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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n 04. 2024

누구나 어딘가에서는 초심자

3. 가능성을 닫지 마세요(3)

“그러네요. 얘는 방실방실 웃는 게 로미 바리스타랑 닮았어요.”


윤소은의 맞장구에 이로미가 깜짝 놀란 듯이 눈썹을 치켜떴다가 활짝 웃었다. 급격한 표정의 변화에,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던 윤소은이 말을 더듬었다.


“왜, 왜요? 제가 뭐 말을 잘못했나요?”

“아뇨, 아니에요. 그거 제가 언젠가 꼭 들어보고 싶은 호칭이었거든요. 우리 사장님, 은근 칭찬에 박하셔서 하산을 명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렇게 안 불러주겠노라 다짐을 두셨는데 이렇게 불러주시니까 막 너무 감격이어서.”

“아, 정말요? 왜 그러셨을까. 번듯한 바리스타신데.”


최현욱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이로미가 자신의 접시를 쓰다듬으며 투덜댔다.


“그러니까요오... 적당히 칭찬도 먹여줘야 더 잘 배우고 열심히 한다는 걸 도통 모른다니까요. 어휴, 완벽주의자. 그치만 그런 점을 배우고 싶어서 붙어있는 거니까 불평하면 안 되죠.”

“로미 씨한테만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진 사장님은 본인에게 제일 엄격한데.”

“맞아요! 사실 그런 건 좀 존경스러워요. 사람이 남한테는 박해도 원래 자기 자신에게는 끝없이 관대할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 사장님은 절대 안 그러시니까. 음. 역시 사람이 결점도 있고 그래야 인간미가 있나 봐.”


어딘가 뒷담화인 듯한 칭찬을 쏟아내는 이로미의 화법에 진태하를 잘 아는 사람도, 스쳐가듯 본 사람도 와르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거 좀 감동적이에요. 가르치시는 분이 학생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걸 잘 본 적이 없어서.”


윤소은이 최현욱이 만든 접시를 가만히 보면서 지금껏 가르쳐 온 학생들 중에서 기억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가만히 떠올려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맡은 강의에서 학생 대표로 연락책을 맡은 과대표 학생의 이름이 기억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현욱은 말없이 웃다가 접시를 톡톡 두드리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이제 이걸 완성시켜 봐야죠. 오늘은 채색 작업을 하겠습니다. 있는 색 그대로를 쓰셔도 괜찮고,  색을 섞어서 쓰고 싶은 색을 직접 만드시는 것도 괜찮아요. 원하시는 방향으로 작업하시면, 중간중간 어려워하실 때 도와드리겠습니다.”


조금 전까지의 들뜬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공방은 신중한 고민으로 꽉 메워졌다. 비교적 결정이 빠른 이로미가 몇 가지 색을 골라 앞에 주르륵 놓는 순간 김은지가 부러움을 가득 토해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정해요? 역시 커피 하는 분이라 감각이 좋아서 그렇겠죠?”


이로미가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입술을 살짝 말아 물었다가 배시시 웃었다.


“그냥 제가 성격이 급해서요. 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요. 이거 아니다 싶음 다음에 다른 걸로 해보면 되죠.”


김은지가 부러운 눈길로 이로미를 쳐다보았다. 그걸 몰라서 뭔가를 결정하기까지 신중을 지나쳐 지지부진하게 되는 것은 아닌데,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김은지를 조용히 보고 있던 최현욱이 가볍게 말을 건넸다.


“지금 보시는 색상이 아주 똑같이 나오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로미 씨 말처럼 실험적으로 도전해 보시면 또 의외로 괜찮은 결과를 얻으실 수도 있어요.”

“그런가요...”


최현욱은 나름 결정에 도움을 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완성 후의 색감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말에 김은지는 더더욱 혼란스러워했다. 찰나 최현욱은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게 뭔지를 깨달았다. 그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이 일을 처음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경험 없는 초심자를 위해 발색 샘플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는데 불쑥 이진우가 끼어들었다.


“고양이 키우신댔죠?”

“아, 네.”

“고양이 털이 무슨 색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좀 얼룩덜룩한 회색 하고, 흰색이 섞여 있는데.”


이진우가 어떤 방식의 도움을 주려고 하는지 알아챈 윤소은이 대견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 눈치가 빠른 데다 센스가 좋네, 라고 생각하던 윤소은은 스스로에게 실소하고 말았다. 가르치는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이긴 했어도 이진우는 그녀의 학생이 아니었는데 늘 하던 버릇대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럼 이거하고 이거를... 섞어서 칠하면 좋을 것 같은데...”


마치 자신의 작품을 놓고 고민하는 것처럼 이진우는 몹시 열정적으로 색을 골랐다. 윤소은뿐만 아니라 이로미와 최현욱도 이진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좀 짙은 색을 덧칠하면..."


문득 공방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이진우가 슬그머니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이진우의 목덜미가 발갛게 달아오른 것을 본 최현욱이 얼른 나섰다.


“준전문가인데요, 거의. 어때요, 김은지 수강생님? 도움이 되셨어요?”


김은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진우가 골라낸 색상을 들여다보았다.


“네네. 사실 진짜 고양이 색으로 칠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생각 못했네요, 제가.”

“아니에요. 노란색으로 칠하셔도 되고, 하늘색으로 칠하셔도 돼요. 실제 동물처럼 색을 내야 하는 법은 없죠. 다른 사람들이 해 둔 작업이나 기존 작품들은 전부 레퍼런스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든 그건 순전히 김은지 님 마음이에요. 그게 맞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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