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입속 지느러미
11월 초부터 한결같이 바빴다. 주말이면 면접을 봐야 하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갔다. 한때 서울 및 수도권 지하철 전 노선도가 머릿속에 입력돼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새로 생긴 역이나 라인은 눈으로 몇 번씩 길을 더듬어야만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더라. 그리고 대망의 수능날, 새벽같이 일어나 집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고사장으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느릿느릿 끌며 수차례 뒤돌아보는 부모들도 있었건만, 나는 눈에 익은 아파트 단지들과 건물들을 바라보며 딱 하나를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서 **을 들르지 못하고 집에 가야 하다니.
**은 나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고즈넉하고 아주 예쁜 카페다. 찾아가기 쉽지 않은 장소에 자리한 관계로 아는 사람만 힘들게 찾아가는 장소이긴 한데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거듭해서 찾아가다 기어코 단골이 되고야 마는 그런 곳이다. 친구의 가게라서 특별한 것도 있지만, 내게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곳의 서가를 종종 채우는 장본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새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깔끔하고 상태가 좋은 책들로. 뽀얀 밀크색 페인트를 칠한 원목 책장에 내가 가져다 놓은 책들을 조르륵 꽂아놓곤 하는데, 카페의 손님들이 종종 빌려가기도 하고 앉아서 읽고 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조금 미안해졌다. 물론 내가 좋아했던 책들이지만 누군가에게 이건 꼭 한번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은 책들은 뭐랄까, 여전히 내 책장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양심이 조금 아픈 그런 기분이랄까.
여하간.
조예은 작가의 소설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서 요즘 도장 깨기 하는 기분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중이다. 리뷰를 다 쓰지는 못했어도. 이 작가의 무엇이 그리도 내 마음을 여닫고 가길 반복하는지를 곱씹는 중이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입속 지느러미」라는 소설이다. 한겨레출판과 전자책서점 리디 RIDI에서 공동 기획해서 출간하는 장르소설 시리즈 중 첫 번째다. 제목에서 떠올리듯 이 소설의 소재는 인어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 듣기에 몹시 익숙한 이 소재를 조예은 작가는 어떻게 변주해 냈을까.
좋아하는 일만으로 먹고살 수 없음을 뼈아프게 깨우친 주인공이 어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안정적인 직장인'의 세계에 이제 막 진입할 준비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은 죽은 삼촌으로부터 상가 건물 하나를 상속받는다. 삼촌의 장례식에서 그가 밀수업에 손을 대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독자는 주인공이 처리를 떠맡은 문제의 건물에 밀수와 관련된 자취가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은 현실에 굴복하기 직전까지 노래를 만들었다. 애써 만든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이 말했다. "세상의 모든 노래를 단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듣길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그런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의 믿음과 세계를 단번에 뒤흔드는 존재를 발견한 순간부터, 그의 세계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과 드문드문 드러나는 하얀 앞니 안쪽에는 미끄러운 해양 생물을 닮은 축축한 살덩어리가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소리. 선형이 매혹된 건 바로 소리였다. 음침한 싸구려 술집의 유행가를 뚫고서 그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을 때, 선형은 사람이 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10쪽
그랬다. 주인공은 소리에 속절없이 마음을 빼앗기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는 무엇에 곧잘 마음을 내주는 사람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자꾸자꾸 뭔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것에 홀리는 것 같다. 그 기준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소급되게 마련이라, 그런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목소리 때문이었다. 선형의 목에 팔을 두른 피니가 노을을 감상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드문드문 분명한 낱말들이 귀에 닿았다. 붉은 산호초, 그리움, 꿈속의 너, 네 목소리...... 온 세상의 노래, 다시 네 목소리. 꿈, 들을 수 있다면. -149쪽
주인공이 그랬듯 한때 사랑을 느꼈고 헌신을 바쳤던 상대에게서 환멸을 느끼는 건 지겨울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피니처럼 한순간 다시 매혹되어 한없이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싶어지는 상대를 다시 만나는 건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이야기에서 만족을 얻었으니 이제 다시 책을 덮고 현실을 살아가야 할 시간이다. 사람은 스스로 거듭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서 환멸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일 테고, 그러니 뭐 어쩌겠는가. 매일매일 열심히 속부터 어제의 나를 조금씩 벗어내는 수밖에. 내게는 그것이 조금씩 읽고, 하찮은 글이나마 꼬박꼬박 쓰는 일이 될 터다. 그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가 지금 힘겹게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순간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한 줄의 응원을 공공연하게 남겨 본다.
*선아, 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얻은 것 중 가장 과분하고 고마운 존재야. 너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