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님의 책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오늘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요.
저는 직장생활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전공을 따라 재무 담당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아무래도 제 적성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보통 이런 고민은 몇 년 하다가 타협하고 마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게 잘 안 됐어요. 어딘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회사를 다니는 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렇다고 직업을 바꿔볼 용기는 없었고, 그저 진로 고민에 게을렀던 과거를 탓할 뿐이었습니다. 회사 일은 맡겨지면 나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굳이 더 배우려, 성장하려 욕심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재무 담당자라는 직업 안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찾지 못했고, 제 눈에 멋져 보이는 다른 직업들을 어설프게 동경했습니다. 나도 저런 일을 선택했다면 잘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성장은 여기 없는 것 같아, 속으로 이런 푸념들을 하면서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조직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런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종종 제 글을 잘 읽고 있다는 댓글이나 인사를 받을 때면, 그동안 회사 일로는 하지 못했던 자아실현을 하게 된 것 같아 뿌듯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맞추다 포기한 퍼즐처럼 남겨져 있는 제 본업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SNS에 글 많이 올리는 분이 실제 일에 얼마나 집중하시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맨날 일에 대한 생각, 리더십, 조직, 스타트업에 대한 상념들을 길게 적어서 올리시는데, 솔직히 대단한 것도 아닌 인사이트 쓸 시간에 그냥 일이나 하지 싶을 때가 많아서요. 그런 분들 중에 알고 보면 실제 업무 레퍼런스 되게 안 좋은 경우도 많았던 것 같고요.
며칠 전 어느 익명 단톡방에 올라온 이야기가 제 마음을 쿡, 하고 찔렀습니다. 맡은 업무에 특별히 소홀했던 적도 없고 회사에서 평판이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아마도...?), 글을 쓸 때마다 솟는 '더 멋지게 해내고 싶다!'는 열정이 회사 일을 할 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는 게 저를 떳떳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더구나 직장인으로서의 좋은 태도에 대한 글을 고민하면서, 정작 제 본업에서는 열심의 상한선을 그어놓았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김민철 작가님의 책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이라는 제목만 보고 사이드잡을 어떻게 성공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한 회사에서 18년을 넘게 일한 '찐 직장인' 김민철 님은 회사 일을 자기 인생의 훌륭한 수단으로 삼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나의 관심사와 능력과 꿈에 꼭 맞는 직업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직업이 주는 단단한 보상이 나를 일어서게 했다. 부인할 수 없었다. 직업은 나의 현실적인 기반이자 매일의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이 기반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이 환경을 나에게 더 쾌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작업을 해야만 했다. (43p)
저는 그동안 제 일상과 자아를 지키는 방법으로 직장인이라는 제 정체성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를 택해왔습니다. 직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직장이라는 작은 사회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 일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한 발은 밖으로 슬쩍 빼놓고 완전하지 않은 직장생활을 이어왔던 거죠.
김민철 작가님 역시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퇴근 후의 여가와 작가로서의 삶을 위해서 6시 퇴근이 회사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이야기할 정도로요. 하지만 일에 대한 태도는 저와 정반대였습니다. 자기의 사생활이 회사 일에게 침범당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일이라는 녀석을 더 꽉 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시퇴근이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퇴근이 되지 않도록 매 순간 날을 세워 치열하고 밀도 있게 일하는 것. 엉성한 야근이 주는 가짜 성취감에 도취되지 않고, 야근을 한다면 오직 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그것을 결정하는 것. 그렇게 회사에서의 일을 온전히 나를 성장시키는 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을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 일에게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김민철 작가님이 고집하는 태도들입니다.
이 책은 대단한 성공을 이루는 법에 대해서 말하는 책은 아니다. 회사에서의 내 일로 매일을 건너가고, 혼자만의 일을 하며 내일로 건너가기 위해 애쓰는 한 사람의 분투기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회사에서의 나'와 '작가로서의 나'를 동시에 키우기 위해 내가 알아낸 노하우들이 누군가의 매일에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키우며 내일로 건너가고 있다. (10p)
김민철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회사 일을 좀 더 멋지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8년이 넘도록 제 일상을 단단하게 받쳐준 나의 직업에게 한 번쯤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책이 몇 년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다가도, 어쩌면 지금 만났기 때문에 더 깊이 곱씹어 볼 수 있는 메시지 같기도 합니다.
글 쓰는 회사원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균형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런 책,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아 든든합니다. 당장 대단한 변화가 생기진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제 본업에서 더 자라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 하나로 힘이 납니다. 앞으로 회사에서도 매 순간 진심을 담아 경험하고 성장한다면, 제가 퇴근 후에 쓰는 글도 더 반짝반짝 빛나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