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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pr 06. 2024

설명할 수 없었던 마음을 그리다

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 

한 번 손에 든 책을 쉬지도 못하고 주르륵 읽어버리는 거, 옛날옛적엔 종종 했던 것도 같은데 몇 분에 한 번씩 이런저런 앱들이 보내는 알람도 확인해 주랴 문자도 읽어주랴, 메일 회신도 하랴 이래저래 집중력 떨어지는 소리들이 훼방을 놓는 요즈음 책 한 권을 쉬지 않고 읽는 것은 가히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글쎄, 한 편에 2만 자 전후하는 단편 하나 정도는 쉬지 않고 후루룩 읽을지 몰라도, 장편이라면 글쎄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버더레스. 넌더레스, 또 뭐 있습니까, 아무튼. 간혹 그런 책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작년에도 그런 책을 하나 건져서 아주 홀리몰리 홀리카우 그 자체였는데… (이유리 작가의 「브로콜리 펀치」)     

오늘(정확히는 어제)도 그런 책을 하나 발굴해서 이 놀라움이 퇴색되기 전에 얼른 얼기설기 버무린 잡문이라도 쓰련다. 안전가옥에서 나온,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 소설집이다. 



칵테일, 러브, 좀비 | 저자 조예은 | 출판 안전가옥 | 발매 2022.11.10.


일단, 단편이어서 전개가 빠르다. 호흡이 느린 소설을 읽기 힘들어한다면 이 책은 아주 괜찮은 대안이 될 것 같다. 표제작을 포함하여 <초대>, <습지의 사랑>,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이렇게 네 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네 편은 각각의 이유로 슬프고 아픈 구석을 하나씩 품고 있다.      


장편파인가, 단편파인가. 물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장편이건 단편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 기꺼이 읽겠지만, 그중에서도 약간의 선호도를 가리자면 분명히 둘 중 어느 한쪽을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는 쪽이 있다. 책 친구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 좀 읽는다 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장편을 선호했다. 배경이 자세히 제시되고 인물들 간의 관계나 감정선 빌드업이 잘 되어있는 작품들을 좋아했다. 아니, 편하게 느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장편에서 친절하게 작가가 모두 풀어놓아 주는 것을, 단편은 분량이라는 제한사항이 있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강한 압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풀어놓거나 혹은 결결이 들여다보며 살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되다 보니 단편을 읽는 것은 근력이 조금 더 든다.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단편은 읽어 버릇하지 않으면 힘들 수밖에 없다.      


데이먼 나이트도 이렇게 말했다.     


단편소설에서는 모든 장면이 양식 구축에 기여해야 한다. 어떤 장면이나 사건, 나아가 하나의 단어나 문장조차도 담당하는 기능이 없으면 빼야 한다. 사실 단편소설에서는 압축이 상당히 중대한 문제라 구절 하나하나가 반드시 서너 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완수할 수 있어야 한다. 플롯을 진전시키고, 인물 창작에 보탬이 되고, 배경 정보를 내놓고 등등. 마치 저글링을 하는 사람이 공 서너 개를 한 번에 공중에 띄우듯 말이다. - 데이먼 나이트,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265쪽      


그러니 단편을 자주 읽어보지 않았다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냥 낯설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단편에서 작가가 독자를 전염시키고자 하는 주된 감정이 마침내 폭발하면 그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힘이 세서, 그 여운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이제 이 소설의 지배적인 감정이 어떠한지 느껴질 것이다(결말에 대해 그 어떤 강렬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잘못된 아이디어라는 뜻이다.) - 데이먼 나이트,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84쪽      


데이먼 나이트의 이 조언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조예은의 단편집은 강력한 한 방이 있었다. 정확하게 설계된 플롯이 있었을 것이다. 속절없이 당해서 어딘가에 풍덩 빠진 뒤 엉망진창이 된 손으로 여기저기를 닦아내다 보면 이것이 무슨 마음이구나, 비로소 알게 되는 그런 뒤늦은 깨달음의 감각.      

시간은 없고, 책은 좀 읽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지루한 서술이나 묘사는 좀 싫고, 이렇게 까다로운 고객님께(?) 권하기에 딱 좋은 소설이다.      


사실 싫은 기억이 더 많았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아빠와 함께 사는 엄마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빠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풀 때면 아빠와 마찬가지로 싫었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적당히 웃었고, 그들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대학을 다녔다. 가끔은 사랑한다고도 말했다. 주연은 그들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때때로 자신조차 싫어졌다. 결국 그 모든 증오의 밑바닥에 깔린 건 애정이었다. -89쪽   
어떤 감정은 누군가 이토록 생생하게 끄집어내 주어야만 그 존재를 비로소 인정하게 됩니다. 조예은 작가가 쓴 네 편의 이야기는 마음속 어둡고 축축한 곳에 있는 감정, 특히 여성이 느낀 감정을 홀대하지 않고 쓴 이야기입니다. ‘홀대하지 않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단편집의 톤을 결정했습니다. -164쪽, 프로듀서의 말 중에서      


편집자의 말은 잘 인용하지 않는데, 이 PD님의 말이 이 소설집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옮겨 보았다. 이 인용문이 책에 대한 명료한 소개가 되었기를 바란다.      


역시 소설은 정말 좋습니다. 소설 읽는 분들이 좀 더 늘어나기를,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또 조금 자라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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