


장미꽃은 왜 투신하였을까. 그 무거운 뿌리를 버리고 어떻게 몸을 던졌을까. 먹이고 살리는 탯줄과도 같은 삶의 끈을 끊어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삶보다 더 무거운 것, 보이지도 않는 것, 양심이라든가 정의라든가 사랑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오히려 손에 잡히고 눈동자에 비치는 것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장미의 죽음으로 이 시는 시작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며 장미는 죽어서 꽃잎을 남긴다. 유리처럼 연약한 몸에 바닥은 얼마나 아프고 단단했을까. "나"는 꽃잎 조각을 주우며 생각한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여 있다던/태어날 때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처럼, 장미는 죽어서 유서를 남겼을 터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장미를 보살피는, 장미를 아는 전지하고 전능한 농부의 말에 기대자면 그 유서란 곧 운명으로 읽을 수 있다. 장미의 죽음에 별자리의 무게가 실린다.


유서란 남은 말이다. 남기는 말이다. 남은 이에게 남기는, 물려주기를 바라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장미의 유지를 이어간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한다고 선포하면서.


빗방울은 어디에 속하는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빗방울의 위치에 "이중국적"이 더해져 빗방울의 방향은 모호해진다. 장마전선은 장마전선前線인가, 장마전선戰線인가. 장마에 속하는 빗방울은 어떤 힘을 반대하였을까.


그럴 수 없는 일은 금지된 일이다. 그럴 수 없는 일은 꼭꼭 숨겨진다.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절규가 필요하다. 소곤거림은 약하다. 중얼거림은 바깥에 닿지 못한다. 고함과 절규, 거슬리고 뒤흔드는 소리가 필요하다. 알려지지 않은 일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 폭로暴露는 곧 사나운 이슬이다. "빗방울이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밤새 몰아치는 빗방울, 폭로에 온 몸이 젖은 장미나무에는 가시만 남았다. 장미꽃은 어디로 갔을까. 장미꽃의 투신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이다. 빗방울의 무늬를 읽은 장미꽃의 연대다. 빗방울의 유서는 장미꽃에게, 장미꽃의 유서는 "나"에게 연결된다. 빗방울의 절규는 장미꽃의 움직임이 되었고, 장미꽃의 움직임은 "나"에게 대물림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빗방울과 장미의 유지를 잇는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라고 선포하면서, 빗방울이 두드렸던 창문의 안쪽에서 벗어나기를 결심하면서.


"나"는 죽은 장미꽃을 만지면서 빗방울의 절규를 읽는다. 읽은 자는 읽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연대는 신기한 전염병이다. 고통을 옮기고, 그 고통을 읽게 되면 앓게 된다. 앓게 되면 고통의 편으로 움직이게 된다. 읽지 않는다면, 그뿐이다. "나"는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선물로 알고 가져"가기로 마음먹기에 아프다. 가시를 뽑지 않기로 결정했기에 앓기로, 움직이기로 결정한다.


그러므로 엄중한 물음에 답한다. 이 고통이 배후라고. 장미꽃과 빗방울이 배후에 있다고.



<주동자>의 "나"처럼, 이 겨울 거리로 쏟아진 수많은 깃발들은 답하고 있다. 대체 누구의 사주를 받았길래, 어떤 대가를 보장받았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느냐는 의문에 <집에 누워있기 연합>, <집회하다 득음한 사람들 모임>, <민주묘총>, <전국낭만해적단>의 깃발로 답한다. 우리는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내가 누군가의 앞에 있고, 누군가가 나의 뒤에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모두의 배후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자 신호등은 무용해졌다. 사람들의 구호와 깃발이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빨간불에도 행진은 이어졌고 파란불에도 사람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얼굴에서 같은 아픔을 읽으며 핫팩과 과자를 나누었다. 다시 만난 세계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같은 박자로 몸을 흔들었다. 피부의 무늬를 같은 파동으로 고쳐 그리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