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알려드릴 것도!
#31. 어슴푸레하다
우리는 모두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 아닌가 늘 생각합니다.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일 텐데 그럼에도 꿋꿋하게 무언가를 매일 성취해 나가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나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둑한 박명 속에서 매일의 작은 성실을 실천하는 것도 그런 마음을 옅게 만드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의 실천을 떼어놓고 보면 별것도 아니건만 수 세월을 빨리 감고 보면 분명히 크나큰 도약의 디딤대가 된 그런 작은 성실이 하나쯤 있는 삶을 생각합니다.
#32. 미루어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쇠락하는 겉모습에 치중하다 보니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구나 싶은 깨달음을 얻은 날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신체적 건강이라는 건 누구나 공감하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품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이 나이가 들어도 곧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게 하고 반듯한 걸음걸이로 경쾌하게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면 품위는 정신적인 아름다움, 혹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어떤 기본적인 선을 조금 넘겨,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우아한 심력 같은 건 아닐까요. 젊을 때는 아름다운 외피의 힘을 빌어 누구나 자신의 천박함을 어느 정도는 가릴 수 있다지만 나이가 들면 그야말로 한 사람의 바닥이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33. 켜켜이
본문에도 썼듯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죠. 너무나 공평해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시간과 경험의 색을 입고 달라지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떤 것들을 보고 겪었기에 내가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부터는 도무지 상상해 낼 수 없는 지금의 모습에 이른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아마 형제나 남매도 그럴 겁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면 도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가 알던 옛 모습에서 이렇게 크게 돋움한 면모가 보이는지. 사실 제가 동생을 보고 종종 궁금해하기도 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녹아든 이야기였어요.
#34. 대체하다
마케터 출신의 , 말이 많고 꼰대 기질 다분한 화원 주인 하진은 제 모습이 70% 정도 들어간 인물입니다. 저는 학부 시절 전공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학위를 받았고 엉뚱한 일을 하다가 그만둔 뒤로 온 동네에서 알아주는 엄청난 스케일의 베란다 가드너로 살았고, 하진처럼 아이들과 무슨 트러블이 생길라치면 이야기를 지어내서 둘러대곤 했어요. 하진이 좋아하는 일은 대부분 제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따지고 들기를 좋아합니다. 아마 이 엽편 연재물에서 저를 대신하는 인물은 하진일 거예요.
#35. 겨를
윤수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아이죠. 딸아이의 친구인데, 글쓰기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아이입니다. 부모님이 너그러우신 편이셔서 모 플랫폼에 2차 창작물을 오래 연재했는데 인기도 대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친구가 중2였던 시절에 쓴 창작물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아무리 2차 창작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열다섯 살이 그렇게 독자를 끌어들이고 숨을 탁 멎게 만드는, 요즘 표현으로 후킹 내공이 대단한 글을 성실하게 쓴다는 게 너무 대단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요즘 실력이 엄청난 중고등학생 작가들이 많더라고요. 네… 솔직히 충격이었어요. 10대 아이들 진짜 대단하더군요. 그 살인적인 공부량을 감당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꾸준히 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어른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더라는, 그런 뻔한 깨달음이 또… 아니 현타가 오더군요…?
알려드린다는 소식은, 이런 거예요.
지금까지 서른다섯 편의 엽편을 연재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 잠시(가 아니라 꽤 오래가 되겠네요) 「다른 이름, 다른 사전」은 쉬어가고, 다른 연재물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제목과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에 공개하겠지만, 간략히 말씀드리면 반년 남짓 기획해 온 장편소설입니다. 장편이라고는 해도 50만 자 전후로 결말짓는 분량은 절대 아니고요, 10만 자 조금 넘으려나, 그렇습니다. 책장담화를 함께 쓰는 친구 필화와 기획하고 집필한 소설이고 다정하고 따뜻한 인물들이 많이 나와요.
감사합니다. 3월의 첫 주 보내느라 다들 바쁘고 힘드셨을 텐데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요.
-담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