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 살아가는 책
우리나라에도 편집자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분이 몇 분 있다. 이은혜 편집자 역시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인데 전작 「읽는 직업」도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두 번째 책에도 자연히 손을 뻗었다.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신뢰할 수 있는 저자가 나의 저자 목록 안에 늘어간다는 건, 요즘처럼 책이 (심각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빠르게 읽을 책 넘길 책을 필터링해야 하는 순간에 굉장히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치트키를 마련한 것과 같다.
스물다섯 권의 책을 다룬다. 다만 특기할 만한 것은 한 권의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삶 속에 자리한 타인이 호명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느닷없이 어떤 책을 이야기할 때 불려 나오는 그의 지인이자 우리의 타인은 어떻게든 이은혜 작가(적어도 이 책에서는)에게 그 책을 떠올릴 때 자연히 함께 떠오르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생긴 그 책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 정서적 낙인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게도 분명 그런 책들이 존재하고, 확실히 현실의 누군가와 연결된 책들은 삶의 순간 어딘가에 깊이 흔적을 남겼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타인들 가운데서 극히 소수의 사람들과만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삶에 간간히 참견하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책들은 설령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더라도, 대체로 어떤 교훈과 가르침을 남기게 마련인데 과연 누군가의 삶에 그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저는 혼자예요." 자식을 셋 둔 쉰 살의 여성이 이런 말을 하면 우선 드는 것은 호기심이다. 이혼, 아니 사별을 했을까. 무슨 이유로 그리됐을까. 나보다 생을 얼마간 앞질러 산 사람들을 보면 내 미래의 한 조각을 엿보는 듯 그를 향한 질문이 떠오른다. -25쪽
그가 생각하기에 솔메이트는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아야 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몇몇 요소와 자기 자신의 요소를 결합"해 상대방의 지평을 넓혀주고 인간이 모두 신비로우며 고유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다. -27쪽
여기에 이르러 나는 잠시 생각한다. 이상적이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이상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단 말인가. 동서고금의 현자로 유명한 사람들을 줄 세워봐도 글쎄올시다. 열 손가락 안에서 끝날 것 같다. '... 를 결합해 상대방의 지평을 넓혀준다'니, 젤딘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대단히 존경합니다만 그건 상호 신뢰와 애정이 대단히 굳건한 부모자식 간에도 사실상 판타지에 가까운 얘깁니다...라고 딴죽을 걸고 싶어지는 건 지금 내가 10대 여고생과 한바탕 한 뒤이기 때문에 심히 삐딱선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매해 알게 되는 나무 이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63쪽
이건 적어도 내게는 참트루 명제다. 정말이지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자면, 나는 거의 숲해설사가 된 수준이다. -_- ... 이런 것마저 노화의 증거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는 없다.
한강 풍경, 길에 핀 꽃, 교정에서 본 사람들. 과정은 총합을 이루기 전 단계의 파편들이다. 파편은 귀하다. 모여서 언젠가 덩어리나 형태를 이룰 테니까. 그것은 시원을 담은 하나의 조각들인데, 나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면 그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진다. -78쪽
이런 문장을 만나면 가슴이 오그라붙는다. 어떤 사람을 좋아해서 그를 이루는 본바탕까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다만 나의 인간적 한계는 현실의 사람에게는 도무지 그러한 인내와 너그러움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 어느 순간 내게도 분명히 존재할, 그의 인간적 한계에 환멸을 느껴서 마음을 닫아버린다는 것. 단점을 알면서도 좀처럼 고치지 못함을 새삼 자각하는 이 순간 내게 느끼는 자괴감과 자기혐오... 그러나
길을 잃는다는 것은 분명히 장소성을 의미해 내가 있는 이곳의 바깥을 탐험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처음 만난 타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심신을 걸쳐볼 수 있"게 된다. 거기서 잃는 것은 '과거의 나'다. 길을 잃으면 나를 잃고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 (...) 솔닛은 이것이 때로 재앙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을 새로이 발명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140쪽
라는 대목에 이르러 나는 다시 한번 위로를 얻고 스스로를 담금질해 본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만 24시간 전의 나보다는 나아졌어. 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한 권의 책을 읽고 남기는 조각글일지언정 나를 조금씩 깎아내고 다듬는 일의 의미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