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Jun 17. 2024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하는 일

정경영,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음악가란 사실 특별하고 독특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멜로디, 리듬, 강약 등의 도구를 통해 물리적으로 일정하게 흘러가는 객관적 시간에 적절한 포인트를 주어 그 시간을 나의 것, 즉 주관적 시간으로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여러분들이 멀쩡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어떤 날을 구별해서 기념일이니, 생일이니, 새해니 하면서 악센트를 주고, 그래서 어제나 내일이나 작년이나 내년이나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나만의 독특한 날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도 바로 음악가인 셈입니다. -21쪽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쓰겠노라 마음먹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그중에서도 무엇인가가 너무 좋아서, 그 좋음을 나 홀로 알고 있기가 아까워서 넘쳐흐르는 '좋아'를 안고 쓴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기 제일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질질 늘어지는 문장 안에 제각각 다른 좋아가 똬리를 틀고 앉은 모양새가 썩 훌륭하진 않으나, 그 차이가 쉽게 구별되므로 그냥 넘어가(고 싶다)기로...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 저자 정경영 | 출판 곰출판 | 발매 2021.03.26.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저자가 책을 통해 부지런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음악이 너무나 좋아서 이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어렵지 않게 느끼고 한걸음 가까이 다가와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이 한 권의 책 역시도 어떤 사랑의 증거물처럼 느껴진다.


바로 어제 쓴 리뷰(를 가장한 잡설)에서 이것은 외국어 학습담을 빙자한 연애담이다, 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은 소리를 했는데 이 책 역시도 다르지 않다. 하긴 세상에 가장 흔하고도 귀한 것이 사랑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분명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보다는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이 가고, 추상적인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에 호기심이 인다. 나라는 개체가 속해 있는 집단을 벗어난 어딘가의 소속인 새로운 개념을 사랑하는 이야기에는 더더욱. 그러니까 천편일률적인 서사를 벗어나지만 분명히 이것은 사랑을 말한다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항상 독자를 끌어당긴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사람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추상적인 대상을 향한 절절한 어떤 마음을 드러내는 일화 혹은 서사, 또는 기록물에 절로 시선이 쏠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나는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하는 것에 늘 감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레미가 편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음악을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이런 차이들을 짐짓 무시하고 누군가가 '음악은 만국공용어'라고 말한다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서 동의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네가 말하는 '음악'은 도대체 뭔데?"라고 말입니다. 순진하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대부분의 '음악'은 '도레미'혹은 장/단조, 그러니까 표준어가 된 서양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46쪽


이런 식으로, 저자는 우리가 굳이 따져 묻지 않고 무의식적인 담합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개념들과 음악적 명제들, 선언들 - 예를 들면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이고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이다 - 와 같은 말들이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 설명하기도 하고, 정말로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사랑의 대상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공부하는 태도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예를 들어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지긋지긋한(...), 하여간, 그렇다고. 그러니 차라리 어떤 때에는, 그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기다려주는 하나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훨씬 근사하고, 상처받을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이 음악학자는 비틀즈의 도시에서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도시 사람들의 말속에서요. 리버풀에 사는 사람들은 흥미롭게도 'Music'이라는 단어를 명사뿐 아니라 동사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O play the music"이라고 말하는 대신 "I music"이러더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음악이란, 비틀즈 멤버들처럼 항상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는 거죠. 사물이 아니라 하는 것,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습니다. -111쪽


내게는 이 문단이 책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었다. 음악은, '하는' 것.

어떤 낱말의 품사가 바뀌는 것이 이토록 신선한 감각적 흥분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선택한 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