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 무엇을 바꾸어 놓는다
“역시 꽃이 제일 빨라.”
“네?”
스마트폰으로 새로 들어온 꽃모종을 이쪽저쪽 방향에서 연달아 찍고 있던 한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한희가 찍는 사진들을 어깨 건너로 흘긋 보고 있던 하진이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는 듯이 손을 위로 휘휘 저었다.
“봄이 왔다는 거 말야. 꽃 보고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원래 가드닝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은 구근 싹 올라오는 거 보면서 좋아하고, 아닌 사람들도 졸업식 전후로 우연히라도 프리지어 냄새를 맡으면 기분 좋아하잖아. 벚꽃 피기 시작하면 뭐 완전히 봄인 거고.”
“가드닝 인구도 많이 늘었죠, 사장님?”
“그렇긴 해. 그 덕분에 이 사업도 빛 본 게 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니. 치고 나가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현상유지라도 하려면 정말 매일매일 죽어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거 알지,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기서 뭐였지, 체스 퀸이었던가 뭐였던가.”
“아. 그거 알아요. 제자리에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한다는 거.”
한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은체를 했다. 하진에게 화면이 보이도록 기울인 한희가 어떤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 물었다.
“난 이거 좋다. 하지만 뭐가 좋은지는 디자이너가 제일 잘 알겠지?”
한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글쎄요, 라고 답했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진이 흙먼지가 구르는 비닐을 돌돌 말아 옆으로 밀고 그 위에 노트북을 펼치며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희가 하진의 작업을 들여다보며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왜 사장님은 항상 모험하는 걸 좋아하세요?”
하진이 까르르 웃으며 키보드 앞에 둔 팜레스트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한희에게 시선을 주었다.
“모험이라. 내가 모험하는 것처럼 보이니?”
“솔직히 말해서, 네. 사실 이 일의 본질은 꽃을 파는 거 아니에요? 근데 사장님은 항상 뭔가 플러스알파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관심을 가진 것도 있긴 하지만.”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희는 이제 스물을 넘겼다. 하진은 30대의 중반을 걷고 있다. 한희가 하진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납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몰라도 그런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적어도 궁금해하는 순간에 말해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하진이 입을 열었다.
“본질이란 게 뭐야, 한희야?”
“저는 그런 건 잘...”
“정답 같은 건 없어. 그냥 네 생각이 궁금해서. 네 생각을 이야기해 주면 내 생각도 이야기해 줄게.”
“어, 변하지 않는... 것이요?”
하진이 응,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여 한희의 말을 긍정해 주었다. 그러고선 금세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내건 채 또 물었다.
“아까 한희는 이 일의 본질은 꽃을 파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 그러면 팔 수 있는 꽃이 없어지면, 그러면 우리는 일을 상실하는 걸까?”
“어려워요, 사장니임... 저는 이런 건 진짜 대답 못 하는데...”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 그냥 내 생각을 말해줄게. 나는 우리 일의 본질은 다정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꽃으로 치환하는 거라고 생각해. 본질은 꽃이 아니라, 무엇을 전달하고 싶냐, 에 있지 않은가 싶어. 물론 꽃, 식물 중요하지. 그런데 그건 일종의 매체적 도구야. 업의 본질을 전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 우리 일의 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선택한, 아주 중요한 매체야. 하지만 본질은 아니야. 그것이 가진 물성이 본질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누나 또 시작했네.”
바깥에 나가 있다 들어온 수하가 하진의 말을 들었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한희는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가 수하가 들고 들어오던 커다란 박스를 받쳐 잡았다.
“네가 이해해라, 한희야. 하진 누나가 원래 이론적인 얘기 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데다 심지어 다른 사람 얘기 듣는 것도 좋아해서. 전에 있던 직장에서도 항상 저래서...”
“와, 두 분이 같은 직장 다니셨어요? 근데 동업하시면서 나오신 거예요?”
“뭐, 그렇... 지?”
“혹시 무슨 광고회사예요? 사장님 말씀 들어보니까 그런 느낌이,”
“IDEARA컴퍼니.”
한희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한희가 쭈삣대며 하진과 수하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떼었다.
“이런 질문 실례인 거 알긴 하는데, 근데 너무 궁금해서...”
“괜찮아, 뭔데?”
“남들은 못 들어가서 난리인 데를 왜 그만두고 나오셨어요?”
[표제어_대체하다/모티브_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