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의 누군가는 너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를
2월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달력을 바라보며 민주는 우울한 기분을 삼켰다. SNS 세계에서만이라도 거리두기 좀 하고 살자는 애원은 들은 척도 않고 들러붙어 친목다지기를 잊지 않는 학생들이 며칠 전부터 학교 가기 싫어요, 개학 미루면 안 돼요 등등의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민주는 그것을 보면서 사람은 어쩐지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들이 빚어놓은 파동에 휘말려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부정적인 말과 징징거림이 계속 그런 상황을 만들고, 그래서 또 연거푸 구시렁거리고. 물론 증명된 바는 없지만서도. 그런데 솔직히 얘들아, 너희만큼 선생님도 학교 가기가 싫단다. 아마 자신과 똑같이 달력을 보며 우거지상을 하고 있을 학생들을 떠올리며 민주가 혼잣말을 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아무리 싫다고 몸부림쳐봐야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새학기가 시작될 터였다. 반배정이 끝났으니 아이들은 누구와 같은 반이 되어서 입이 함지박만해졌거나 아니면 어떻게 학교를 자퇴할 수 있을지를 머리에 쥐나게 고민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막상 시작한 뒤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새벽같이 출근하고 수업하고 대부분 그럭저럭 그만그만한 정도의 보람이 있다가 어쩌다 한번씩 다 때려치웠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규모의 일이 벌어지곤 하는 삶.
현실과 타협하기. 교사가 되면서부터 민주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된 신조이자 대원칙이었다. 이상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수면 시간조차 자신이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는 게 생활인의 삶일 줄이야. 민주는 구시렁대며 폰을 깨워 만들어두었던 여러 개의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를 재생시켰다. 익숙한 음률이 공간을 채우자 바닥으로 푹 꺼져들었던 기분이 비로소 조금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그치, 적어도 내가 내 기분을 끌어올릴 방법 한두 가지는 갖고 있어야지. 그게 남들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없는 조금 낯부끄러운 취미라고 해도.
새로운 발견, 소소한 기쁨을 하나씩 찾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야심차게 생각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지. 민주는 머릿속으로 그래도 제법 희망찬 청사진이라 할 만한 것을 품고 살았던 시절을 헤아려 보았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청사진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은데. 생각은 금세 딴데로 빠졌다. 어쩌면 어떤 단어들은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만 유효한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의 자신에게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보다는 하루하루를 잘 버티게 해주는 방법론이 필요한 게 아닐까 고심하던 민주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놓칠세라 허둥지둥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remedy, solution, antidote, lifeline.
이 네 단어로 간단하게 새학기를 시작하는 어수선함을 가라앉힐 이야기를 해주면 되겠다. 괜찮은 이야깃감을 찾은 민주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학기 초의 어색함과 가벼운 흥분을 가라앉히며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들려주는 일화를 오래도록 기억할 학생은 드물지 몰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사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쁠 건 없을 테니까. 하루하루가 힘겹고 버티는 게 전부일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마음에 잘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 한번뿐일 생이 어여쁘게 자라나도록 격려하는 것도 자신의 일이라고 민주는 쭉 믿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 네 가지가 다 있던가. 직전까지 혼자 샐샐 웃고 있던 민주의 얼굴이 삽시간에 골똘해졌다.
[표제어_북돋우다/모티브_히노시타 아카메「강의 도시의 셀린」]
BGM_Schubert : Die Forelle Op.32 D.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