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이미 이야기
직장에서 동아리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겼다.
일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은 해였다. 그런 와중에도 뭔가 무료함과 허전함이 마음을 지배하여 살짝 재미없는 날이 지속되었던 그때였다.
나는 퀼트반을 선택했다. 퀼트반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중딩, 고딩이 되어 공부를 할 때, 엄마로서 TV시청보다는 그 옆에서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 더 멋져 보일 것 같아서이다. ㅎㅎ
그때의 내 나이는 30대, 아이들은 초딩.
퀼트 선생님이 초빙되었다. 멋진 50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의 외모에서 세련미와 푸근함, 우아함, 열정이 묻어났다. 그 선생님을 보고 뭔가 '닮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퀼트반 동료들이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신이 났다.
이렇게 퀼트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은 어떤 취미반에서 그렇듯이 준비물 구입부터 진행되었다. 바늘, 실, 퀼트 천, 시침핀, 가위 등 집에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걍 모두 구입했다.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선생님께서 미리 준비해 오신 퀼트 원단을 자르고, 자른 원단을 손바느질로 붙이고, 시접을 정리하고 솜을 넣고, 창구멍을 막는 과정의 모두가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 가정가사 시간이라는 교육과정이 있었으니까) 함께 모여서 뭔가 만드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완성한 첫 작품은 네모 모양의 '핀 쿠션'이었다.
너무나 앙증맞고 예뻤다.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완성된 핀쿠션을 보면서 자화자찬하고 동료들끼리 서로를 칭찬도 하고 참으로 지루함을 한 방에 날려 주는 시간이었다. 힘도 들고 피곤했지만 보람을 느끼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퀼트 동아리 회원들은 수업하는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봤다며 자랑을 하고 격려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곤 하였다. 수업은 일주일에 1회 실시되었고, 회원들과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추이미생활을 하였다. 시간을 내어 용인에 있는 선생님의 전원주택을 방문하여 선생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특별한 수업을 받았다. 전원주택과 퀼트 작품들은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창가에 퀼트 커튼과 햇빛의 어울림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퀼트에 대한 열정을 더욱더 가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직장 사정상 3개월 정도만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시간은 몇 번 되지 않았지만 열정이 가득한 찐~한 시간이었다. 더 이상 동아리활동을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쉬웠으나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의 퀼트 추이미생활은 계속되었다. 멋진 작품을 검색하고, 원단을 검색하고, 부자재를 검색하고,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며 열심히 아주 열심히 작품의 수를 늘려갔다. 일단 작품을 시작하면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이 궁금하여 멈출 수 없었다.
어느 주말.
만들고 싶은 아이템을 하트 모양의 벽걸이로 정하고 작품제작을 시작하였다. 바느질에 빠져 있는 동안, 시간은 흘러 흘러 어김없이 식사시간이 되었다. 내 배도 고프지만 아이들의 배도 고플 거라는 생각으로 심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만 멈추고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
멈추지 못하고 식사시간을 미루고 있었다.
"엄마, 밥 먹어야죠."
"알았어. 밥시간이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 거야.(짜증) 5분만! "
시간이 5분 이상 흐르고~
"엄마, 나 그냥 라면 끓여 먹을래." 딸이 기다리다 지쳐 말했다.
바느질을 멈추지 않아도 되는 기쁨과 엄마로서 식사를 챙겨 주지 않는 미안한 감정이 섞인 말투로 나는 말했다. "내 것도 부탁해!"라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곤 하니 아이들은 엄마의 추이미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난 절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후회하기도 했다.
가방, 매트, 파우치, 장식품, 작은 소품, 커튼, 아이들 이불, 내 이불 등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지금도 내 가방은 거의 모두 내가 만든 것들이다. 선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선물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소중한 작품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천 가방에 불과하게 생각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명품을 즐기는 친구들도 내 가방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예쁘다고 말은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고딩이 되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TV를 보기보다는 옆에 앉아 바느질하려고 시작하였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눈의 노화가 와서 손바느질하기가 힘들어졌다. 또한 나의 가방도 처치곤란할 정도로 많아졌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퀼트는 더 이상 재미를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퀼트 추이미생활을 하면서 무료하고 허전한 마음을 치유받으며 정신적으로 위태위태한 순간들을 잘 극복하면서 잘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퀼트의 맛을 볼 수 있게 해 준 사람도 나의 인생에 도움을 준 1인으로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