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신의 말씀을 감히 다시 쓰는 것은 죄가 될까요
제 유년 시절의 주말에는 항상 교회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신실하셨고, 아버지는 부모님께 신실하셨기 때문이죠. 기억나지 않는 유아세례도 받았고요.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꽤 힘든 일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는 것도 좀이 쑤셨습니다. 그래도 버릇 없이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꾹 참고 성경을 읽는 것뿐이었죠.
연애도 시작과 끝이 가장 재밌다고 하듯이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 세상이 처음 열리고 세상이 닫히고, 말하는 뱀과 용과 나팔과 천사가 넘쳐나는 이야기가 재미없기란 더 힘들지 않겠나요? 그 때부터 읽어두었던 성경은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서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니까요.
서구 문화와 문명에 관심이 있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들의 상징과 인유를 파악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성경을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막막하다면 만화로 한 번 읽고 난 후 글로 접하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만 읽으면 구절과 표현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글로도 꼭 읽어 보세요.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한국 현대시에서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시인은 아무래도 윤동주입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일가가 기독교에 입문하였고,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명동촌은 구성원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윤동주를 가르친 학교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 연희전문학교, 릿쿄대학교, 도시샤대학교도 모두 기독교계 학교였죠.
시인의 환경뿐 아니라 그의 시도 기독교와 연관됩니다. 기독교 상징에 기반한 시, 부끄러움과 참회, 십자가, 맑은 눈의 신실한 청년……시인의 이미지도 한몫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시가 그의 기독교적 믿음을 잘 나타냈다고 읽히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요? 윤동주의 고뇌는 신에 귀의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가지고 윤동주의 시를 읽어 봅시다.
윤동주는 1917년에 태어나 1945년에 사망했습니다. 광복을 눈앞에 두고 사망했다는 것이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곤 하죠. 북간도 명동촌에서 자란 윤동주는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녔으나 1936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숭실중학교가 폐교되면서 광명학원 중학부로 편입합니다. 그리고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지요. 연세대학교에서 윤동주시문학상을 제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윤동주는 어렸을 적부터 글을 썼는데, 1934년에는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를 썼고, 1937년에는 《가톨릭소년》에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941년에는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 도쥬'로 창씨개명을 하게 되며 창씨개명 이전 「참회록」을 쓰기도 했지요. 이후 릿쿄대학에 진학하여 「쉽게 씌어진 시」를 씁니다. 이후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편입하게 되지요.
교토에는 윤동주의 사촌이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일제의 감찰대상이었던 송몽규가 있었고, 만나 민족해방에 대해 합심하던 그들은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어 1944년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됩니다.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설이 강력하지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시 31편을 모아 1948년에 만들어진 유고시집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윤동주의 시를 읽어 봅시다. 먼저 「팔복」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 -마태복음 5장 3-12절
「팔복」은 부제에서도 직접적으로 나타나듯 성경의 패러디입니다. 그러면 마태복음도 읽어보아야겠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3-12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7장의 내용은 예수가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설교한 내용으로, 그리스도교의 대헌장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특히 5장의 내용은 현세에서 고통받는 자들에게 위로와 더불어 내세에서의 행복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내용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기저에는 약속과 보상이 존재합니다. 5장에서 나타나는 "천국"과 "위로", "땅",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 "하나님을 볼 것",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 "복",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과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고통과 신앙을 전제로 합니다. 살아 박해를 받는다면 죽어 상을 받는다는 조건문의 형식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어째서 「팔복」에는 슬픔만이 있는 것일까요? 윤동주는 어째서 슬픔 뒤에 기쁨이 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뒤엎어 버린 걸까요?
내세에 대한 약속과 보상은 죽음 이후를 위하여 비참한 현재를 감내하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삶을 지향하고, 부조리와 억압을 직시하기보다는 삶이란 내세를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한 까닭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이 고난과 슬픔이 천국의 조건이 된다면 변혁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내세를 기약하고 감내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이와 더불어 윤동주를 그토록 번민하게 했던 시대상을 살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사람입니다. 그가 태어난 명동촌은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을 비롯한 사람들이 혼란한 시기에 조선을 밝히기 위해明東 조선을 떠나 중국 땅에 만들어진 곳이지요. 즉 윤동주의 삶 이전부터 죽음까지 제국주의가 드리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제국주의는 식민자본주의에 기반했습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해 식민지로 만들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유지했지요. 그리고 이 제국주의에 힘을 실어준 것이 기독교이기도 했습니다. 제국주의의 시발점이 유럽이었고 그들의 종교가 기독교였다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갖습니다. 천국과 지옥, 선과 악, 천사와 악마,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같은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옳고 후자는 그르지요. 단순히 둘로 가르는 것뿐 아니라 한편에 긍정성을, 다른 한편에 부정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는 관용과 연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적이고 물리적인 정복을 뒷받침하는 약탈적 요소 또한 있습니다. 불신자와 이교도를 신의 이름으로 정복하고 이를 통해 '옳은' 믿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이민족의 땅을 침략하고 비그리스도교인들을 교회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기독교를 모르는 땅은 '야만'의 땅이었고, 이를 '교화'하고 '전도'하여 '발전'시킨다는 제국주의의 명목 또한 가능했지요.
그리고 윤동주가 바로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서 살아갔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신이 옳고 자비롭다면 어째서 불합리함과 악이 존재하느냐는 신정론神正論의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윤동주의 벗이었던 문익환과 친척인 윤일주는 윤동주가 광명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주 신실하였으나 연희전문학교 3학년 무렵부터는 신앙심이 약해지고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고 말합니다. 「팔복」이 쓰인 1940년도 그 무렵이지요.
그러므로 「팔복」을 그저 신실한 신앙시로 보는 것은 식민지를 살아간 청년의 괴로움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불합리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문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음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도가 「팔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씀'을 다시 쓰는 윤동주의 시도는 「팔복」 뿐만 아니라 다른 시에서도 나타납니다.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윤동주, 태초의 아침
「태초의 아침」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창세기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는 말 그대로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신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겨나는 식으로 신은 세상의 온갖 것들을 만듭니다. 낮, 밤, 하늘, 바다…… 그리고 세상 만물을 만들고 인간을 만듭니다. 흙으로 빚어 남자인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를 떼어 여자인 하와(이브)를 만들지요. 모든 것이 풍족한 에덴 동산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단 하나, 중앙에 있는 나무의 과실만은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금기를 어기는 데서 시작되지요. 뱀이 하와에게 말합니다. 신이 그 과실을 먹으면 죽을 것이라 했지만 죽지 않으며,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이지요. 그 말을 들은 하와가 과실을 먹고 아담도 함께 먹습니다. 선악과 부끄러움을 알게 된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는 모든 인간의 원죄原罪가 되어 대대손손 이어집니다. 여자는 해산하는 고통을 겪고 남자는 죽을 때까지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이 죽어 지옥에 가는 것도 최초의 인간이 저지른 죄 때문이지요.
자, 그러면 「태초의 아침」을 읽어 봅시다. "봄날 아침도", "여름, 가을, 겨울"도 아닌 "아침"이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어떤 아침일까요?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태초의 아침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인 그 날 말이죠. 그런 날 어떤 사건이 발생하나요? "빨-간 꽃이 피어"납니다. "햇빛이 푸른데" 말이지요.
꽃은 해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꽃은 땅의 것이고 해는 하늘의 것입니다. 위상적으로나 존재적으로나 해는 꽃보다 우월하지요. 그러나 이상한 것은 꽃이 "빨-간" 색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햇빛이 푸른데"도요. 붉음과 푸름은 정반대에 위치한 색인데다가 "푸른데"라는 역접접속사는 그 차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저렇게 다른 것일까요? 답은 3연에서 제시됩니다. "그 전날 밤에/모든 것이 마련되었"다고 말이죠.
태초의 아침 그 전날, 신이 "마련"한 것이 "빨-간 꽃"과 "푸른" "햇빛"이라는 것이지요. 빨강과 파랑은 정반대인 것 같고, 해가 푸르면 꽃도 푸르러야 할 것 같고, 세상을 둘로 나누고 약한 것은 강한 것을 따르면 되는 것 같고. 그러나 「태초의 아침」의 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빨강과 파랑의 구분을 포용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상징조차 부수어버립니다.
"사랑은 뱀과 함께/독은 어린 꽃과 함께"를 보시죠. 성경에서 뱀은 악을 상징합니다. 금기를 어기게 만들고 인간에게 원죄를 선사했지요. 그러나 이 시에서 "뱀"은 "사랑"과 함께, "뱀"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엮입니다. "어린 꽃"은 무엇인가요? 이제 피어난 "빨-간 꽃"이겠지요. 신께서 태초 이전에 마련하신 것.
이처럼 「태초의 아침」은 기독교 상징을 가져오지만,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신이 금기를 만들고 벌을 주고 천국과 지옥을 구분했다면, 이런 세계관이 현재에 고통과 불합리함을 불러온다면, 윤동주는 신의 말씀을 시를 통해 다시 쓰는 것이지요. 이러한 패러디를 통해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원原텍스트와 패러디 텍스트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독자에게 시를 읽게 하고, 다시 성경을 읽게 하고, 다시 시로 돌아와 어떤 부분이 같고 다른지, 어째서 같고 다른지 생각하게 만들지요. 그러면 「태초의 아침」과 더불어 「또 태초의 아침」은 어떨까요?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윤동주, 또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에서는 기독교와 제국주의의 관계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 말씀"이 "전신주"를 통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전신주는 근대의 상징이고, 조선에 있어 근대화란 식민주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화자는 이를 귀담아들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한 연을 떼어 놓고 생각할 뿐이지요. "무슨 계시일까" 하고요.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죄"입니다. 그것도 작은 죄가 아니라 '원죄'를 선택합니다. "눈이/밝아"오는 것은 금기된 과실을 먹음으로써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게다가 화자는 성경의 이브와 아담과 달리 죄를 지음으로써 벌어지게 될 일들,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 "이마에 땀을 흘"릴 것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죄를 짓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기독교 신자의 목적이 원죄에서 벗어나 천국에 드는 것이라고 할 때, 윤동주 시의 화자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전신주"로 내려오는 "하나님 말씀"을 말이죠.
윤동주에게 있어 기독교란 생의 시작부터 함께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신의 말씀이 억압의 기제로 작동한다면 어떠할까요? 선택받은 민족이 있고 그렇지 않은 민족이 있다면, 정복이 있고 압제가 있다면, 신께서 세상을 둘로 나누고 한 쪽의 손을 들어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께서 명하시는 바를 따라야 할까요? 그것은 옳은 것일까요?
믿음과 현실, 교리와 정의 사이의 치열한 고민 끝에 윤동주의 시는 그저 순응하는 신앙에서 벗어납니다. 내세만을 바라보지 않고 현재를 직시하고, 푸름과 붉음이 대척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뱀과 꽃, 사랑과 독을 한데 껴안을 수 있는 새로운 말씀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당대의 현실 질서인 식민주의를 벗어나는 문학적 시도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깊이 뿌리박힌 믿음에 대한 의구심을 놓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신앙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인과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을 때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될 때 현재에 안주하지 않을 용기,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설 용기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 용기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상상력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나 쓰는 것이 무슨 현실을 바꿀 수 있느냐고 말이지요. 언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윤동주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으셨겠냐고요. 그러니 말씀으로 우리를 새로이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겠냐고요. 윤동주는 신앙에 번민하였지만 끝내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았지요.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