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가 필요합니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닭강정

by 담화

가끔은 엄마도 생각해. 밥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아.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가 고루 들어간 캡슐이 빨리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거 하나 입에 집어넣고 꿀꺽 삼키는 걸로 삼시세끼 밥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 따위 모조리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오늘은 유독 힘든 날이었어. 지난주 금요일에 아빠가 아파서 병가 냈지, 주말 막바지에 막내가 감기가 옮았지, 오늘은 진이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면서 기어코 학교를 쉬었지.


정말 정말 미안한 말인데, 농담이 아니고 엄마는 진짜 하루의 일정시간을 혼자 보내지 않으면 신체 항상성 유지에 심각한 장애를 겪는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극 E 타입이라면서 순 거짓말이야,라고 할 텐데 그게 있지, 아무 감정적 유대관계가 없는 타인이라면 전혀 상관없어. 근데 감정 관여도가 높은 사람, 특히 가족처럼 친밀도가 높은(혹은 사회적으로 높으리라 판단하는) 관계의 사람과 하루 종일 붙어있는 건 엄마에게는 진짜, 농담이 아니고 굉장한 노동이야. 이상하지. 쓰면서 엄마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 많겠다 싶긴 해.

하지만 진짜 그런 걸 어떡해. 당장 내일모레부터 막내가 세 달이 다 되어가는 겨울방학이 시작되는데 지난 금요일부터 쭉 누군가가 계속 함께 있었고 (그리고 높은 확률로 엄마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대화를 요청하고… 하…) 조금 오버해서 표현하자면 엄마는 계속 높은 긴장 상태에 있었어.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가장 힘든 사람도 있는 법이거든. 설령 실제로 아주 사이좋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냥 수많은 감정 교환이 일어나는 상대가 같은 공간에 계속 있다는 것만으로 탈진해 버리는 사람이 세상에 있어, 진짜 있어. 그게 바로 나예요. 오죽하면 내 소원이 제발 엄마 나한테 말 시키지 마, 혼자 있게 해 줘(내게도 찾아와 달라 leve me alone, 꽝!) 하고 니들이 방문 닫고 들어가 버리는 거였겠냐고. 왜. 근데 왜 아무도 안 해, 왜! (절규)


진이가 결석을 호소한 순간(……수많은 투쟁과 잔소리와 눈물바람과 기타 등등이 있었지만 넘어가자… 넘어가) 엄마는 그때부터 두통이 났고 금요일에 병가를 냈던 아빠에게 이렇게 외쳤지. 나 7박 8일로 집 떠날 거야. 찾지 마. 전화도 하지 말고 님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 나도 숨 좀 쉬고 오자. 니들은 아프다고 병가도 내고 결석계도 내는데 니들은 나 지친다고 뭐 해준 거 있냐고 엄청 화를 냈지… 어휴.


지금은 좀 웃기기도 하고 뭐 그리 화까지 낼 일이었나 싶기도 한데 아침엔 다섯 시 넘어서 일어나는 생활패턴 덕에 몸도 피곤하지, 아침부터 징징대는 소릴 들었더니 머리끝까지 짜증이 밀려오지, 그래서 좀 감정적이 됐었나 봐. 하지만 휴가를 내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굳건하단다. 삼시세끼 라면을 먹든, 매식을 하든 알아서들 잘 생존하길.


그러니까 엄마가 20일 이후에 대대적인 가출(?)을 감행하기 전에…

일단 잘 먹자…

(어디 갖다 버리고 싶은 엄마본능, 진짜 팔 수 있으면 팔고 싶다)


닭강정을 만드는 방법은 엄청 쉽고 엄청 귀찮아. 어떤 면에서 그러하냐, 닭다리살에서 지방을 걷어내고 손질하는 게 귀찮고 그걸 일일이 튀겨내는 게 귀찮지. 어떤 면에서 쉽냐, 그것만 하면 더 할 게 없어서.

닭다리살 손질이 귀찮으면 가슴살로 해도 돼. 이거야말로 톡톡톡 썰기만 하면 돼서 최고 간단하지만, 닭다리 정육을 이용할 때만큼의 맛은 덜 나. 아무래도 그… 닭가슴살의 퍽퍽함이란 게 있잖아? 그러니까 어느 부위를 쓰건, 아무튼 적당히 잘 토막(엄마는 엄지 크기를 선호하지만, 종종 그보다 더 작게 손질하기도 하고) 낸 다음 감자 전분을 고루 묻혀주기로 하자. 볼 같은데 전분 2스푼 가득(닭고기 600그램에 그 정도면 될 것 같아) 넣고 자른 닭고기를 넣은 다음 조심조심 볼을 흔들어서 전분을 입혀준다는 느낌으로. 그런 다음에 끓는 기름에 넣어 튀기는데, 노릇노릇 예쁜 색이 날 때까지 잘 튀겨 줘.


튀김작업까지 완료했으면 이제 양념은 간장, 고추장, 조청, 참기름을 적당히 섞어서 깨끗한 팬에 가볍게 달궈준 다음, 튀겨낸 닭고기를 넣어서 얼른 버무려 내면 되거든. 고추장 비율을 높이면 매콤달달, 간장을 높이면 단짠. 이렇게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만들 수 있지. 혹은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고추장을 빼고 조청 대신 설탕, 식초를 추가해서 간장 양념 버전으로만 해도 맛있고.

이것도 기본양념의 비율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맘에 드는 맛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어. 밥반찬으로 할 때, 안주(… 미성년 둘이 이 글을 볼 때쯤이면 성인일 테니 이런 말 써도 되겠지)로 할 때 양념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지. 파를 많이 넣어도 되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넣고 만들어 봐. 물론 기본양념 안에서. 늘 말하지만 배리에이션은 기본을 마스터한 다음으로 넘어가기를 바라.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게 남았다, 그러면 다음 끼니엔 생수에 쯔유를 적당히 섞어서, 양파채와 파채를 넣고 끓인 다음 잘 풀어둔 계란물을 붓고 살짝 익혀서 밥 위에 남은 닭강정을 부숴 올리고, 이 국물을 부어 올려 먹어봐. 김가루가 있으면 것도 올리면 좋고.

오야코동이 별 게 아니고 이게 오야코동이니까. 아, 자발적으로 있고 싶어서 있을 때 부엌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재미있는 곳인데 정말 원치 않는 시간에 있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천국과 지옥을 순식간에 오가는 이 장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쳐가야 한다고 봐, 정말, 완전,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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