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자, 왜냐면

조지프 엡스타인, 소설이 하는 일

by 담화

The Novel, Who Needs It?


어그로 끄는 제목을 짓는 건 이제 전지구적인 경향일까...

원제에 비하면 점잖기 짝이 없는 역서의 제목과 원제를 번갈아 들여다봤다. 한참을.


http://aladin.kr/p/QqaRm


일과 사람, 제목의 끝에서 떨어진 시선은 잠깐 방황하지만 결국 어쩌면 이것은 돌고 돌아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를 지금부터 밝혀 보겠다. 일단 '일'이라는 것을 이렇게 배운 바가 있다.


일은 일반적으로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움직인 물체의 거리로 정의된다(위키 왈). 이렇게 정의할 때 일은 단순히 힘을 줘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되는데 힘을 가했음에도 안 움직이거나 힘의 방향과 이동 방향이 일치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된다(모두가 배웠듯이...)


겁내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올라갔다면 힘을 써서 위로 이동한 것이니까 일을 한 셈이지만, 온갖 용을 써서 책상을 밀었는데 안 움직였다면 땀을 쭉 빼도록 고생했어도 물리학적으로는 일한 것이 아니다. 억울하겠지만. 무거운 가방을 들고 수평으로 이동했으면, 이것 역시 근육은 퍽 고되겠지만, 음…

세상살이라는 게 원래 참 억울한 일이 많긴 하지만 그러니까 이것만큼은 너무 물리학적으로 따지지 말자... 뭔말이야, 넘어가겠습니다.


이런 뻘소리를 왜 했는가.

소설은 기실 물리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는 없다. 아니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기면 어떨까. 그래도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녕 아무것도 없을까?


한 권의 소설이 한 사람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 필요하다. 혹은 단호한 결심이. 특히나 요즘처럼 긴 호흡과 (어찌 보면) 지루한 빌드업이 필수적인 서사 장르를 맘먹고 읽는 사람이 줄어가고 있는 세상에선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귀한 재화인 시간과 인내심을 굳이 투자해 가며 소설을 찾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소설만이 사람의 마음에 할 수 있는 일(물리학은 잠시 밀어두자)'을 찾는 사람이 바로 '소설이 필요해서 굳이 찾아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역서의 제목과 원서의 제목이 슬며시 손을 잡는 순간이 거기에 있었다(는 나만의 뇌피셜이지만).


더스패서스와 헤밍웨이 이 두 소설가를 보면서, 소설도 영화처럼 읽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를 나타내는 등급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23쪽
소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른 어떤 예술적 형태나 지적인 시도보다도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과 조건은 바뀔 수 있지만 인간 본성을 둘러싼 이 대단한 질문은 바뀌지 않는다. 쿤데라가 "위대한 소설에서 발산되는 빛은 결코 흐릿해질 수 없다. 인간 존재는 시간 속에서 인간에 의해 영원히 잊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소설가들의 발견은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적은 것처럼 말이다. 소설이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은 다른 어느 분야에서보다 그 질문을 훌륭하게 다뤄낸다. -58쪽
소설은 우리와는 다른, 때로는 이질적인 삶이나 생활을 소개하면서 공감을 확장하고(가끔), 취향에 변화를 주고(자주), 경험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항상), 우리 자신의 바깥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운이 좋으면). -114쪽
셀프는 이 현상이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마침내 깨닫고 인식한 것처럼 상세한 읽기 경험을 대체할 것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지면의 몇 줄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온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곳에 깊게 빠질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오직 소설만이 선사하는 능력이다. -134쪽


모든 것을 이항대립적으로 판단하고 싶어 하는 경향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이 시대에, 메자닌 플로어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신적인 영역은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우리는 좀 더 모호한 영역에, 회색지대를 서성일 필요가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 그와 협의를 하고, 대화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공존할 수가 있겠느냐고.


원서 제목에 대한 답은 아마 이것 둘 중 하나가 아닐까.

everybody, or you.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빌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