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연, 한밤의 읽기
가끔 그럴 때가 있다. 한 작가의 글만 연달아 파고 싶을 때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에세이스트인지 평론가인지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상 요즘은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글을 짓는 게 보통이기도 하고... 같은 사람인데 쓰는 글의 성격에 따라 문장의 맛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걸 발견할 때의 즐거움도 있고, 다른 글을 써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구나 싶게 알아볼 수 있는 한결같음에 반갑기도 하다. 결국 어느 쪽이라도 다 좋다는 뜻일지도.
그래서 연휴 직전에, 간단하게 리뷰를 썼던 「탐방서점」부터 시작해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거쳐 「한밤의 읽기」로, 금정연 서평가의 글을 계속 읽고 있다. 사실 책만 읽진 않았고 작년에 알라딘의 투비컨티뉴드에서 연재했던 글들도 쭉 읽긴 했었는데 이분의 글을 읽다 보면 슬그머니 싱거운 웃음을 짓게 되는 그런 맛이 있다. 이번에 「한밤의 읽기」를 읽으면서 그 싱겁지만 빠지면 아쉬운 유머가 '도블라도프식 유머 감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음, 내가 이걸 '싱거운 유머'라고 표현한 것이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1/2 어문학부 출신은 그리 느꼈습니다. 각설하고,
여행자가 길에서 만난 빛과 소리와 냄새와 사람들의 흔적을 저도 모르게 간직하는 것처럼, 읽기란 이렇게 읽은 것들의 조각을 자신의 내부에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문장들은 멋지거나 멋지지 않고, 의미가 있거나 의미가 없으며,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끔찍하기도 합니다. -11쪽
서문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나는 어쩌면 내가 지금껏 읽어온 것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포이어바흐의 "Der Mensch ist, was er isst." - 인간은 그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오해가 들어올만한 빈틈을 틀어막고자 말을 덧붙이자면 신체적 차원에서 차원 계단을 몇 칸 올라선 뒤 보면 그렇지 않겠냐는, 뭐 그런 거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동식물보다 훨씬 우월하느니 하는 게 아니다. 똑같이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형편이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존재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세상이 혹은 누군가의 삶이 아주 극소하게라도 좋아지게끔 내 삶의 방식을 조율하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도리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그러자면 좋으나 싫으나 어쨌건 고민이라는 걸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단순한 선택의 문제에서부터 깊게는 삶의 목표나 지향점까지. 하여간 생각, 생각, 또 생각해야 하는데 (이쯤 되면 사극투로 '상량할 것이오'라고 읊조려야 할 판) 혼자 머리를 싸안고 생각하는 건 그리 권장할 만한 일이 못 된다. 온갖 편향이나 인지적 오류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진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것 중 하나가 똑똑한 어시(스트)를 많이 두는 것이다. 능력치에 비해 인건비도 거의 안 드는 최고의 어시가 바로 책이다. 이런 지루한 얘기를 쓴 건, 내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가 이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아닙니다.
그냥 재밌어서 읽어요.
재미있지 않은데 누가 급여를 주는 것도 아니고 노예처럼 가둬놓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읽고 쓰고 공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자고로 인간을 자발적으로 노동하게 하는 제1원리는 재미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분들은 아셨겠지만, 이 책은 지금 막 561자 분량의 문단과 같은 토픽으로 쓰여진 글이다. 다만 강연을 정리한 내용이라 훨씬 읽기 쉽고 재미나게 쓰인 상냥한 글이다. 강연이다 보니 가끔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대목들이 등장해 독자를 웃기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그리하여 일 년 후, 샐린저가 다른 사람을 편지로 꼬여내기 전까지 관계를 지속하죠. 네, 맞아요. 개자식이죠. -29쪽
이렇게 한바탕 웃게 만든 다음,
제가 생각할 때 정말 좋아하는 작가는, 읽고 나서 전화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를 배우고 싶어지는 작가가 진짜 좋아하는 작가죠. -29쪽
이와 같은 말들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핑거스냅을 튕겨도 무방합니다, 딴지 안 걸어요...).
이 책의 엔딩은 너무나도 빤하게 예상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그게 바로 나예요)은 그 전개가 궁금해서 책을 펼친다. 누군가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릴 테고 또 누군가는 입을 비죽거리며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금정연 작가가 대니 샤피로의 책을 처음 보고 오해했듯 어떤 사람들은 금정연의 책을 보고 '결국 책 읽으라는 소리 하려고 또 그만그만한 내용 쓴 거 아니야?'라고 오해하겠지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작가가 직조하는 텍스트의 세계로 진입하는 용기 있는 새내기 독자가 없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금정연의 책으로부터 어떤 '마음'을 전해 받았을 것이다(p.189).
그렇지 않은 책, 다른 책, 그러니까 어떤 소설이나 시, 그리고 어떤 종류의 철학이나 이론처럼 우리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끌어가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식수가 말하는 읽기죠. 저는 이걸 '가장 어두운 순간에 읽기' '한밤의 읽기'라고 부르고 싶어요. 밤에 읽어서가 아니라, 지금-여기를 '몰래' '밤으로 바꾸는' 읽기니까요. -124쪽
어서 오세요, 새로운 모험가여. 책들의 던전이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