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게 훨씬 쉽더라.
직장생활 3년 차 정도에 접어들었을 때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이다. 왠지 무력한 이야기 같기도 했지만, 어쩌면 행복한 삶을 사는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다. 가정 형편 때문에 원하는 학업을 포기하셨고, 평생 트럭 운전을 하며 일구어 내신 평범하지만 분명한 행복으로 어떤 이에게는 그런 인생도 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셨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세요!”
그래서인지 TV프로나 강연, 동기부여 유튜브 같은 데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이 말이 나에겐 썩 와 닿지 않았다. 그런 일은 살면서 아주 낮은 확률로 만나게 되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하고 있는 일에서 꿈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아버지의 말을 되뇌며 책임이라는 단어로 그 자리를 바쁘게 메우곤 했다.
직장에 워라밸이라는 주제가 밀려들기 시작한 게 2018년 즈음이다. 그때부터 나는 워라밸이 꽤 괜찮은 직장생활을 누렸다. 덕분에 육아에 깊이 동참하면서 가정을 돌봤고, 삶에 활력을 더해줄 몇 가지 취미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일과 삶을 분리하고, 퇴근 후의 시간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분명히 전보다 나은 일상을 누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나는 사회가 말하고 있는 시간의 정량적인 배분을 기준으로 한 워라밸의 개념에서 일종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 덕분에 '라이프'의 영역을 행복하게 꾸려내는 나름의 방법은 터득했지만, 마찬가지로 내 일상의 소중한 일부인 '워크' 영역에서의 행복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풀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일과 삶은 꼭 분리되어야 하는 걸까?
일이란 그저 수고스러운 노동이자 퇴근 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걸까? 가슴 뛰는 일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건 정말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일인 걸까? 우리는 삶에서 일을 어떤 존재로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워라밸이 나에게 만들어 준 시간과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일과 직업에 대한 대한 더 많은 사유와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전 카카오 공동대표이자 매거진 <B> 발행인인 조수용 님의 이야기다.
“물론 돈도 벌어야 하지만 제 생각에 직업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말 그대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하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이라는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직업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세운 룰에 따라 직업이 규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 존재의 의미가 뚜렷해질수록 돈도 잘 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워라밸,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말을 저는 좀 이상하게 보는데요. 일과 삶이 일치한다면 밸런스라는 말이 필요 없어지는 거니까요. 자신의 정체성이 일을 통해 뚜렷해진다면 의외로 돈을 버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 매거진 <B> 단행본 「JOBS - EDITOR」 인터뷰 중
틀린 말 같진 않지만 여전히 질문이 남았다. 일과 삶이 분리되어 양 끝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니라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는, 더 나아가 일치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소 거창하게 느껴지는 '태어난 이유', '나의 정체성', '존재 의미' 같은 말들을 뜬구름 잡는 이상이 아닌 현실로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건 더 좋은 '직장'이 아니라 뚜렷한 '직업'이라는 걸 천천히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