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Nov 12. 2024

사물로 이야기하는 나의 역사

김지승, 아무튼, 연필

문구 덕후. 


특별한 취미를 가진 이 집단을 부르는 말이 언제부터 대중적으로 쓰이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이 말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온갖 문구를 섭렵하고 수집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문구에만 돈을 갖다 쓴 것은 아니었으니, 이 얘기는 대충 여기서 접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문구 덕후의 세계관 안에도 각종 부족이 저마다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대체로 많은 문구 덕후들이 여러 곳에 적을 두고 있는 덕에 다들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만년필, 잉크, 노트, 다이어리, 젤펜, 마스킹테이프, 기타 등등등... 의 아이템들을 각각 다이소 수납함 하나씩은 꽉꽉 채울 정도로 가지고 있으니,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데 대체로 뭔가에 돈을 갖다 붓는 이들은 그에 대해 한 썰 푸는 책들 역시 몹시 좋아한다. 왜 아니겠는가. 사람이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온종일 떠들 수 있는 법이다. 


http://aladin.kr/p/uyeXA


그러니 가장 고전적이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문구의 대명사인 연필로 돌아가 보자. 


연필의 초기 역사는 힘을 들이지 않고 그은 4H의 연필 선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11쪽 


우리 대부분에게 남은 연필의 연대기는 여덟 살 때 열 칸 쓰기 공책과 더불어 시작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나와는 다른 알록달록한 그래픽을 온몸에 새긴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 꽉꽉 채워 넣은 2단 필통을 자랑스레 들고 다녔던 반 친구를. 누가 봐도 부잣집 딸이라는 티가 뚝뚝 흘러내렸던 그 아이를. 그렇다고 내가 힘들게 산 부모의 딸이었냐 하면 그것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사소한 소지품 하나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겨났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껍데기나 그랬지 그때 그 시절의 연필이래 봤자 다들 엇비슷한 브랜드와 품질의 연필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내 연필만 필기감이 좋지 않은 것 같고, 툭하면 부러지는 것 같고, 예쁘게 잘 깎이지도 않는 것 같았던 기분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난다. 


내게도 인생의 한 시기를 설명할 수 있는 특정한 모델의 연필이 존재하는데, 소위 No.2 펜슬이라 불리는 노란색 연필과 잠자리 연필이라고도 부르는 톰보우 4B 연필이다. 북미에서 보냈던 십 대 시절, 영어가 입에 붙지 않았던 초기에 어떤 과목 선생님이 내게 넘버투 펜슬을 준비해 왔느냐고 물었고, 나는 펜슬이면 펜슬이지 대체 왜 앞에 넘버투가 붙는지를 알 수 없어서 굉장히 당황했다. 듣기에도 뭔가 다른 기능을 탑재한 특별한 모델인 것만 같고, 그런 게 준비물이면 미리 알려줬어야지 왜 있냐 없냐를 지금 물어서 나를 당혹시키는지 원망스럽기 짝이 없고, 그러다 급기야 왜 이런 걸 미리 챙겨주지 않았느냐며 엄마를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답답했는지 선생님은 샛노란 연필 두 자루를 슥 꺼내주며 이걸 써,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후에야 그것이 왜 No.2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더불어 이제는 거의 관용어처럼, 일반명사화가 된 단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소한 문화적 디테일을 알고 모르는 것이 그곳에 적을 두고 살아야 하는 사람을 얼마나 위축시킬 수 있는지 알게 된 강렬한 경험이었다. 


아주 일상적인 사물에 붙었던 특별한 이름이 보통의 이름이 되도록 걸린 시간과 이야기가 한순간에 내게 흡수되며 나 자신의 어딘가가 팽창했다는 듯한 느낌은 정말로 좋았다. 손안에 쥔 연필 한 자루는 변함없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내가 그 작은 사물을 바라볼 때 순간적으로 머리와 마음속에 펼쳐지는 아코디언 파일이 하나 생겨났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의 기분은 감동스러움에 가까웠다. 아, 세상은 정말로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그 뒤로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애착을 느꼈던, 호기심을 가졌던 모든 사물과 이슈와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다는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연필에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가졌고 연필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펼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나긴 서설 같은 거다. 


책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내 이야기만 잔뜩 지껄인 기분이다. 뭐, 그런 때도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셸레가 흑연의 정확한 화학 성분을 최종적으로 규명한 해가 1779년. 이후 흑연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이아몬드'의 성분이 똑같음을 강조하며 함께 전시되었던 1851년 런던 세계 산업 제품 대박람회를 지나오면서 단단한 다이아몬드와 잘 부서지는 흑연의 구성 성분이 탄소라는 사실이 폭넓게 공유되었다.
다이아몬드 탄소 원자들은 치밀한 구조로 서로를 붙들고 있고, 흑연 탄소 원자들은 느슨한 구조로 서로 간 틈을 두고 있다는 게 겉모습뿐 아니라 존재의 의미의 차이를 만들었다. -46쪽


19세에 혼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에 도착한 그는 일본어로 엠피츠였던 연필이 독일어 블라이슈티프트로 바뀌면서 자신과 사물의 관계가 강력한 언어적 관계였음을 자각한다. 그 경험이 담긴 그의 글을 나는 좋아했다. 그의 언어 경험 속에서 엠피츠와 블라이 슈티프트는 완전히 다른 사물이었다. 나에게는 연필과 블라이슈티프트가 그랬다. -130쪽


내가 좋아하는 다와다 요코 얘기가 나와서 몹시 기뻤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하는 건 또 다른 책을 놓고 할 이야기겠지만, 내 경험으로도 연필과 pencil은 다른 사물이었다. 각자의 역사를 달리 가지고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에세이를 읽는 맛은 역시 그런 데 있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차피 한 번 사는 세상, 낙천적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