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은 항상 중요해서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된장찌개

by 담화

원래는 오늘 매쉬드 포테이토 맛있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된장찌개. 하핫. 그게 그렇더라, 삼남매야… 계획은 꼭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사는 게 그렇더라고.


된장찌개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맛있게 잘 끓이기는 정말 쉽지 않지. 너희 셋이 모두 다 된장찌개를 잘 먹긴 하지만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일 생각을 하고 이것저것 밑준비를 하다 보면 항상 다섯 살 즈음의 진이가 생각나.


그맘때 진이가 음식에 대해 얼마나 주관이 뚜렷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날 정도니까.


지금이야 KTX를 타고 가지만 너희 어릴 때만 해도 짐이 한가득이니까 꼭 차를 갖고 외갓집을 가지 않았겠니. 외갓집에서 할머니가 온갖 솜씨를 부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거창한 밥상으로 잘 얻어먹고 오는 길에도, 우리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지나는 삼거리쯤 도착하면 진이는 까불거리는 소리로 꼭 이렇게 말했지.

“엄마, 나 피곤하니까 오늘 저녁은 댕장찌개(다섯 살짜리 발음이 뭐 얼마나 대단히 깔끔했겠니).”


외갓집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어. 진이의 된장찌개 주문은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쭉 이어졌던 것 같아. 여하간 어딜 좀 멀다 싶은 곳만 다녀오면 자동으로 “엄마, 입맛 없으니까 된장찌개.” “엄마, 저녁은 간단하게(간단하면 너님이 끓이세요) 된장찌개.”

이렇게 변주도 다양하게 얼마나 많은 된장찌개 주문이 쏟아졌던지. 쬐매난 게 입맛은 어찌나 아재 같은지, 하여간 맨날 그놈의(?) 된장찌개.


약간의 변주를 가미해서 배추 된장국이나 무채 된장국 같은 걸로 대체하면 이건 찌개가 아닌데, 하고 비죽거리는 그 쪼매난 입술이 얼마나 얄밉던지 엄지와 검지로 꼭 집어 꾸욱 비틀어 주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더랬지.


그러니까 그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 가르쳐 줄 테니까, 이젠 네가 좀 해 먹어. 알겠지.


일단 가장 평범하게 멸치 육수로 끓이는 버전으로 가자. 여기서 중요한 거, 물을 한강으로 잡지 마. 재료를 다 넣었을 때 8-9부 정도만 채우는 정도로만 넣으면 좋겠어. 찌개는 오래 끓여서 염도가 올라가니까 물 많이 넣으라고 얘기할 때도 있는데, 재료를 뭘 넣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 여기에 멸치나 디포리 몇 마리 던져 넣고 육수를 내는 거지. 충분히 맛이 우러났다 싶으면 건져내주고.


호박이나 무나 버섯, 감자, 다 잘 어울리는데 감자를 썰어 넣을 때는 물을 조금 넉넉히 부어줘도 좋아. 왜냐면 감자는 물을 꿀떡꿀떡 다 먹어버리거든… 양파는 너무 많이 넣지 않으면 좋겠어. 단맛이 굉장히 많이 배어 나오거든. 처음 먹을 때는 그것도 맛있는데, 만약 남아서 다음 끼니까지 먹게 되잖아? 그럼 그 양파 단맛이 좀… 아무튼 좀 그래. 여하간, 물을 너무 많이 잡지 말라는 건 채소에서 우러나는 맛이 국물에 배어들 여백이(이걸 뭐라고 써야 하나 한참 고민했네) 필요해서 그래. 처음에 물을 너무 많이 잡으면 그 맛이 뭐랄까, 좀 희박해져. 굉장히 미묘한 차이인데 알지, 맛이 아주 미묘한 한 끗 차이로 달라진다는 거. 맛있는 된장찌개와 그저 그런 된장찌개, 된장국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첨벙첨벙한 된장찌개를 가르는 건 그 정도의 차이야.


아, 그리고 홍고추든 청양고추든 한두 개 정도는 꼭 넣어주는 게 맛있어. 대파도 꼭꼭. 된장은 정말, 요즘은 파는 데도 많으니까 가급적이면 대기업표 된장은 피해서 쓰면 좋겠어. 이건 꼭, 정말로 꼭.


사실 된장찌개 진짜 별거 없어… 엄마가 잠깐 심술스럽게 썼는데, 간단한 거 맞아. 입맛 없는데 밥은 먹어야 할 때, 된장찌개 하나만 끓여서 도시락 김 하나 까서 밥 한 끼 먹어도 좋을 것 같아. 계란 프라이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고. 만약 고추가 없다면, 고춧가루 한 티스푼 정도 휙 흩뿌려서 먹으면 그것도 맛있지.

밥 한 끼 해 먹는 게 엄청 대단한 일 같은데, 하다 보면 또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거든. 그러니까 오늘도 꼭 잘 챙겨 먹고 나가. 추운 날씨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길 바라. 또 봐, 엄마의 예쁜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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