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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y 17. 2024

우선순위를 고민하기

2.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7)

고개를 휙 기울여 자신의 작업물을 보는 이로미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이 이진우가 몸을 살짝 뒤로 물리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이로미는 연신 우와, 하고 감탄사를 뱉으며 알파카의 얼굴을 구경했다.


“진짜 대단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그런 대단한 일은 해본 적 없어요.”

“와, 재능 낭비.”

“자자, 로미 씨. 일단 수업으로 돌아옵시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의아해하는 이로미를 말리며 최현욱이 상황을 정리했다.


“여기, 직접 도안하신 게 진우 씨 거고. 토끼는... 윤소은 씨죠? 로미 씨는 여우네요. 로미 씨랑 닮았어요. 김은지 씨는, 고양이인가요?”


김은지가 네, 하고 대답하며 변명하듯 덧붙였다.


“제가 얼마 전에 고양이를 주웠거든요. 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이어서 축축하고 추운 날씨였는데... 누가 고양이를 박스에다 담아서 버린 것 있죠. 애가 야옹야옹 울길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순간 울컥한 듯 그녀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듣고 있던 윤소은이 거들었다.


“그러게요. 참 나쁘네. 살아있는 생명한테 어떻게...”

“그런 것들은 잡아서 아주 요절을 내줘야 되는데.”


마치 제가 현장을 직접 잡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투로 이로미가 손마디를 두둑 꺾는 바람에 다시금 웃음을 자아냈다.


“딸애가 친구한테 물어봐서 처음 방문했던 동물병원이 여기에 있는 병원이에요.”

“아, 포피요?”


반갑게 되묻는 말에 김은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카페를 찾듯 여기저기를 헤맸다.


“그러다 카페 앞에서 클래스 광고하는 걸 봤거든요. 왠지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러셨구나. 그것도 인연이죠.” 


최현욱이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가 수강생들의 첫 작업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제 어떤 색을 입힐지를 미리 결정해 놓도록 하죠. 일단, 그러면...”


최현욱이 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신 분도 있고 한 번도 못 보신 분도 있겠지만, 이쪽이 일종의 전시실입니다. 일단 실제 컬러감을 한 번 보시고, 어떤 느낌을 내고 싶으신지 감을 잡으시는 게 좋겠죠? 한 번씩 둘러들 보시죠.”


도예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작가도 아니면서, 여전히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면전에서 접하는 것이 어색한 최현욱은 일부러 수강생들을 먼저 올려 보냈다.


공방 작업실과 연결된 별도의 전시 공간으로 하나둘씩 줄지어 올라간 이들이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짧게 숨을 들이마신 최현욱이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먼저 전시실에 올라와 있던 수강생들이 합창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너무 예뻐요, 선생님!”


최현욱의 얼굴을 꽁꽁 매듭짓고 있던 긴장이 스르륵 풀려나갔다. 물론 그의 작품을 한 번씩은 본 사람들일 테고, 그의 작풍이 마음에 들어 기꺼이 배우겠노라 온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것은 늘 입안이 바싹 말라붙게 했다. 다만 오래전에 바이올린을 켤 때와는 다른 것이, 도예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은 금세 속내를 가감 없이 내비치곤 했다. 그것도 대개는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하기야 애초에 작고 귀여운 동물 도자기 인형을 보러 굳이 공방 안까지 들어올 사람이라면 굳이 트집을 잡으러 들어올 가능성이 낮기도 했다.


악기를 연주할 때는 어땠더라. 활을 천천히 현에서 걷어올리는 순간부터 맴도는 침묵. 최현욱은 정식 연주자로 데뷔하기도 전에 그 길을 포기했으니 무대 위의 희열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제대로 느껴본 적도 없긴 했지만, 학생으로서 교수 앞에서 준비해 온 레슨곡을 연주하고 교수의 굳게 다물린 입술 앞에서 흐르는 몇 초간의 정적은 무덤을 파는 기분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었다.


애초에 고치고 다듬을 것을 찾아내고 깎아내기 위한 작업이었으나, 최현욱 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몹시 힘들었다. 세상에 사람은 해변가의 모래만큼이나 많고, 배움의 형식이 사람마다 다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현욱은 조금 모난 데가 있더라도 자신만의 특유한 색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 까닭에 어떤 틀에 일단 자신을 꿰어 맞춰 자격을 획득한 뒤에 그의 색을 어떤 색으로 입힐지를 고민하라는 지적에 방황했다.

최현욱은 종종 교수의 그런 지적이 자신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느끼곤 했다. 그의 본심이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그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연주는 자꾸만 엉뚱한 곳에서 방황하는 소리처럼 들리게 되었다. 지도하는 사람에게도 최현욱에게도 넘기 힘든 산이었다.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고집하는 마음도 필요한 것이었고, 생활인으로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엄연히 공존하는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 그 역시도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런 것을 찬찬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때의 그는 고민조차도 사치인 사람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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