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고수 외, 제8회 엘릭스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품집
글쓰기 공모전이 굉장히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나’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 것과 꽤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짐작하는데 조사해 본 바는 없으므로 아직은 뇌피셜인 걸로. 아무튼 그래서 이런저런 공모전의 수상작품집을 읽어보는 게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는데, 공모전의 이름과 상관없이 심사위원평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게 있다. 각기 다른 장르에서, 이름 쟁쟁하신 평론가와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더라. ‘응모작을 심사한다기보다, 출간작을 감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반적으로 수준이 올라갔다’라는 평인데, 많은 독자가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모전 수상작품집을 읽다 보면 굉장히 놀라게 될 때가 많다. 덜 다듬어진 풋풋함은 열외로 하고 이야기의 완결성만으로 볼 때 우와, 하고 감탄만 뱉게 되는 경우가 월등히 잦아졌다. 최근 그런 작품집을 여럿 읽었다. 그중 물개박수를 치면서 읽었던 수상작품집은……사실 이건 아닌데, 그건 좀 더 익혀서 얘기하고 싶으니까 미뤄두고(이러다 잊어버릴 가능성 농후함), 먼저 드는 책은 이것.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145691
엘릭시르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문학동네의 임프린트다. 매해 미스터리 작품에 한해서 장편과 단편, 비평 부문의 응모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세상에 어찌나 비밀이 없어졌는지, 미스터리와 스릴러는 갈수록 작가에게 극한의 두뇌노동을 요구한다.
원래 잘 쓰시던 분들도 괴로울 텐데,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작가들의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트릭은 고갈되고 있고 세상은 점차 투명해지고 있다. CCTV, GPS, 스마트폰, DNA 분석. 아, 우리 살기엔 너무나 다행스럽지만 2020년대 배경의 미스터리를 쓰는 건, 거의 아이디어 차력쇼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트릭 그 자체에 편중되어 있는 미스터리보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적 서사와 사건을 추동한 진짜 원인을 다루는 미스터리의 비중이 늘어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아주 근거없지는 않을 듯도 하고. 그런 와중에 SF 느낌이 나는 장치를 도입해서 재미난 트릭을 완성한 대상작이 어찌나 반갑던지.
수상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을 포함하여 총 다섯 편의 미스터리 단편이 실려 있다. 아예 미래적인 설정을 도입한 작품과, 호러적인 장치를 이용한 작품, 아마도 조선 시대로 보이는 배경을 둔 작품이 둘(과거를 배경으로 삼는 마음 십분 이해한다), 그리고 기담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이렇게 다섯 편을 읽고 나서 처음 한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지금 바로 이 시대, 이 순간으로 미스터리를 쓰는 일의 어려움. 심지어 오늘 아침엔 스레드에서 왜 우리나라에서 암매장이 불가능한지(뭐 이 비슷한 내용이었는데)를 요목조목 나눠 설명한 글을 봤는데, 현실의 기준으로는 참으로 다행스럽고 안심되는 일이지만 미스터리 작가들은 정말이지 괴롭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훌륭한 미스터리를 써나가시는 작가들께 박수를……
장르소설을 소위 순문학에 비해 상당히 격이 낮은(대체 그 격이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글로 치부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건 정말이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장르엔 확고한 문법이 있다. 종종 그거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건 그 문법을 무시하고서는 장르에 속할 수 없다는 운명의 구조적 데스티니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바로 그 뚜렷한 구조 안에서 한 끗 다른 서사를 고안해야 하는 작가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는 김치찌개 맛이라는 걸 내가 곧바로 알아차려서는 안 되지만 먹다 보면 안심하고 만족하게 되는 바로 그 맛 나는 확실한 김치찌개를 끓여주세요, 이것이 장르 독자의 요구사항이다(과몰입했다).
그게 다른 장르도 아니고 미스터리라면 그 고충이 배가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장르의 법칙을 어겨서는 안 돼, 게다가 치열한 두뇌싸움은 필수라니. 심지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바로 그 작가, 에도가와 란포는 심지어 이런 책을 쓰셨는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2959871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웃어야 하나)
이것이 미스터리 작가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독자에게 도움이 될지는……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아주 재미있었지만.
그런데 이 와중에 왜 블랙코미디 같은 그 소설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형사로 일하는 일본의 부유한 가문 아가씨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집에 들고 와 끙끙 앓고 있으면, 몹시 우아한 태도로 “아가씨는 혹시 바보십니까”, “눈은 멋으로 달고 다니십니까”를 연발하며 순식간에 그 수수께끼를 좔좔 풀어버리는 시건방지고 머리 좋은 집사 탐정이 나오는 소설. 그거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앗, 절판됐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398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