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아라의 소설
책과 글로 만나는 친구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책친구 하나가 물었다. 도대체 휴식 삼아 읽는 책이란 게 뭐냐고.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웃었다. 남편이 내게 하는 질문과 너무 꼭 같아서였다. 남편은 휴식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저녁을 다 먹고 치운 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끼고 있는 나를 보면 꼭 이렇게 타박한다.
"맨날 힘들어하면서, 왜 책을 봐. 그냥 좀 쉬어."
이 아저씨의 휴식=드러눕기(종종 낮잠으로 연결되는) 임을 함께 살아온 수세월(인가)의 경험으로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전형적인 잠은 죽어서 자자 인간형인 나는 그 '누워있기'를 인생에서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 하는 1인으로서 강경하게 주장해 왔다.
"나는 이게 쉬는 거거든."
그리고 그분은 절대 내 말을 믿지 않더라.
아놔, 진짜거든.
그리고 책친구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듣고서야 나는 스스로 뒷목을 쳤다. 아, 세상에 휴식 같은 책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왜 몰라주는 거야. 근데 이걸 어떻게 알려주지.
휴식으로 좋은 건 일단 호흡이 짧은 거지. 한데 단편은 의외로 휴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경제성 측면에서 극도의 압축이 들어가는 상황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엽편은 또 다르더라. 정세랑 작가의 엽편은, 친절하게도 작품 뒤에 붙인 짤막한 토막글 덕분에 쓰여진 맥락과 배경을 쉽게 추측할 수 있어서 읽기에 아주 편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뜻밖에 굉장히 뾰족하게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그 글을 쓴 배경을 읽고 순식간에 납득하게 되었지만) 무해하게 동글동글하고 달기까지 한 솜사탕 같은 이야기도 있어서 어쩐지 지금 막 개장한 테마파크에 입성한 기분으로 신나게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최고로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마리, 재인, 클레어]인데 이 소설을 청탁한 것이 패션지 마리끌레르라는 것이 첫 번째 폭소 포인트였고, 그 이름들을 조심스레 떼어내어 이런 기상천외하고 깜찍한 소설을 썼다는 것이 두 번째 폭소+감탄 포인트였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 연구원이 냥줍을 하고 반려동물이 허용되지 않는 기숙사에서 몰래 고양이를 기르다 들통나는 이야기인데,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현웃 터지는' 반전이라는 사실.
두 번째 귀여운 이야기는 [스위치]다.
스터디에서 유창하게 말 잘하는 한빛을 부러워하던 아라가 어느 날 문득 솔직하게 나는 말 잘하는 한빛 씨처럼 말하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한빛은 꼭 필요한 말만 적절하게 하는 아라의 말하기를 부러워했다고 응답한다. 그리고 뒤 따라 나오는 한빛의 제안은…
이렇게 자신에게 없는 상대의 자질을 부러워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어떤 교환의 상징적 행위는 그야말로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기 짝이 없다. 부러움은 흉한 말과 날카로운 행위로 귀결되기 일쑤지만 이 다정한 세계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귀여움은 부디 직접 확인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