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키위새 외 4인, 이 편지가 도착하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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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예전에도 쓴 글https://brunch.co.kr/@brickmaker/313 의 책의 저자이신 김해인 편집자님 덕분이라고 하겠다. 이 책에 작품을 실은 작가님들 중에서 유독 반가운 이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일명 골키새라고도 불렸던 (연재 당시에 그랬던 기억이 난다) 골드키위새 작가님이다. 당시만 해도 다음웹툰이 살아있던 시절이었고 골키 작가님은 '골 때리는' 작품으로 유명세를 떨치셨는데 <메지나>도 물론 아주 재미있었지만, <우리 집 새새끼>를 거쳐(이마 이치코 작가님의 <문조님과 나> 덕분에 사실 애완조를 소재로 한 만화는 이것으로 됐어, 라던 나를 개심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죽어도 좋아(뭐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아니야. 그거 아닙니다)>에 이르러 그분의 똘끼는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 게 아닐까... 짐작하는 바이다. 그러니, 사람은 관성의 족속이게 마련이라 당연히 여기에 실린 골키님의 작품도 그러하리라 예측한 것이... 어찌 보면 '그럴 법'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제대로 된 망사랑이었다.
진짜다.
(두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다시 봤다. 진짜? 골키 작가님, 못 뵌 사이에 김찌에서 메뉴 변경하신 건가!)
원래 남의 망사랑은 맛있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
맛있었... (넘어가자).
이 작품을 포함하여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산호 작가님의 <완벽한 사랑편지>가 가장 좋았다. 어떤 접에서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작법서적으로 말하련다. 사랑을 관념적으로, 개념적으로, 철학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그럴싸한 필터를 통해 설명하지 않고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어떤 대상의 본질을 말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것을 보여주면 끝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적확하게 말할 수 없다.
이 분이 데뷔를 하신 사연까지는 모르겠지만(내가 아는 한 최고로 재미있는 데뷔 사연을 가진 작가는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의 다케우치 나오코다), 산호 작가를 발굴한 편집자는 정말이지, 이 분의 원고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을 것만 같다. 내가 모래 속의 진주를 찾았노라고. anyway...
<인어의 연서>는 다리를 저는 도련님을 모시게 된 젊은 여성 고용인의 이야기다. 툭하면 물건을 떨어뜨리고서 주워 달라고 한다든가, 글을 읽지 못하는 주인공을 일부러 불러다 놓고 책을 읽어주는 귀여운 심술을 부리는 주인의 속을 알 수가 없다.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진짜. 차마 주인에게 대놓고 그렇게 쏘아붙일 수는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지만, 여주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안다. 걔가 왜 그러는지.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고 싶은 날엔 실수인 척 잉크를 쏟곤 했다. 바닥의 잉크를 닦고 나면 손에 검은 물이 잔뜩 들어 잘 빠지지 않았는데(...)" -48쪽
그러나 말했듯... 이것은 망사...
두 번째 이야기인 <완벽한 사랑편지>는, 미래가 분명한 시대와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어떤 풍경을 기묘하게 중첩시켜 놓은 시대를 배경으로 전쟁용 살상병기로 길러진 아이(제이)가 재판정에 세워진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이는 모종의 처분을 받는 대신 감정을 기르게끔 지도받게 된다. 담당의가 감정을 자극하는 소자를 깨우기 위해 엄선했다고 건네주는 리스트를 들고 아이가 찾아가는 곳은, 흡사 90년대의 대여점 같은 장소다. 이곳에서 제이는 리스트에 올라 있는 온갖 영화를 섭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사는 흥미로웠지만 나한테는 별 소용없었어. 씨앗이 전혀 싹트지 않았거든. -75쪽
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만을 얻는다. 그런 제이에게 대여점에서 일하는 비사는 영화를 함께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번에는 어땠느냐 감상을 묻는다. 제이는 '뭔가 다른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로 응수하며 잠시 망설이다 '내일도 오겠다'라고 말한다. 제이와 비사는 계속 함께 영화를 보게 될까?
<편지 읽어줘!>는 한 번쯤 '돌이켜보면 볼수록 가족에게 미안한' 기억 하나쯤 있을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그렸다. 동급생인 남학생에게 고백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던 허시는, 가족들의 과도한 관심과 응원이 부담스러워서 마음에도 없던 모진 말을 하고 만다. 그리고 내도록 후회하지...
편지 봉투를 열지 않아도 무슨 말들이 써 있을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다정한 말이 가득 담겨 있을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사랑이 고여 있을지 알 수 있었다. -158쪽
<동해를 위하여>는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여주인공 동해와 건들거리는 한량 의환의 기묘한 관계를 담담하게 보여 준다. 성실하고 고지식한 동해가 유부남인 주제에 가끔씩 껄떡거림과 플러팅의 기묘한 경계선에서 자신을 건드리는 의환이 좋게 보일 리 없다. 그랬는데, 끝까지 그랬어야 했는데.
나중에 내게 반해서 엉엉 울지나 마시게. -199쪽
(이 미친 자신감 뭐지...이마짚)
<예언의 수신인>은 이 작품집의 유일한 퀴어 작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애틋한 친구이고 연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용기를 내었고 다른 사람은 겁이 나서였을까, 대답 대신 회피를 택했다. 그렇게 잊혀질 인연인 줄 알았다. 어물어물 무너진 관계가, 웨딩플래너와 예비신부의 관계로 다시 마주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음 맞는 친구와 장난스레 시작하는 교환편지. 일상의 사소함을 주고받는 우정의 제례.
시작은 미미하지만, 성장기와 맞물리며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관계에 서로 중독된다.
교환 횟수를 세지 않는 순간이 온다.
글은 깊어진다. 행간엔 숨기기 어려운 애정과 헌신이 가득하다. 상대의 세상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289쪽
출판만화 쪽에서는, 비록 시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는 해도 새로운 시도를 거침없이 해 나가는 작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을 서포트하는 출판사와 편집자가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럽고 질투 나고 여하간 샘난다. 그리고 우리의 작가님들께서 오래도록 (작품 포함) 장수하시기를, 구석에서 조용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