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바 아니지만 면 요리의 향연

이거 저거 다 넣어도 맛있는 잡채

by 담화

또다시 새로운 월요일이 찾아왔구나. 안녕 Sunnie Jinnie & June, 오늘부터 날씨가 추워질 거래.

사실 요 며칠간 11월 치고는 좀 심하게 따뜻~아니 더운데?를 오가는 기온이었지.


엄마는 장장 2주가 넘도록 목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사실 그럴 때는 컨디션이 최악이라 밥이고 나발이고 다 됐다 그래,라고 소리 지르고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엄마라는 이름은 반차조차 내기 힘들어. 그래도 엄마는 이제 너희가 웬만큼 자랐으니까 사실 ‘아 몰라, 나가서 알아서 사 먹고 와’라는 카드를 내밀 수나 있지.


너희가 아주 작고 어릴 때, 도움의 손길이 간절했던 때가 분명히 있었거든. 정말 너무 아프거나, 아무 데도 손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순간에 처한 엄마들을 돕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갑자기 작은아이가 다쳐서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는데 아빠는 출장으로 집에 없고 하필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큰아이를 맡길 곳도 없는 그런 난감한 상황에 처한 엄마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는 게 기억난 건 오랜만에 잡채를 볶았기 때문인 것 같아. 엄마가 정신적으로 꽤 힘겨운 시기를 지나올 때 이런 일이 있었어.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잘 안 나.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냥 그때 너희가 다 어렸고, 특히 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우울증에 시달렸던 때였지. 엄마가 지금도 가끔 우스개처럼 말하지만, 진이가 보통 예민한 애였냐고.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그때 정신적으로 꽤 위태한 상태였던 것 같아. 아침에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유모차에 진이를 태우고 선이를 데리고 나와서는 어딘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 걸로 시간을 보내곤 했으니까. 아마 그렇게 거의 매일같이 같은 자리에서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누군가는 엄마를 걱정했나 봐. 가만히 앉아있는데 누가 어깨 너머로 따뜻한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은 잡채를 건네주면서 이걸로 점심 한 끼 때우라고, 너무 고생이 많다고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야. 때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내가 얼마나 힘겨운 상태인지를 전혀 모르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를 구해주기도 해.


엄마도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친절(?)을 베푼 적이 있다는 걸,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적도 있어. 뭐, 다른 얘기는 다 됐고, 그냥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구명줄일 수도 있다는 거… 그런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어.

잡채 얘기로 돌아갈까. 참, 늘 그렇듯(?) 엄마는 약간의 편법을 선호해. 그러니까 엄마 다른 조리법 찾아보니까 엄마처럼 안 하던데?라고 해도 해줄 말이 없어.


우선 양념. 이것도 배리에이션이 엄청 다양하게 가능한데 간장, 참기름, 설탕, 후추, 통깨. 이게 기본이지만 간장+쯔유, 간장+노두유, 간장+조선간장, 간장+굴소스… 등등이 있지만 일단은 기본으로 가기로 하자. 항상 하는 얘긴데 콸콸 들이붓지 마, 응? 불린 당면에 부가재료 합쳐서 100g에 염분 재료 0.7스푼으로 늘려가 봐. 비율은 간장 1 : 참기름 0.7 : 설탕 0.5 정도로.


밑간 한(불고기 양념으로 제대로 해줘도 되고… 간소화해도 되고…) 채 썬 고기를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는데, 엄마는 개인적으로 채소만 있는 걸 선호해서 굳이 넣진 않아. 경우에 따라선 어묵채를 넣기도 하고 콩나물을 넣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 말 그대로 잡채랄까. 채소는 무엇이든 냉장고에 있는 걸 찾아 썰어 넣어도 괜찮아. 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비슷한 형태로, 굵기로. 이걸 맞춰주는 건 잊지 말고.


당면은 미리 물에 불려놓는 게 좋아. 불려놨다가 끓는 물에 가볍게 삶아 건져 쓰는 게 베스트지만, 깜빡했으면 그냥 끓는 물에 삶아서 써도 돼. 늘 하는 말이지만 큰일 안 나.


그리고 원래 잡채는 채소를 다 따로 볶아두고, 삶은 당면은 양념에 버무려 두었다가 나중에 합쳐주는 게 정석이거든. 정석이긴 한데,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엄마도 그렇게는 못 해… 설거지 많이 나오는 거 질색이어서.

다만 약간의 순서는 지켜주자. 당근이나 마늘종처럼(이건 있어서 넣은 거지, 꼭 넣어야 하는 건 아니고) 단단한 채소를 먼저 볶고, 살짝 휘어진다 싶을 때 파프리카라든가 양파(양파는 익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익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흐늘거리기 때문에)라든가 버섯, 시금치, 이런 애들을 넣으면 돼.


채소가 80% 정도 익었을 때 건져 놓은 삶은 당면을 넣고 만들어 뒀던 양념을 넣어서 볶아주세요. ok? 처음엔 약불에 놓고 재료 전체에 간을 배게 잘 섞어 준다는 느낌으로, 만약 양념이 부족하다 싶으면 간장 1스푼 정도에 물 2-3스푼을 섞어서 추가 투입하기.

색이 너무 안 난다 싶어서 간장 들이부었다가는 영원히 수습 불가능한 비극을 맞을 수 있으니 절대 그 짓만은 하지 않기를… 반대로 양념이 많아서 질척해진 느낌이라면 불을 올려서 빠르게 수분을 날려줄 것.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채소가 숨이 좀 더 죽었다면, 그게 베스트.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 말인데 저건 조리'중'인 상태야, 알겠지? 저것보다는 색이 더 나게 되어 있어.


아무래도 잡채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하게 되다 보니 먹다 지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소분해서 냉동해 두었다가 나중에 간단하게 끼니를 때워야 할 때 잡채볶음밥을 하거나 만두피에 넣어서 만두처럼 빚어 먹어도 맛있어. 아님 엄마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었던 분처럼, 이웃에게 작은 나눔을 해도 좋겠지. 그러기에 정말 딱 어울리는 음식인 것 같아, 잡채는.


그럼 오늘도 끼니 잘 챙기고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 바라, 클 만큼 큰 것 같은데 아직도 아가들 같은 삼남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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