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무엇을 선택하는 게 맞냐는 이야기가 오가곤 한다. 내가 볼 땐 둘 중 하나라도 선택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케이스였으니까. 그저 눈앞에 있는 선택지들을 큰 고민 없이 하나씩 골라잡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 뿐이다.
인생에 대학교 진학, 취업과 같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순리대로 산다'는 애늙은이 같은 생각으로 딱히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삶에 대한 나의 불성실을 포장하기 위한 변명이었던 것 같다. 그때 왜 조금 더 의지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하지 않았던 걸까. 아마도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후회가 된다.
직장생활 8년이 지나서야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오랫동안 일 하면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결국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혹여 내 인생에 그게 답이 아니더라도, 그거 틀렸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좋아하는 일을 붙잡아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일'이라는 주제는 ‘자유’와 관련이 있다. 결국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느냐에 대한 문제이니까. 일본 츠타야 서점의 창립자인 마츠다 무네아키는 자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본능이나 욕구에 현혹되지 않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즉 무엇이 ‘의무’인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깨달음을 따르는 것이 자유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유가 냉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의미에서다. 하지만 자신의 꿈에 다가가려면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책 <지적 자본론> 27p
직업의 선택에 있어서 자유란 그저 마음의 끌림을 따르는 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인 고민의 과정을 거쳐 발견하게 된 자신의 의무를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나에게는 그런 '자격'이 누구에게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입니다.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58p
보통 직업에 대해 고민할 때 자신의 개인적인 흥미와 적성에만 골몰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해 그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안전해 보이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위의 두 이야기는 자기 내면의 무언가와 맞닿아 있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직업적 의무와 기회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직업은 취미와 다르다. 사회적인 필요, 돈과의 교환가치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이 직업에 대한 본질은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 뒤에 가려지기 쉬운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직업인으로서의 꿈을 발견하는 일을 마냥 이상적이고 실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직업에 대한 '자유로움'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자신의 결정을 납득할 만큼, 그 일을 하게 되기까지 능동적인 탐구와 의지적인 선택의 과정이 충분히 있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