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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y 28. 2024

대단하세요, 누나

3. 가능성을 닫지 마세요(1)

“어서 오세요, 카페 에스- 어, 진우 씨!”


도어 차임이 울리자마자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인사말을 입에 담다 말고 이로미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반가워했다. 열린 문 사이로 이진우가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수줍은 목소리가 인사 대신 더듬더듬 새어 나왔다.


“저기, 제가 커피 뭐가 맛있는지 몰라서... 근데, 지난번에...”

“아, 제가 좋은 걸로 추천해 드릴게요!”


진태하가 행여라도 자신이 공방 수업에 커피를 따로 내려간 걸 알게 될까 봐 이로미가 황급히 앞질러 말했다. 그러나 이미 에스프레소 기계 앞에서 행주질을 하고 있던 진태하의 미간은 슬그머니 모여들고 있었다. 그가 렌즈 없이 간들간들 흔들리는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포스기 앞에서 진땀을 흘리는 이로미 옆에 바짝 다가서는 만큼 이로미의 시선은 멀찍이 허공을 향해 나아갔다.


“제자야.”

“... 사장님, 저 지금 접객 중인데요.”

“시끄럽고, 내가 지금 너를 왜 부를까?”

“진우 씨, 오늘은 코스타리카 원두가 추천할 만하고요, 무난한 걸 좋아하시면 오늘의 원두인,”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뭐 하나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직전까지는 이로미를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쳐다보던 진태하가 느닷없이 태도를 바꿔서 눈꼬리를 둥글린 채로 이진우를 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이진우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눈을 질끈 감아버린 이로미와 부드럽게 웃고 있는 진태하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해하다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지난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저희 직원이 사적으로 커피를 내려드린 적이 있나요?”

“네. 공방 수업 때 커피 가져오셨는데, 진짜 맛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려운 이름 같은 건 잘 기억을 못 해서요.”


진태하가 과연,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이로미를 흘끔 쳐다보곤 대뜸 성화를 부렸다.


“아, 뭐 해? 손님이 맛있었다시잖아. 얼른 같은 메뉴 만들어 드려!”


진태하가 이진우를 추궁 아닌 추궁을 하는 동안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뚜하니 입술을 내밀고 있던 이로미가 잽싸게 입술을 도르르 말아 넣고 경례를 붙였다.


“넵! 니카라과로 준비하겠습니다-”


경쾌한 음성을 듣던 진태하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원두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맛은 좋다라.’


물론 커피 원두를 전혀 알지 못해도 맛있는 것은 맛있다고 판별할 수 있다. 입문자가 원산지를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맛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찾아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태하의 짐승에 가까운 촉은 소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어려 보이는 이 손님이 정말로 그날의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에, 라기보다는 모종의 다른 이유로 카페를 찾았을 거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깨달음에 흥미진진한 시나리오를 썼겠지만, 진태하는 진태하였으므로 금세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어쨌든 내가 있어도 그 핑계를 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됐단 건데.’


아마도 그의 생각보다 이로미의 커피는 썩 괜찮은 수준일지도 몰랐다. 나중에 따로 테스트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진태하는 이로미가 기쁜 얼굴로 커피를 내밀고 계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진우 씨, 이거 가져가세요.”

“이게 뭔데요?”


이로미가 내민 것은 역시 완전히 메뉴에 정식으로 등록되지는 못했으나 수습 기간을 거치고 있는 스콘이었다. 까탈스러운 사장님께 아직 판매 승인을 받지 못했으니 서비스 기간이라며 내미는 것을 받아 든 이진우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것도 직접 만드세요?”

“별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뭘.”

“그래도 진짜 대단하세요, 누나.”


누나라는 친근한 호칭에 순간 당황한 듯한 이로미가 금세 당혹감을 수습하는 미소를 씩 지으며 능숙하게 맞받았다.


 “그까짓 스콘 하나에 이 나이에 누나 소리도 듣고 뿌듯하네요.”

“네? 누나 맞으시잖… 아요?”

“맞긴 맞죠. 나이 많-은 누나. 아, 손님 오신다. 이번 주말에 또 봐요!”


멀리서 카페 방향으로 걸어오는 커플을 발견한 이로미가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이진우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잘 포장된 스콘과 테이크아웃 잔을 소중히 들고 카페를 나섰다.


“귀여워라.”


마치 한참 나이 터울이 지는 막냇동생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말투에 바쁘게 움직이던 진태하가 우뚝 멈춰 서더니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크큭, 새는 웃음소리를 흘리는 진태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며 이로미가 웅얼댔다.


“사장님, 어디 가서 그런 식으로 웃지 마세요. 변태 소리 들으면 어쩌시려구.”

“내가 그러겠냐?”

“그러게요. 오늘도 쓸데없는 걱정에 한 스푼 더했네.”

“근데 저 손님이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봤나?”


귀밑에서 찰랑이는 단발이 새침하게 휙 돌아간 머리 방향을 따라 사라락 떠올랐다가는 금세 내려앉았다. 숨어버린 얼굴이 불퉁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뭘 잘못 봐요. 맞게 보셨네. 어서 오세요, 에스프레시브씌입니다.”


진태하가 드물게 멍해진 얼굴로 그에게 커피를 배웠던 1호 제자이자, 정직원으로 들어앉은 이로미가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 모습을 보며 기계적으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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