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조금 아쉽고 부족한
아, 이게 아닌데.
기껏 써 내려간 500자 정도의 줄글을 지우면서 윤수는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읽어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보였다. 쓸 때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싶어서 재차 다시 읽어보면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심하게 엉성해 보였다.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열심히 바느질한 결과물을 뿌듯하게 들어 올렸을 때 바늘이 수차례 통과하며 만들어버린 숭숭한 구멍이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올 때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술술 써질 때의 기분은 깡그리 잊어버린 윤수가 못마땅하게 입맛을 다셨다.
쓰고 싶은 게 떠올라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릴 때는 신들린 듯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어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막상 그 기분이 식은 뒤에 남은 것은 자아도취에 젖은 허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만 못 쓰지, 나만.
짜증스러운 기분을 누르며 윤수는 예약글 발행을 취소했다.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는 다음 편을 올릴 엄두가 안 났다. 비록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는 드문드문한 댓글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제 마음에 차지 않는 걸 공개적으로 게시할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치만 아주 소수지만, 그렇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 사람들이 있잖아. 그런데 내 마음에 안 찬다고 이렇게 미루고 또 미뤄도 되나?
어느새 윤수는 자기 자신을 둘로 나누어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비하하는 윤수와 독설로 격려하는 윤수가 서로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너무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큰 거 아니야? 괜히 혼자서 완성도가 떨어지네 스토리가 늘어지네 어쩌고 하면서 자꾸 도망칠 핑계만 만드는 거 아니고?
아니거든, 자기 자신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을 어떻게 남들 앞에 내놓을 생각을 해? 기본이 안 된 거 아니야?
계속 그렇게 부족하다, 모자라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뭐 엄청 대단한 글이 새로 나오기라도 해? 허접하고 누더기 같은 거라도 일단 완성하는 게 중요한 거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거지.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악순환이라니까. 잘하고 싶은 그 마음만 그렇게 곱씹고 있다고 뭐가 되냐 말이야. 타협할 줄 알아야지. 나중에 보면 부족한 부분이 그대로 보일 게 뻔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선 이게 최선이었다고. 그 최선을 자꾸 쌓아가다 보면 나중엔 좀 더 나은 게 나올 거 아냐.
그러니까 난 나중에 지금을 돌아봤을 때 이 후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니까?
바보 아니냐, 누군들 안 그런 사람이 있는 줄 알아? 다들 자기의 볼품없음을 감당하면서 쓰고 또 쓰는 거지. 그걸 어떻게든 참는 사람이 계속 쓰는 거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 거고.
내면의 독설가가 잠시 조용해졌나 싶더니 목소리를 바꾸었다.
있지, 지금 당장 뭔가를 더 이상 손댈 필요 없이 완벽한 형태로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좀 덜면 어떨까. 누구에게도 너한테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아.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잖아. 너한테 네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사람들 중에선 인사치레로 그 말을 한 사람도 있을 거야. 진심으로 재미있어서 한 말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 다 신경 쓰다가는 너는 계속해서 자기 검열만 하다가 결국 한 문장도 더 쓰지 못하게 될걸. 그냥 그 순간 잠깐의 즐거운 기분에 취해서 남긴 한마디일 수도 있는 건데.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이면 결국 누구 손해인데? 자꾸 재미있는 거, 누가 좋다고 한 걸 쓰려고 하지 말고 네가 쓰고 싶었던 걸 써. 재미가 있고 없고는 그다음 문제야. 재미없다고 하면 그냥 그렇구나, 저 사람은 재미없구나 하면 되지 않을까. 일단은 누가 뭐라고 하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더 필요한 시기 같아, 지금의 신윤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독설가는 입을 뚝 다물어버렸다.
“......”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다 말고 백스페이스를 쭉 누르는 일을 반복하던 윤수는 마침내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몇 번 하고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재미있는 거. 누가 뭘 재미있어할지를 생각하기 전에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아마도 엄마가 봤으면 한소리 했겠지만, 윤수의 고개는 절로 모니터 앞으로 굽었다. 고집을 부려 굳이 사들였던 값비싼 키보드 위를 톡톡톡 두드리는 손놀림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표제어_미진하다/모티브_코리나 루켄 「아름다운 실수」]
앞선 이야기 https://brunch.co.kr/@brickmaker/86
BGM_William Bolcom , 「Graceful Ghost R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