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겨울 요리가

추운 날 생각나는 한 그릇의 스튜

by 담화

상상으로만 그려보던 음식을 처음 맛보았을 때의 기분이란 거, 혹시 알고 있니?


너희는 그런 경험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해. 요즘엔 별의별 외국 음식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파는 곳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라서. 하다못해 이런 재료를 팔까 싶어 검색해 보면 안 파는 식재료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체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달까. 아마 엄마랑 비슷한 어린 시절을 거친 또래라면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아.


아무튼 그런 책도 있을 정도라니까. 엄마 어릴 때는 국내의 아동문학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아동문학이라고 해봤자, 국내 창작동화보다는 대부분이 외국의 유명작들을 번역한 것들이었지.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그 나라 아이들에게는 평범하기 그지없을 일상의 음식들이 별나라 음식이나 다름없이 보일 수밖에.

메밀 크레페니, 아이스크림 선데니, 이게 다 뭔지 궁금해 죽겠는데 알 방법은 없고.


인터넷이 깔린 게 엄마 대학생 때니까 뭐 말 다 했지. 오죽하면 엄마랑 비슷한 세대일 듯한 어떤 작가도 맛을 알 수 없었던 음식들을 공상하던 추억과 그 음식이 현실의 맛이 됐을 때에 대해 쓴 책도 있을 정도니까, 낯선 음식들에 로망을 가진 건 아마 엄마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여하간, 그런 수많은 ‘뭔지 몰라도 엄청나게 맛있을 것 같은’ 음식들 중에서도 엄마의 흥미를 끌었던 건 단연코 스튜였지. 세상엔 소울 푸드라는 게 있다는데 스튜야말로 모르긴 해도, 그 소울 푸드라는 것 중에서도 첫 손에 꼽혀야 마땅한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문학의 힘이란 게 그만큼 대단한 거야. 맛을 알지도 못하는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음식을 둘러싼 인물들의 분위기나 대화를 통해 그게 단순히 배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까지 위로할 수 있는, 그들에게는 지겨울 정도로 흔해 빠진 음식이지만 그만큼 일상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음식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걸 넘어서, 어떤 종류의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 엄마는 어릴 적의 소원풀이를 하듯 온갖 외국 요리… 뭐 주로 서양요리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올라 있던 음식들을 만들어 보는 일에 꽤 심취했었지.

그중에서도 스튜 중의 스튜라 할 만한 비프스튜(엄마가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일단 젖혀두자)는 정말 온갖 레서피를 다 탐독하고 온갖 푸드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조리법을 다 실험해 본 것 같아. 심지어 그 복잡함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줄리아 차일드의 뵈프 부르기뇽 레서피까지 테스트해 봤으니까 말 다 했지. 그것도 우리가 미국 살 때, 그 짜증 나는 샬롯 손질을 감수하고 세이프웨이에서 직원과 심도 있는 상담 끝에 골라온 피노 누아까지 넣어 끓였으니 얼마나 맛있었겠니. 하지만 엄마는 그거 딱 한 번 해 본 걸로 손 털었어. 한 번은 됐다, 나는 줄리아는 못 될 것 같아, 하고. 아무튼.


그 뒤로는 나름 엄마 입맛에 맞춘 조리법을 찾는 데 몰두했던 것 같아.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서 종종 해 먹는 이 방식이 나온 건데… 사실 어디에 대고 이거 꼭 해봐,라고 자신 있게 말은 못 하겠어. 하지만 너희한테는 익숙한 맛일 거야.


냄비는 좀 커야 해. 엄마가 쓰는 냄비가 스튜 종류의 요리에는 아주 딱 좋은 건데 그냥 코팅냄비에 해도 안될 거 없어. 아무튼, 좀 저렴한 부위의 소고기를 써도 돼. 워낙 오래 끓이니까 엔간히 질긴 것도 결국은 입안에서 녹을 지경으로 부드러워지니까. 베이컨 네 줄 정도와, 적당히 큐브 형태로 토막 낸 소고기 400그램 이상(적은 양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니야), 양파 1개나 2개(크기에 따라 다르지), 당근, 셀러리, 양송이버섯, 마늘, 이런 뻔한 재료들이 필요하고. 간단 버전으로는 베이컨과 약간의 기름, 마늘편에 고기를 볶아서 겉면을 바짝 익혀준 뒤 준비해 둔 채소를 넣고 볶다가 육수(미리 만들어 둔 닭 육수나 고기 육수가 있으면 베스트지만, 없지? 그럼 그냥 물로 대체해도 오케이)를 잘박하게 붓고 끓이는 건데…


조금 귀찮아도 조금 더 맛있으면 좋겠다, 라면.

썰어둔 고기에 가볍게 밀가루를 입혀. 그리고 센 불에 올린 팬에 기름 조금, 베이컨과 마늘편을 넣고 빠르게 향을 올린 다음 밀가루 옷 입은 고기를 넣고 겉면을 익혀줘. 이걸 소테 sauté 한다고 하지, 보통. 그리고 온도가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고기를 한 번에 와르르 넣고 익히면 안 되고 조금씩 나눠서 익혀야 하는데… 못하겠지? 그래서 이 방법은 굳이 권하진 않아…


물론 이렇게 소테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익힌 고기를 덜어놓으면 아마 팬 바닥에 고기 살점이 조금씩 눌어붙어 있을 텐데 여기에 와인을 아주 약간 부어주고 (엄청난 소리가 날 거야) 나무주걱으로 빠르게 바닥을 긁어주어야만 하는데 이게 바로 디글레이징이라고 부르는 작업이지. 왜 와인을 붓냐면, 알코올이 눌어붙어버린 엑기스(부르는 정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를 가장 효과적으로 녹여주기 때문이야. 아무튼 이걸 생략하고 그냥 고기를 채소랑 볶아줘도 돼…


어디까지 했지? 아, 물 부어서 끓이기 시작했지. 와인과 토마토 통조림을 넣어서 끓여도 돼. 토마토 통조림이 뭔데? 토마토 페이스트라고 써놓은 거야?라고 묻는다면, 페이스트는 다른 거야.

홀 토마토 whole tomato라고 쓰인 거 있지, 그거. 근데 만약 토마토 맛이 너무 강한 게 싫다면, 간장과 토마토 통조림으로 바꿔도 괜찮아. 못 믿겠지? 근데 엄마가 해주던 건 그거 두 개를 섞은 거였어.

간은 소금으로 맞춰주는 게 좋고. 되게 무책임한 소리인 거 아는데 스튜는 딱히 이걸로만 맛을 내야 돼,라는 게 없어. 물론 맛을 내는 재료의 스펙트럼을 잘 모를 때에는 두 종류 이상을 섞는 건 강력하게 비추야. 흔히 말하는 니맛도 내 맛도 아닌 괴상한 요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거든.

뭘로 해도 다 이상할 것 같아서 겁난다면, 치트키를 줄게.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의 파스타 소스 있지? 그거 두 스푼 정도 넣어 봐. 애매하던 맛이 확 잡힐걸. 파는 음식의 위력이란 그렇게 강력하단다…


허브도 넣어야 된다던데,라는 말엔 이렇게 답해 줄게. 그거 넣어두세요, 아가씨들 & 도련님. 그건 경험치 좀 쌓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참, 오래 끓일수록 간은 세어져. 그거 알지? 처음에 끓일 때 마음에 찰 때까지 간 맞췄다가는 두세 시간 후에 도저히 참고 먹을 수 없는 수준의 소금탕을 먹게 될 수도 있으니 간은 조금씩, 천천히 맞춰간다는 거 꼭 잊지 말고.


삶아놓은 파스타나 매쉬드 포테이토에 곁들여 먹으면 또 이렇게 몇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량(?)이 되지. 엄마는 추운 겨울날 이게 그렇게 좋더라고. 한 번에 넉넉하게 만들어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 참 좋잖아. 아, 너흰 안 그래? 아냐, 직접 식사준비를 하는 입장이 되면 좋아진다니까.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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