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세드릭 이야기

by 담화

Good day, Little Lord Fauntleroy,


틀림없이 멋지고 너그러우며 훌륭하기까지 한 도린코트 백작님이 됐을 '틀림없는 미국인이자 영국 귀족이기도 한' 소년 세드릭, 우리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 알아요? 무려 40년이에요, 40년. 친구였다가, 동생 같았다가, 뭐 그다음은... 대충 생략할까요.


어땠어요, 갑자기 가게 된 영국은? 귀족 중의 귀족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류머티즘을 심하게 앓고 있는 괴팍한 노인네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할아버지와 만난 소감은? 세드릭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던 시절이 분명히 있긴 했는데, 재미없는 어른이 된 지금은 모든 질문에 번갈아가며 쓸 수 있는 세드릭 전용 모범답안 세 개를 대신 읊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아요.

첫째, 좋아요. 다 너무 좋아요. 둘째.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아주 너그럽고 훌륭한 분이죠. 셋째, 저는 꼭 할아버지 같은 훌륭한 백작이 될 거예요.

쓰고 보니 세드릭을 이렇게 요약하는 내가 진짜 시시한 어른 같네. 그렇지만 어쩐지 이 말조차 아니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기억해 주다니 정말 훌륭해요, 하고 대답할 것 같아요, 공자님께서는.


아기인데도 붙임성이 좋아서 누구든지 세드릭을 보면 즐겁게 말을 걸고 인사하곤 했다. 세드릭은 모든 사람을 친구로 여기는 것 같았다. 유모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갈 때 누가 말을 걸면 갈색 눈에 사랑스럽고 진지한 표정을 담아 바라보다가 사랑스럽고 친근하게 방긋 웃었다. -12쪽


어려서부터 이랬던 아이인데 그 모습이 어딜 가겠냐 말이죠. 이러니까 말 다 한 거지... 맞죠?


어떤 사람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말보다 행동을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얘기가 있어요. 세드릭이 어떤 아이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일화가 곳곳에 있지만,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후 내내 슬픔에 잠겨 있던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했던 행동에 관한 거였죠.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과 어머니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닫자 착한 세드릭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했다.
세드릭은 아직 아기나 다름없었지만,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어머니의 무릎에 기어올라가 입을 맞추고 곱슬머리를 어머니의 목에 기대고, 장난감이나 그림책을 가져와서 보여 주고, 어머니가 소파에 누워있을 때 자기도 그 곁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 어려서 다른 것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것은 세드릭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머니한테 위로가 되었다. -14쪽


공감능력은 훈련해서도 키울 수 있는 것이지만, 여전히 어렸던 세드릭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그 공감력은 분명히 양육환경에서 힘입은 바가 크겠죠. 엄마를 위로하는 사소하고 배려 깊은 이 행동도 그렇고, 할아버지와 첫 대면을 한 날 통증이 심해 힘겨워하는 백작을 선뜻 부축한 행동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속 깊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니, 사실은 힘겨워하면서도 끝끝내 부축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인내심보다도, 그 이후의 배려가 훨씬 놀라웠달까요.


세드릭은 딕이 준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를 닦았다.
"오늘 밤은 좀 덥죠? 할아버지는... 발이 아프니까 난롯불이 있어야겠지만 저는 좀 더운 것 같네요."
세드릭은 할아버지의 기분을 섬세하게 배려했기 때문에 자기의 말이 난롯불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104쪽


게다가 일곱 살이잖아요! 겨우 일곱 살이야! 일곱 살은 아가잖아요? 아무리 시대배경 감안해서 적당히 철이 들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쳐도 마음이 울렁울렁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일찍 돌아가신 아빠와 엄마가 세드릭을 키워낸 보금자리가 정말 문자 그대로 포근한 보금자리였겠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화이지만, 그곳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 하나가 무너진 것이 작은 일일 리 없잖아요.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알게 모르게 한쪽이 허전해진 마음의 집을, 지금껏 보호만 받았던 아이가 함께 무너지지 않게끔 받치려 든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자연스럽게 그랬을 거라 확신하게 된 것이, 겪어본 바로 아이들은 그렇더라고요. 이상하게도 부모의 짐을 함께 나눠 지려 해요. 놀랍게도 어릴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하고요. 어째서일까요. 연약한 존재가 더 많은 사랑을 품고 있다는 것, 기꺼이 아무 대가도 없이 그 사랑을 나눠주려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시릴 정도로 가슴을 아프게 해요.

하지만 또 그렇게 자랐기에 세드릭이 유달리 친화력이 좋을 수 있었을 거고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일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마침내는 완고하기 짝이 없는 고집쟁이 할아버지를 -물론 세드릭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는 거, 알게 되면 무척 기뻐하겠지만 그건 도린코트 백작님의 명예를 위해 묻어둬야겠죠. 한 20년 전쯤인가 본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왔어요.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 세드릭이 할아버지에게 한 일이 정확히 이거였어요.


백작은 예전에는 이런 문제 따위는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사실 지금도 한 아이가 자기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고 자신을 거울삼아 따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백작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141쪽


너무 좋잖아요. 누군가가 더 좋은 사람이 되게끔 맘먹게 할 수 있다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딨겠어요. 뿐일까요, 분명히 우리가 이름 모를 수많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도 했을 세드릭 에롤이자 로드 폰틀로이, 언젠가의 도린코트 백작님. 사랑스럽고 다정한 소년, 너그럽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봤던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해 주기를 바라요.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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