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Apr 26. 2024

어색하지만 자기소개

2.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1)

과거의 추억에서 빠져나온 최현욱이 심호흡 끝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몇 초 더 머뭇거린다고 빨리 뛰기 시작한 심장이 느긋해질 리가 없었기에 그는 드디어 뒤편 공간에서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들은 나누셨나요?”


최현욱의 목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나이는 제각각이었어도, 신학기에 새 선생님을 만날 때 학생들이 보일 법한 눈빛이었다. 게다가 본인들이 원해서 자신들의 바쁜 일과를 쪼개어, 마음을 내어 와 준 사람들이 아닌가. 자신을 알지도 못하면서 신뢰와 기대를 얹은 시선을 맞닥뜨리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진 최현욱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 공방을 운영하는 최현욱이고요, 앞으로 8주간 여러분과 함께 흙을 만져보게 되었습니다. 이 클래스가 정말로 개설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었어서, 조금 당황했다는 게 제 솔직한 속내라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잔잔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덕분에 조금 긴장을 푼 최현욱이 이야기를 이어가며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잠깐씩 눈길을 주었다. 카페에서 간혹 본 적 있던 윤소은이 가장 여유로운 얼굴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앉아있었다. 듣는 쪽이건, 하는 쪽이건, 수업이라는 형식의 소통 양식이 아주 익숙한 사람 같았다.      


그 옆에 앉아있는 다소 어린 얼굴의 청년, 이진우는 꽤 섬세해 보이는 길쭉한 손가락을 갖고 있었다. 얌전히 깍지를 낀 손을 입술 아래에 붙이고 팔꿈치를 괴고 있었기에 바로 보인 것이었다. 조금 덥수룩한 앞머리 아래로 뜻밖에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이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조금 자신이 없어진 최현욱이 그 건너편에 앉은 김은지를 보았다. 윤소은이나 이진우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최현욱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어딘가 허약해 보이는 윤소은이 뜻밖에 심지가 굳은 인상인 반면, 김은지는 내내 불안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과연 어울리는 장소에 와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지 허락이라도 받고 싶은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불안함.      


최현욱에게서 도자기를 배우고 싶어서 온 그들이 정말로 이 장소에 와 있는 제가끔의 이유는 무엇일까. 최현욱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그 옛날 유학생이었던 때, 자신이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스승의 공방에 드나들이를 했던 시절 마침내 최현욱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스승이 이끌어주었던 그 안온하고 다정했던 날들. 자신이 이들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인가.

최현욱은 점점 자신이 없어졌지만, 언제까지 자신감이 생기기를 기다렸다가는 아무것도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임도 알았기에 용기를 냈다.


“저는 아직 여러분의 성함밖에 모르니까, 어색하지만 잠깐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져볼까요?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제게 아주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여기, 바로 이쪽 분부터.”


최현욱이 윤소은을 보았다. 이런 일이 아주 익숙한 듯, 윤소은이 두 손을 테이블 위에 모아 쥐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윤소은입니다.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고요, 건너편 카페 단골인데 직원 분이 아주 열성적으로 추천해 주셔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수업받는 동안 여러분과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 직원은 이로미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최현욱이 가까스로 웃음을 감추었다. 이로미가 같은 수강생 입장으로 이곳에 나타났을 때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금했다.

몹시도 정석적인 소개말이었는데도, 이진우가 호기심 어린 반응을 보였다.


“어디 학교요? 저도 이 근처 고등학교 나왔는데.”

“아, 그게...” 


윤소은이 객쩍은 미소를 흘렸다. 괜스레 사람 사이에 벽만 쌓게 될 것 같아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려 했는데 굳이 일하는 학교를 묻는 질문이 나올 줄이야. 그녀가 딴청을 부리듯 허공에 시선을 띄웠다가 조그맣게 답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오랜만에 학생이 되니 어려진 것 같아서 좋아요.”

“우와, 교수님이시구나! 대단하세요.”


시선이 계속 바쁘게 왔다 갔다 하던 김은지가 감탄했다. 이런 반응이 나올까 봐 구체적으로 말하기 싫었던 건데, 하고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던 윤소은이 헛기침을 하며 인사치레로 고개를 꾸벅거렸다. 정작 어떤 학교에서 가르치냐고 물었던 이진우는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저기, 이진우 씨? 진우 씨 차례인데.”


잠깐 딴생각을 하는 것 같던 이진우가 후다닥 자세를 바로 하고 벌게진 얼굴로 이진우입니다,라고 중얼거리고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누가 봐도 내성적인 그 모습에 최현욱이 조금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성인인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면 볼 것도 없이 매사 자신만만하고 카리스마가 넘칠 것이 틀림없을 수강생 1에, 허우대는 멀쩡한데 숫기라곤 하나도 없는 수강생 2라. 

난항이기만 하면 다행일 텐데, 이 항해를 끝까지 이끌어가야 하는 자신은 초보 중의 생초보 캡틴인데, 괜찮을까. 어른답지 못하게 최현욱은 조금 이로미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로미 씨는 왜 아직 안 왔지?’


제가 1호 제자가 되겠노라 큰소리를 탕탕 쳤던 이로미가 웬일인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시간관념 하나는 투철한 이로미가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싶었던 최현욱이 조금 불안해질 무렵이었다.

이전 12화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