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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현 Sep 13. 2021

자기다운 월급쟁이를 꿈꾸며

현대자동차그룹 HMG 칼럼니스트 1기로 활동하면서 Core Value Talk 사이트에 2020년 3월 2일에 게재한 글입니다.



자기계발 vs 자기다움


요즘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두 가지는 “퇴사할 거다” 와 “유튜브 할 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성공한 유튜버가 직장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높은 수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며 새해가 될 때마다 스스로를 괴롭히던 직장인들이 이제는 ‘자기다움’에 대한 목마름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이룬 유튜버들 덕분에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겪는 직장인들의 고민은 정점에 달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남들 사는 대로 살 때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정서적 안락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덕업일치’를 이루었다고 소개되는 분들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인들과 정작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근데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라는 푸념으로 대화가 마무리되곤 합니다. 현실의 장벽은 둘째 치고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게 느껴집니다.



취향의 부재


인생의 꿈이나 직업선택과 같은 거창한 주제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요즘은 그저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는 가벼운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항상 옆 사람을 살피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합니다.




음악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순위대로 듣고, 식당은 남들 줄 서는 맛집만 찾아다닌 지 오래입니다. 여행할 땐 SNS에서 유행하는 사진 스팟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게다가 이제는 유튜브 추천 영상을 따라가며 누군가가 설계한 알고리즘에 우리의 취향을 맡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쏟아지는 정보와 편리한 기술들 속에서 내 색깔 잃기 정말 딱 좋은 세상입니다.


'개인주의'라는 주제로 윤종신, 김이나 작사가, 여운혁 PD가 BBC NEWS 코리아와 가졌던 인터뷰 중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인상 깊은 내용이 있어 일부를 옮겨보았습니다.


(왼쪽부터) 김이나, 윤종신, 여운혁 <사진=BBC NEWS 코리아>


<윤종신>

“아직 우리나라에는 '무취향'인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무취향인 분들은 또 이상하게 누가 조금 앞서면 그쪽으로 우르르 가요. (중략)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안전하겠지. 나는 한 시간 동안 음악을 들을 건데 내가 듣기 싫은 음악은 안 들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제일 인기 있는 100곡을 들어야지. 그렇게 되니까 그 100위 안에 들려고 인위적인 방법을 쓰는 거죠.”


<김이나>

“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게, 취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단순히 취미와 여가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의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취향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찾고 지키지 않으면 진열된 사람들, 진열해 놓는 것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만들어지기 너무 쉬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온통 알고리즘 투성이인 무서운 세상이라. 내 성향, 취향에 맞추어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다 조금 허구 같은 평균치에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는 게 집단주의 아닌가...”



저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서 가슴 뛰는 일을 하세요.” 라던지, “회사 일은 적당히 하고, 취미생활도 좀 하면서 즐겁게 사세요.” 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창의적 인재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서술하시오. (1,000자)



취업준비 때 참 싫어했던 자소서 문항입니다. 예전부터 많은 기업들이 ‘창의적 인재’를 주된 인재상으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적인 기업문화 속에서 그 의미는 쉽게 퇴색되곤 했습니다.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분명한 지시나 체계적인 업무환경 없이도 조직에 필요한 성과를 찰떡같이 뽑아내는 사람이 ‘창의적 인재’로 인정받아 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이런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 형제들’은 개성 넘치는 기업문화로 유명합니다.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문의가 너무 많아서 매주 수요일마다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라고 합니다. 현대차그룹 역시 미래에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기업문화로는 그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과감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 그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진 = 우아한형제들 '피플실' 블로그>



회사의 질문


지난해부터 복장 자율화와 유연근무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저는 회사가 이 두 가지 제도를 통해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할 때는 어떤 옷을 입고 싶은 지, 오늘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고 싶은 지 말이지요. 각자의 취향을 묻고, 스스로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공부할 때 항상 가슴에 새겼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언입니다. 이제 회사가 원하는 것은 집단의 정형화된 결과물이 아니라 직원 한 개인의 ‘자기다움’입니다. 그것이 곧 ‘남다름’이고, 생존을 위한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 abc 방송 화면 캡처>


앞으로 회사는 우리의 취향과 기호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오늘은 어디서 일하고 싶은 지, 이번 프로젝트는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까지 물어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약간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혹시 아직도 반바지 차림으로 10시에 출근하는 게 눈치 보이고, 또는 그런 후배 직원을 바라보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이제 ‘남’보다는 ‘나’에게 집중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의 ‘자기다움’은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회사의 질문에 내어놓을 자기다운 답변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스스로를 방치해둔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셀프 스토킹


‘크리에이터 클럽’이라는 소셜 커뮤니티에서 있었던 강연 내용입니다. 클럽 회원인 김상인 씨는 모델입니다. 그녀는 해외 활동 중 한 잡지사와 촬영을 하게 됩니다. 정해진 의상과 메이크업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편한데 앉아서 평소에 하는 표정을 짓고, 너 좋아하는 것들을 해봐”라고 말했고, 그녀는 당황했습니다. ‘모델 김상인’이라는 캐릭터가 아닌 ‘인간 김상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참혹했던 촬영을 마친 그녀는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녀는 한동안 모델 활동을 중단합니다. 업계에서 정해준 톰보이 이미지를 버리고 나니 옷장 속 꽃무늬 원피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체중 관리로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마음껏 먹으면서 탕수육은 ‘찍먹’이 진리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인간 김상인’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본인을 스토킹 하라고 제안합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고 그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그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유튜브 채널 '열정에 기름붓기' 영상 캡처>



자기다운 월급쟁이를 꿈꾸며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결승점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한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있습니다. 회사는 트랙을 하나씩 지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달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적어도 어디로 달려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상황은 피해야 합니다.


일본 '리크루트 포인트'사 광고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사진=유튜브 채널 '크리세이' 영상 캡처>


저는 “현대차그룹의 비전은 직원의 수만큼 존재한다.”라는 선언이 울려 퍼질 엉뚱한 미래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또 지키기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일상에서 자기다울 기회를 성실하게 누리기 위한 그 노력이 우리가 만드는 결과물의 남다름을 담보할 것이라 믿습니다.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에 도움을 준 컨텐츠 입니다.

- 윤종신, 김이나, 여운혁이 말하는 '연예인과 개인주의' (BBC News 코리아, https://youtu.be/v7DrPS5dDxU)

- 충격적인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도망 온 모델 (열정에 기름붓기, https://youtu.be/dAMI6JQjlBY)

-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일본 인재 채용 회사 리쿠르트 포인트, https://youtu.be/kaKQHsUM3Po)

- 책 '그래서 캐주얼' (마케터 안병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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