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음식 좋아한다며,

진짜 향토음식 시래기나물은 잘 먹지도 않으면서 거짓말은

by 담화

갑자기 기온이 훅 떨어진 날씨가 12월은 12월이구나 싶게 한다. 독감과 코로나 예방 접종을 다 맞고 온 아빠는 감기에 걸려서 훌쩍이고 있고, 엄마는 ‘……’ 싶은 기분으로 그런 아빠를 쳐다보는 겨울의 초입.

뭐, 그런대로 평범한 겨울의 하루인 듯해.


20년 전쯤인가의 이맘때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아빠는 주말에라도 엄마를 보겠다는 일념으로(장난처럼 물어봤더니, 어, 진짜 심각하게 필사적이었어, 뭐 이렇게 대답하더라) 주말마다 애써 서울까지 올라오곤 했더랬지.

밥 먹고, 차 마시고, 시간이 맞으면 영화 한 편 정도 보고, 별것도 없는 그런 주말 데이트가 이어지던 때가 딱 이런 계절이었거든. 지금 생각하니 정말 재미있다. 추위를 어마어마하게 타는 아빠도, 엄마도, 그땐 패딩 따윈 절대 안 입었거든… 참 애잔하다 애잔해. 웃기기도 하고.


엄마는 지금도 아빠를 처음 만났던 날이 선명하게 기억나. 그때 주고받았던 대화도.

왜냐면, 너희도 듣고 인정했듯이 와 어쩌면 이렇게까지 숙맥일 수가 있을까… 싶어서 신기했거든. 너희도 알다시피 엄마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극 E였으니까, 심지어 극 E들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 속에서 자라왔으니 누가 봐도 내향인 of 내향인인 너희 아빠가 너무너무너무 신기했던 거야.

와, 긴장했네, 긴장했어. 표정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못 하네. 어, 결국 했어. 와, 그래도 계속 혀끝에서 굴리던 말은 하긴 하는구나… 하면서.


무슨 대화를 하다 그런 얘기가 나왔던 건지 맥락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긴 건 무슨 차도남같이 생겨 가지고, ‘저는 향토 음식 좋아하는데요…’라고 소심하게 말하던 모습 생각하면 지금도 배가 아파. 너무 웃어서.

사실 그때 마시던 차를 뱉어버릴 뻔했어. 그냥 삼켰다간 목에 걸릴 것 같았거든?

심지어 그때 아빠랑 갔던 찻집은 엄마의 단골이어서 주인 언니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계속 엄마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단 말이야. 아니 한식도 아니고 향토 음식은 뭐니, 대체.


선이는 그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옆에 없었지만, 진이가 몹시 감탄한 얼굴로 아빠의 어휘력은 굉장하구나(negative), 하고 중얼거렸지. 누가 아니래.


그리고 살아보니까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더만 뭘! 그러니까, 묵나물을 불려서 볶아놓거나 한 그런 진짜배기 향토 음식엔 젓가락도 잘 안 갖다 대! 사기결혼 당한 건가…


아무튼, 엄마에게 향토 음식이란 대략 이런 범주의 음식이야.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올라와 있을 만한 것들이지. 우리 엄마도 가끔 해주시긴 하지만, 할머니가 해준 것이 백 배는 더 맛있는 그런 음식. 할머니의 할머니 밥상에 올라가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음식.

더 환원해서 말하자면, 나물 반찬. 그리고 엄마는 아주 나중에야 아빠가 나물 반찬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


하지만 아빠한테는 안 되었게도(???) 너희는 엄마 입맛을 더 닮아서, 특히 선이는 얼마나 나물을 좋아했던지 온갖 나물 맛을 구별하는 것을 넘어서 생긴 것만 보고도 이름을 구분할 줄 알아서 시장에 데리고 나가면 아주머니들의 예쁨을 독차지했던(?)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지 않겠니. 엄마는 지금도 여섯 살이었던 선이가 와, 이거 아주까리다, 나 아주까리 나물 좋아하는데! 하고 외쳐서 그곳에 있던 여사님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걸 잊을 수가 없어…


그래서 오늘은 시래기나물.


시래기는 말린 것을 사서 불려 쓰는 게 제일 좋지만 어쩐지 너희는 다 불려놓은 것을 살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마른 것을 불려 쓸 땐, 얇은 비닐 같은 속껍질 벗겨내는 것과 흙을 꼼꼼하게 씻어내는 건 꼭 기억하고 있도록 해. 그게 시래기 손질의 알파이자 오메가거든.

불린 것을 샀다면, 잘 헹궈서 적당히 썰어 두고, 파, 마늘, 홍고추 같은 추가 재료 약간 준비해 두고 팬에 들기름을 약간 부어서 살짝만 달궈 줄까. 그런 다음 시래기를 넣고 슬슬 볶기 시작하는 거지. 된장, 국간장 조금으로 간을 맞춰주는 게 맛있더라, 엄마 입맛에는.

만약 너무 빡빡하다 싶으면 수분을 조금 보충해 주고. 물론 이때도, 냉장고에 혹시 늘 준비해 놓은 맛국물 같은 게 있으면 그걸 넣어주는 게 최상이겠지만… 없다면, 맹물도 ok.


어느 정도 볶아주다 보면 양념이 잘 배는구나, 싶어 지잖아? 그럼 그때 들깻가루 한 스푼을 수북하게 떠 넣고 또 조심조심 섞어줘. 그렇게 잘 볶아졌다 생각되면 불에서 내리고 접시에 덜어주면 끝인 거지. 잘 식혀서 남은 건 냉장고 넣어 두었다가 입맛 없을 때 고추장 한 스푼 넣고, 달걀 하나 부쳐서 같이 비벼 먹어도 최고지.

이렇게 또 오늘의 뭐해먹나 미션 끝.

진짜 엄마는 살면서 온갖 일을 다해봤지만 세상에 이것처럼 힘들어 죽겠는데 보람차고 때려치우고 싶어서 몸살이 나는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극단의 감정을 다 품고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어. 그러니까 반찬 투정 같은 건 절대 하면 안 돼…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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