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리, 아무튼, 집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집이 곧 부동산이라는 명제에 반발하고 싶었다는 순진한 말을 덧붙여 본다...)
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저마다의 집을 품고 산다. 집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집이 주는 의미와 온기로 의지를 삼는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집을 자산이나 재산으로서가 아닌 보다 본질적인 공간으로서 입에 담는 사람은 극히 소수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까닭에 순수하게 지친 나를 안아주고, 뉘여주는 순전한 안식처로서의 집을 이야기하는 책이 드물기에 이 에세이가 퍽 반갑다. 집이 어떤 곳이었더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자명한 사실을 새삼 손가락을 접어가며 헤아려보게 된다.
그때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지붕 아래 공간, 오래된 물건만이 아니라 그 물건을 돌보는 사람, 흐르는 세월까지가 집이라는 걸. -11쪽
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아지고 집이 가지는 의미는 예전에 비해 훨씬 자본주의적인 것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집에 어떤 이상향을 갖고 있다. 수치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람과 공간과 시간과,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엮어낸 감정들을 결결이 품고 있는 것이 집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쳐 들 누군가의 집과 나의 집이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 대해 말하려면 가족이나 돈의 형편처럼, 비밀까지는 아니어도 굳이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속사정을 끌러놓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생각한다. -14쪽
그래서 집은 내밀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 앞에서 선뜻 문을 열어 보일 수 없는 곳이다. 딱히 무슨 말을 얹지 않아도 나의 일상이 곳곳에 묻어있는 이 장소에 걸음 하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속속들이 알아차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므로. 어쩌다 집에 들인 사람이 호기심 잔뜩 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이 불편한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반대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은 선뜻 집안에 들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그를 거쳐간 집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 자신이 살아온 세월들과 그가 믿는 것, 그가 사랑하는 것과 힘든 순간에 부여잡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를 성장시키고 살게 한 공간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엄연히 집이 있음에도 집이 없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살아야만 했던 때를 이야기할 때, 집이라는 것이 그저 쉬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이상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나는 집 밖을 방황하다 너절한 마음으로 다시 집에 처박혔다. 그리고 또 집을 나섰다.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이었다. 매달 월세를 몇 십만 원이나 내는 집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집이 없는 것 같았다. -32쪽
울 일이 생기면 어린 시절처럼 집으로 와 울었다. 울다가도 밥을 지었다. 다신 괜찮아질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한 마음도 식욕 뒤로 가만 물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34쪽
누군가와 한 방을 쓰다 보면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침해하는 때가 생긴다. 어쩌다 방을 독차지한 시간에도 룸메이트의 부재와 귀환을 의식한다. 누군가는 모르는 나만의 시간이나 사소한 비밀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때마다 배우고 느꼈다. 외로울 수 없다는 건 진짜 외로운 거구나. -132쪽
내가 살았던 모든 집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빨간머리 앤이 아닌 이상에야 그러기는 힘들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했던 공간에서 살았던 순간조차 그곳에는 마음에 드는 조그만 구석 공간이 있었을 거라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그 공간에서 몸을 구겨 넣고 살았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조형하는 데 적지 않은 지분이 있음을 생각하면 길게, 혹은 짧게나마 내게 머무를 틈을 내어주었던 그 모든 '집'들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 이름으로 된 등기부등본이 없다고 집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이란 그보다 훨씬 폭 안겨들어가는, 아담하고 포근한 그 무엇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