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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y 21. 2024

함께하고 싶어지는

2.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8)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처음 공방에 들어설 때의 어색함이 한결 걷힌 얼굴로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김은지와 이진우의 뒤를 따라 나가려다 말고 이로미가 윤소은을 돌아보았다.


“교수님은 안 가세요?”

“아... 저 선생님께 따로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로미가 아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윤소은이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엔 저도 이름 불러주세요. 여기에선 다 동등한 학생이잖아요.”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할게요.”


이로미도 자리를 떠나자 최현욱이 다소 긴장한 듯이 어깨를 꼿꼿이 폈다. 혹시 수업에 관한 컴플레인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내심 똬리를 틀었다.


“궁금하신 게 뭘까요?”


윤소은이 쇼룸을 가리켰다. 그녀가 이런 것을 묻기가 몹시 민망한 듯이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여기 전시돼 있는 인형은 다 주인이 있는 건가요? 그러니까 선주문이라든가 뭐 그런 건 아닌가요?”


윤소은이 말하고자 한 것이 어떤 종류의 비난이나 불만도 아니었음을 깨달은 최현욱의 상반신이 한결 느슨해지며 입꼬리가 슬쩍 들렸다.


“아니요,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죠.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들이라는 게 맞겠네요. 저는 주인보다는 친구나 동반자 companion를 선호하지만요.”


윤소은이 시선을 잠시 미끄러뜨렸다가 금세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네요. 훨씬 듣기 좋은 표현이 있는데 좀 신중히 말을 고를 걸 그랬어요.”

“충분히 신중하시던걸요. 예술 교육을 하시는 분이어서 그런지 또 손 감각도 좋으신 것 같고.”

“네? 아니에요. 저보다는 오히려...”


윤소은이 말을 삼키고 곰곰 생각하듯 전시된 인형들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튕겼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사실은요, 아까 여길 둘러볼 때 유난히 제 마음에 들어오는 애가 있었거든요. 제가 데려가고 싶은데 혹시라도 예약이 걸려 있거나 뭐 그런 걸까 싶어서 여쭤보려고요.”

“그러셨군요. 어떤 운 좋은 녀석이 윤 수강생님 마음에 쏙 들었을지 궁금한데요.”


최현욱이 자신을 부르는 명칭에 윤소은이 슬그머니 웃었다. 상대를 예우하고 싶은 마음이 찰랑찰랑 넘쳐흐르는 호칭이었다.


“저기 저 애요. ”


윤소은이 가리킨 것은 조금은 크게 빚은 흰색과 황갈색이 섞인 강아지 인형이었다.

금방이라도 왈왈 소리를 내어 짖으며 꼬리를 흔들 것처럼 발랄하게 웃는 얼굴을 한.


“웰시코기 말씀이군요. 좋아하시는 품종인가요?”

“얘네 이름이 웰시코기군요. 타샤 튜더가 좋아했다는 것만 알아요. 흠뻑 사랑받고 자란 것 같은 짓궂은 표정도 너무 좋고, 짧은 다리도 귀여워요.”


‘넘쳐흐르는 사랑을 받은 존재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에게도 조금쯤 그 사랑이 스며들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같고.’ 그런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개를 좋아하시면 직접 키우셔도 될 텐데.”


윤소은이 그 말에 미간을 슬쩍 찡그렸다.


“아니요. 집에 혼자 오래 두는 일이 잦을 것 같은데 그러면 강아지한테도 못할 짓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이 많이 힘들 것 같고. 사실은 그래서 Espressive-C 와서 건너편 동물병원 구경하면서 커피 마시곤 했거든요. 근데 오늘 여기 와서 보니까 이런 강아지 인형이라면 함께 지내도 좋을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윤소은이 살짝 무릎과 허리를 구부려 진열대 위의 웰시코기와 눈을 맞추었다.

인형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도는 것을 본 최현욱은 이 인형의 주인은 윤소은 외에는 그 누구도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좋네요. 한때 제 손을 빌어서 태어난 아이들이 좋은 가족을 찾아가는 걸 보는 건 항상 기쁘거든요.”


최현욱이 선반에서 웰시코기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한 손에 받쳐 들었다. 다른 손으로 부스럭거리며 티슈페이퍼를 꺼내려는데 그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윤소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제가 조심해서 가져가면 되는데.”

“그게, 음... 제가 자식을 키워보진 않았지만... 좋은 데 가서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같은 거예요.”


최현욱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던 윤소은이 뭔가 생각난 듯이 아아, 하고 탄성을 냈다.


“마음은 감사히 받을게요. 아, 귀엽다...”


카드를 돌려받은 윤소은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음 주에 뵙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인형을 조심스레 안았다. 윤소은이 떠난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최현욱이 이내 진열대 위에 놓여있던 인형들의 사이를 조금씩 벌리며 적당히 간격을 조절했다. 조금 전 새 가족과 함께 떠난 웰시코기의 빈자리를 지우려는 것처럼. 문득 코기 인형의 오른쪽에 있던 토끼와 눈이 마주친 최현욱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친구가 좋은 집에 간 것 같으니 축하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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