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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n 21. 2024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4. 결핍은 채워 가면 되죠(1)



누구에게나 예술적 감수성은 있다. 그저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표현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 뿐이지. 최현욱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단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조금 더 편안한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랄까. 그러니까 그것이 그림이나 글이건, 음악이건... 혹은 그 밖의 또 무엇이건 간에,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혹은 풀어내고 싶은 무언가가 내면에서 자라고 있다면야. 적어도 그의 공방에 모여있는 이들은 분명히 그럴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최현욱이 흙을 덜어내어 만지작거리다 바닥에 놓고 문지르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제가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어릴 때 학교에서 찰흙 만지면서 많이들 해보셨죠?”


최현욱이 손바닥 아래의 흙을 살살 굴리며 길게 늘여가자 아, 네,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덧붙였다.


“이 작업은 코일링이라고 하는데요, 제일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기법이에요. 이걸 잘 터득해 두시면 여기저기 응용할 수도 있고 쓸모가 많죠. 중요한 건, 균일한 두께로 일정하게 로프처럼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직경 1센티미터 정도면 딱 좋죠. 끝과 끝을 연결할 때는, 이렇게 사선으로 잘라서 이어 주시고. 경험들이 있으시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너무 힘주지 마시고, 살살 굴린다는 느낌으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길게 늘여주시면 돼요. 그런 다음에는,”


그가 설명 대신 길게 늘인 흙가래를 동그랗게 돌려 쌓으며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동글동글 쌓으시면 되죠. 타름이라고도 하는데 원하는 크기와 높이로 만드시면 돼요. 그다음엔 이렇게 쌓인 틈 사이로 생긴 골을 살살 만져서 맨들하게 해 주시면 되고.”


최현욱이 시범을 보이며 흙가래를 촘촘히 쌓아 올려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가자 수강생들 사이에서 오오,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에게는 별것도 아닌 간단한 작업에 이만한 호응이 돌아오다니 머쓱한 일이었지만, 기분만큼은 으쓱해진 최현욱이 최대한 힘을 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업 직전까지 오가던 가벼운 수다도 사라진 공방에는 대신 음악이 들어찼다. 어쩌다 그가 바이올린을 전공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뒤로는, 다른 음악을 틀어두려 해도 사람들이 반대했다. 


- 여기서가 아니면 저희가 언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일이 있겠어요. 그것도 심지어 전공자가 선별한 하이엔드 연주를요. 


이로미가 그렇게 강경하게 말했을 때 최현욱은 무심코 웃을 뻔했다. 최현욱이 오래도록 몸담았던 세계의 사람들이 듣기엔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었으나, 이로미를 제법 오래 알아 온 최현욱은 그것이 그 업계에서 살아왔던 이로미로서는 나름 최상급의 표현으로 갖다 쓴 말이라는 것을 금세 이해했다. 어쩌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우연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자신에게 낯선 표현들이 결코 상대를 무시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터득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늘 살만한 곳으로 남을 수 있다는 진리를 모두가 깨닫기 위해서라도.     


그리하여 그가 선별한 오늘의 연주곡은 고전음악 애호가가 아니어도 들어본 사람들이 제법 있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였다. 작업에 방해되지 않게 하려고 볼륨을 낮춰둔 탓에 음악은 어쩌다 슬쩍슬쩍 불어오는 바람 정도의 존재감만을 드리웠다. 

너무 조용한 게 아닌가, 생각한 최현욱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팁이 되실지 모르겠는데, 너무 힘을 주지 마시고... 이걸 예쁘게 일정하게 잘 해내야겠다, 이런 부담감은 좀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굴려 보세요. 이왕이면 마음을 차분하게 하시면 더 좋고요. 이런 작업을 할 때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 생각하면서 하면 모양이 별로 안 예쁘게 나오거든요.” 

“엑. 이거 쌓아 올린 모양 그대로 굽는 거예요?”


이로미가 괴상한 소리와 함께 흙을 만지던 손을 멈추자 최현욱이 서둘러 양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형태를 다 잡은 뒤엔 판판하게 펴 줄 거예요. 혹시 작은 장식 디테일 같은 걸 더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고.”

“그거 너무 예쁘겠다.” 


이로미가 종알종알 흥얼거리며 흙을 떼어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대고 흙을 밀어 모양을 잡는 작업에 금세 익숙해지자 아니나 다를까 가장 빠르게 속도를 내는 것은 이진우와 윤소은이었다. 


“저, 근데 선생님.”


최현욱뿐만 아니라 저마다 골몰해서 흙을 주물거리고 있던 수강생들의 눈이 한데 모였다. 본인도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자각했는지 뒷덜미를 긁적였다.


“네, 진우 씨.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그런 건 아닌데요... 혹시 오늘 만드는 건 정해진 모양이 있어요?”

“꼭 그렇지는 않은데. 기법을 알려주려는 거지 특정한 형태를 똑같이 흉내 내서 만들자는 건 아니거든요. 혹시 특별히 만들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이진우가 부끄러움을 타는지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으로 머뭇거렸다. 


“그러지 말고 생각한 게 있으면 말해요.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그럼요. 남 눈치를 뭐 하러 봐요. 그러다 보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못하게 돼요.”


최현욱의 말에 윤소은이 금세 동의했다. 


“그럼 한 번 만들어볼게요.”

“그래요, 그럼. 혹시 또 질문 있으신 분?”

“꼭 다 평평하게 해야 되나요? 약간 텍스쳐가 남게 해도 괜찮을까요?”


윤소은이 물었다. 쭈뼛거리며 주위의 눈치를 살피던 김은지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기도 궁금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괜찮죠. 뭐든 해보고 싶은 대로 시도해 보세요. 둘러보면서 불안한 형태다, 싶은 건 제가 따로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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