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보다 숟가락 먼저 담그고 싶어지는 불고기 전골
비가 와. 선이와 진이는 항상 작은 우산을 휴대하고 다니니까 크게 걱정이 안 되는데, 막내가 집에 올 때에는 비가 좀 덜 와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드는 날씨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이건 순전히 재미로 하는 얘긴데, 엄마가 예전에 친구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 비 내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조금 더 감성적이고, 비 내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활동적인 경향이 있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비 좋아하는 사람은 바깥에는 비가 내리지만 반대로 실내에서 ‘안온해지는 정서’를 즐겨본 경험이 있어서고, 반대인 사람은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뭔가를 위해 움직이고(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체적인 불편함과 감각적인 불쾌함을 두루 겪은 경험 때문이라고 하더라.
뭐, 조금 단순화한 이야기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 엄마는 전형적으로 비를 싫어하는 쪽에 속했거든. 그랬는데,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비가 오면 비 온다는 핑계로 전 부쳐 먹을까, 아니면 따뜻한 국물이 있는 걸 먹을까를 고민하는 식생활 주력형 인간이 되어버렸네.
예측 가능한 인간이 되는 건 참 싫은 일인데, 나이를 먹을수록 남들에게 저 사람은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행동을 할 게 틀림없어, 하는 모습 하나로 수렴해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돼. 그래서, 뭐랄까 조금 악을 쓰는 기분으로(?) 기름진 음식에서 탈피해 보기로 했어.
불고기도 참 여러 종류가 있지. 물기 없게 바짝 볶아서 그야말로 단짠의 정수 같은 맛을 내는 바싹 불고기도 있고, 국물을 넉넉하게 부어서 약간 전골 느낌이 나게 끓이는 불고기도 있고. 엄마는 명백히 후자를 선호하는 쪽인데 이건 약간 어린 시절의 추억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외할머니는 바싹 쪽을 좋아하셨고, 그래서 이렇게 국물 많은 불고기를 처음 맛봤던 건 아마 엄마가 일곱 살 남짓 됐을 때 할아버지가 식당에 데려가 주셨던 그때가 아닌가 싶어.
지금 이걸 쓰다가 혹시나 해서 검색해 봤는데, 세상에. 당시에도 정말 맛집은 맛집이었던 모양이야. 그 식당의 그 불고기 전골 메뉴를 기억하는 사람이 정말 많이 있네. 그런 맛있는 집에 왜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간 기억만 있는가 하면, 인제 와서야 깨달은 건데 그건 삼촌 때문인 것 같아.
엄마보다 훨씬 더 어렸던 삼촌을 돌보느라 나가떨어지기 일보직전이 된 할머니가 엄마와 할아버지를 집에서 내보낸 거겠지. 제발 쟤 좀 밥 좀 먹여서 데려오라고. 그렇게 옛 기억의 앞뒤를 맞추어 보니 너희 아빠가 막내 태어나고 얼마 안 됐을 때쯤 선이 진이 손을 잡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밥을 사 먹였던 기억도 난다. 그중에 한 곳이 경양식집이었던 것도. 아무튼 그건 또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하간, 그 불고기 전골 같은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엄마 손으로 세끼 식탁을 차리게 된 이후였지. 뭐든 엄마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국물 맛을 낼 수 있나 골똘히 생각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결국은 별 거 없더라. 들어가는 채소 맛이 어우러져서 그 맛이 나는 거였어. 그렇다고 너무 복잡하게 이것저것 넣진 말고. 전골의 기초가 되는 육수는 사실 맹물을 넣어도 안 될 건 없는데, 처음엔 맛을 잡기가 쉽지 않으니까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기로 하자. 바로 멸치로 맛국물을 만들어 놓는 거지. 하찮게 생긴 조그만 거 몇 마리가 뭐 대수인가 싶은데, 걔네 아주 대수야… 대수 맞아. 무시하면 안 돼.
불고기는 평범한 불고기 양념을 해 놓으면 되지. 양파 채 썬 거, 대파 넉넉히, 마늘 정도만 다져 넣어도 훌륭하지. 여기에 간장, 설탕, 후추,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이 들어가면 일반적인 불고기 양념이지만 (100G에 간장 한 스푼. 이건 그냥 외워두자. 물론 고기 무게가 500G 넘어가면 간장 비율을 더 줄여야 해, 전에도 얘기한 것 같지만) 전골을 만들고 싶으면 참기름은 빼는 게 좋아. 이유는… 뭐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라 생각해.
전골에 빼면 서운한 당면은 미리 찬물에 불려 놓으면 좋겠다.
만약 미리 준비 못 했다면, 맛국물을 꼭 넉넉히 만들어 놔야 해. 전골 국물에 당면을 같이 삶아버리면… 물을 제법 먹어버릴 테니까. 아, 그리고 중요한 건 국물이 끓어오른 다음에 고기를 넣어 빠르게 익혀야 한다는 것 정도. 왜냐면, 이것도 짐작할 것 같긴 한데 처음부터 같이 넣고 끓이면 국물이 탁해져. 탁해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질겨져. 웰던 of 웰던이랄까. 끓는 물에 빠르게 익혀서 부드러운 상태로 먹는 게 전골맛인데… 고무줄처럼 질깃하면 좀 별로잖아. 아니 상상해 보니 심각하게 많이 별로인데. 꼭 끓은 다음에 넣어서 빨리 익혀, 알겠지?
그리고 또 한 끼의 숙제가 끝나는 거지… 이거야말로 시시포스의 신화 같은 삶이 아닌가 몰라. 겨우 네 시간 간격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끝이 없는 업의 순환(?). 그나마 그 허무를 보람으로 메꿔주는 건 엄마 맛있어요,를 외치는 너희의 기쁜 리액션이 아닐까. 그러니까 아 이건 좀 입에 안 맞는데 같은 그런 미운 소리는 꼭 넣어두세요. 입술을 확 꼬집어 버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