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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Sep 25. 2024

사람의 본질은 행동에서 곧잘 드러나기에

루이즈 페니, 스틸 라이프外

안녕하세요, 아르망 가마슈 경감님.


그거 아세요? 전 세계의 미스터리 팬들만큼은 못해도, 저도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고 2차원에 존재하는 저명하신 탐정들과 경관님들을 꽤 많이 알고 있는데, 제게 그중 top of top은 경감님이에요. 제 마음속에서의 경감님은 어쩐지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약간은 닮은 외모에 알베르토 망구엘의 푸근한 인상을 섞어 놓은 얼굴을 하고 있답니다. 물론 그것보다는 조금 젊으시지 않을까 싶지만요. 여하간 제가 아는 그 어떤 미스터리 해결사보다 인간적이고 따스한 인간성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분이세요, 경감님은. 그리고 별수 없이 가상의 인물은 작가를 어느 정도는 닮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저로서는 당신을 창조하신 루이즈 페니 여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어딘가에서 사람이 죽어나가요. 그럼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봐요. 셜록 홈즈라면, 에르큘 포와로라면. 매그레 경감과 뒤팽과 브라운 신부라면 과연 어떤 행동을 가장 먼저 할까? 무슨 말을 할까, 하고요. 상상만으로도 흥미롭지 않나요?


심리전에 능하고, 아주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오랜 세월 겪으며 쌓인 경험을 십분 활용하는 이도 있습니다. 발견된 증거의 정합성과 관계성을 추론하는 데 힘을 쏟는 사람과, 논리적인 추리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도 있죠. 인간의 감정과 도덕성에 기반하여 문제를 살피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요, 저는 경감님을 알게 되면서 시신이 드러누워 있는 현장에 들어선 당신께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아요. 경감님 역시도 경찰이고, 범인을 잡는 일을 가장 중요시하는 분이니까 당연히 본연의 업무에 무게중심을 두실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경감님은 제일 먼저 망자의 명복을 비시겠죠, 틀림없이.


그의 깊은 갈색 눈이 그녀의 적갈색 점이 있는 갈색 손에 머물렀다. 정원에서 장시간 일한 탓에 햇볕에 타고 거칠어진 손. 손가락에는 반지가 없었고 반지를 낀 흔적도 없었다. 그는 갓 죽은 사람의 손을 볼 때면 언제나 아픔을 느꼈다. 그 손이 잡았을 온갖 사물과 사람들이 상상되는 것이다. 음식, 얼굴들, 문손잡이들, 기쁨이나 슬픔을 표하기 위해 취했을 온갖 손짓. 그리고 마지막 손짓은 틀림없이 자신을 죽인 그 타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 「스틸 라이프」, 50쪽


아마도 시리즈의 첫 권인 「스틸 라이프」만 읽었다면 확신하진 못했을 거예요(하지만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가 시리즈에 빠져든 것도 당연하죠!)

제가 읽은 시리즈의 권수가 쌓여갈수록 저는 경감님이 어떤 분일지 제 나름으로는 제법 선명한 인물상을 그릴 수 있게 됐어요. 아마 많은 독자가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픽션의 등장인물들에게 마치 현실에서 가까이 존재했던 사람처럼 굉장히 강렬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거든요. 그 사람이 한결같이 좋은 사람일 때도 좋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결함이 있고, 자신을 위협해 들어오는 사람에게 혐오감과 적대감을 똑같이 느끼는 사람임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은 더 깊어지고 굳건해지죠. 만약에 경감님이 현실의 사람이었고, 어떤 곤란에 처해 있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저는 경감님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지켜보네. 관찰해서 뭔가 알아차리는 걸 아주 잘하지. 그리고 들어. 귀담아듣는 거야. 사람들이 어떤 낱말과 어떤 목소리를 택해서 무얼 말하는지, 혹은 무얼 말하지 않는지. 그리고 이게 핵심이야, 니콜 형사. 바로, 선택이지."
"선택이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선택해. 지각 대상도 선택하지. 태도도 선택하고.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네.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지." - 「스틸 라이프」, 112쪽


옳은 말씀이에요. 모든 현상을 인식하고, 세상의 모든 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좋고 싫음을 나누고 자신만의 도덕관으로 옳고 그름을, 종종 편향되게 구별하죠. 나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면 편을 가르기에 바쁘고요.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겠지만 때때로 스스로를 환멸에 처박기도 하는 바로 그거요.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기를 결정하는 순간 나는 어떤 인간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족쇄처럼 느껴집니다.


"동정과 연민이 제일 이해하기 쉬워요. 연민은 교감을 필요로 하죠. 고통받는 사람과 동등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요. 하지만 동정은 달라요.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 우월감을 갖는 거라고 할 수 있죠." - 「가장 잔인한 달」, 336쪽



인간의 감정이란 생김새가 비슷비슷해서 주의를 기울이기를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이렇게나 타인을 기만하기가 쉽지 않은가요. 매번 그토록 세심히 주의하기가 성가시기 짝이 없어서 가끔 대충 살고 싶어지곤 하지만, 역시 부지런한 쪽이 좋겠다는 결심을 다시 벼리게 됩니다. 세상에서 이것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싶은 게 말도 못 하게 많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싫어하던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박제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군요.


하지만 보부아르는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몇 년을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의 신념에 끼어드는 것은 몹시, 대단히 위험했다. - 「아름다운 수수께끼」, 245쪽


제게도 신념이라 부를 만한 것이 하나 있죠. 하지만 그 믿음이 누군가를 해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하려고,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가만히 말해 봅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믿음은 어딘가 수리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고요. 오랜만에 다시 만나 반가웠어요, 가마슈 경감님. 경감님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밉지만, 또 그들 덕분에 경감님이 경감님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오늘도 부디 건승하세요.


http://aladin.kr/p/dG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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