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이 넘쳐흘러 가끔은 전문가의 세계에 넘나들기도 하는
“뭐 봐?”
한참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있던 윤수가 깜짝 놀라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아니, 이야기라기보다는 수수께끼일까. 한이하가 눈앞에 있었다. 한이하는 윤수 못지않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사는 걸로 유명한 애였다. 신윤수의 견해로 말하자면,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 무슨 상관― 쪽에 가까웠지만.
“어, 그냥 추리소설.”
“흐음.”
쟤도 나만큼이나 할 일이 많으니 금세 가겠지, 생각한 윤수는 더 이상의 대꾸를 않고 다시 눈을 책상 위로 떨어뜨렸다. 지금 한참 긴장되는 대목인데 말을 시키고 말야. 그러나 앞에서 알짱거리는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짜증스러워진 윤수가 눈만 위로 치켜뜬 채 조금 사나워진 목소리로 으르댔다.
“용건이 뭔데?”
“그거 재밌지? 어디까지 읽었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질문에 윤수의 눈이 막대판에 맞고 튕겨 올라간 핀볼처럼 뒹구르르 구르다 다시 제가 읽던 책 표지로 툭 떨어졌다.
“스케타케가 죽은 채로 발견됐어. 거꾸로...”
“아아, 그거. 좀 그로테스크하지, 그치?”
“조오금.”
“되게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데, 나는 결말이 좀 아쉽더라. 그래도 뭐, 캐릭터가 워낙 훌륭하니까.”
윤수는 이하의 말에 조금 흥미를 느꼈다. 장르소설에 푹 빠져 산 지난 몇 년간 자신에게 이런 식의 대화를 건네 온 사람은 같은 취향으로 가끔 연락하는 온라인 친구들 말고는 전무했다. 같은 반이긴 해도 얼굴과 이름만 알고 지내던 애가 갑자기 말이 통하는 사람처럼 싹싹하게 구는 게 영 낯설긴 해도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을 한심하게 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의 화법이 아니었으니까.
“넌 얼마나 읽었어, 요코미조 세이시?”
“음, 솔직히 말하면 대표작밖에 안 읽었어. 그것도 순전히 손자 때문에 읽은 거지만.”
“아아,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걔.”
“맞아.”
“근데 그 대사 걔 전유물 아닐 텐데.”
윤수의 말에 이하가 진짜로 웃는 얼굴을 했다.
“그거 맞아. 많이 오해하는데 니가 생각하는 꼬맹이 대사 아니야.”
“넌 뭐 그런 걸 그렇게 다 꿰고 있냐?”
“그냥, 좋아하니까. 너도 너 좋아하는 건 하루 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을 거 아냐.”
할 말이 없어진 윤수가 검지를 세워 책 표지를 톡톡 두드렸다. 한이하는 간만에 말이 통하는 상대이긴 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지금 막 발견한 시체 앞에서 명탐정이 뭐라고 할지가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 이 지점에서 흐름을 끊다니. 하지만 어차피 점심시간은 10여분 밖에 남지 않았고, 한 번 끊긴 걸 다시 이어가기도 애매했다. 결단을 내린 윤수가 책을 탁 덮고 팔짱을 끼었다.
“그래서? 뭐에 대한 견해가 필요한 건데?”
“... 어?”
갑자기 자세를 바꾼 윤수의 태도에 놀란 듯 이하의 얼굴이 조금 당황한 기색을 띠었으나 윤수는 방해받은 데 대한 대가를 받아낼 심산이었다. 쉽게 놔주나 봐라.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깝죽댄 하룻강아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한 윤수가 마음과는 다르게 느긋하게 물었다.
“어차피 너도 미스터리 입문은 셜록 홈스로 했을 거 아냐. 얼핏 듣기로 니가 파는 장르는 다른 거라고 하긴 하더만. 그럼 미스터리는 초심자나 마찬가진데 뭘. 어땠냐고, 이 책 먼저 읽어본 소감이.”
“그, 말해야 돼?”
“어. 궁금해.”
나를 굳이 건드렸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말이야... 라는 속마음은 잘 개켜 넣어둔 채 윤수가 씩 웃었다.
“요즘 나한테 왜 이렇게 리뷰를 요청하는 사람이 많지.”
“이상한 소리 하면서 빠져나갈 생각 하지 말고.”
“좀 이상하게 말해도 그러려니 하고 들어라, 그럼?”
“감안하고 듣는다니까 그러네.”
윤수 앞자리의 의자를 빼고 앉은 이하가 슬쩍슬쩍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인물이 평면적인 건 어쩔 수 없지. 장르의 특성이 있으니까. 중요한 건 수수께끼와 솔루션이잖아.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어떻게. 무엇은 100%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 생각으로는, 80% 정도라고 봐. 어디서는 60%가량. 하지만 전혀 주어지지 않는 정보는 누가, 왜, 어떻게. 이 세 가지지. 언제는 대개 중반에 도착하기 전에 드러나긴 하지만 우리가 궁금한 건 언제라는 질문이 아니잖아?”
직전까지 이하를 무시하는 마음이 다분했던 윤수는 어느새 입을 다물고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이하의 말은 막힘없이 흘렀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이 질문 역시 어느 정도 정보의 격차를 뛰어넘어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 답을 구했을 때의 쾌감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아. 그러면 결국 작가와 독자의 힘겨루기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질문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야.”
“결국 왜 때문인지를 잘 숨겨놓는 게 관건이겠네.”
“그게 다가 아니지. 왜,를 얼마나 잘 납득시킬 수 있는지.”
이하가 문득 씩 웃었다.
“완벽한 항복, 납득, 그걸 받아내는 게 수수께끼 설계자의 소망 아니겠어?”
허술한 단서 몇 가지로 섣부른 추리를 하는 초짜 탐정이 된 기분으로, 윤수는 가만히 이하를 보았다. 그러나 이하의 얼굴에 윤수를 얕잡아 보는 기색은 전혀 없었고, 그저 즐거워만 보였다.
[표제어_애호하다/모티브_요코미조 세이시 「이누가미 일족」]
사진: Unsplash의Jonas Jaek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